사람도 없고, 구호도 없는 ‘소리없는 아우성’…게임업계 흔든 ‘트럭시위’

뉴스1

입력 2021-02-06 08:07 수정 2021-02-06 08:09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그라비티 본사 앞에서 게임 ‘라그나로크 오리진’ 유저들이 트럭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유저들은 게임 유통사 그라비티가 버그 해결과 유저 소통 노력이 미흡하다며 게임 내 이슈들에 대해 상세하게 밝힐 것을 촉구 했다. 2021.2.2 © News1

사람도 없고, 구호도 없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불리는 ‘트럭시위’가 게임 업계를 강타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그라비티 본사 앞에 트럭 한 대가 정차했다. 화물칸 한쪽 면에 부착된 대형 LED전광판. 그곳엔 ‘쏟아지는 각종버그 나몰라라 늑장대응, 버그유저 처벌따위 귀찮다는 안일대응’이라는 항의성 문구가 적혀있었다. 트럭은 본사 주변에서 운행·정차를 반복하며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트럭이 나타난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넷마블의 본사가 있는 서울 구로구 디지털단지, 넥슨과 엔씨소프트 본사가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에도 이같은 트럭이 등장했다.

트럭 시위가 게임 업계 전체로 퍼져나가 일종의 시위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다.

◇ 3.5톤 트럭 3대 대여비 900만원…단 16시간 만에 모금 완료

지난달 22일, 넥슨 게임 마비노기 이용자들은 13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트럭 시위 시작을 알렸다.

이들이 낸 성명서엔 Δ버그 수정 계획 공유 Δ유료 아이템 확률 공개 Δ이용자와의 소통창구 마련 등이 담겼다. 오랜 기간 동안 게임 내 다양한 버그가 쌓였지만 회사 측은 이를 방치하고 있으며, 또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아 이용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이용자는 ‘총대 메고 트럭 모금 시작’이라는 게시글을 온라인 카페에 올렸고, 이후 ‘소액 모금 인증합니다’라는 글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총 223명의 이용자들이 3.5톤트럭 3대를 5일간 대여할 수 있는 900만원의 돈을 모았다. 이 금액을 모으는 데 필요했던 시간은 단 16시간.

그라비티의 게임 라그나로크 이용자들도 Δ버그 수정 Δ소통경영을 요구하며 1톤 트럭 2대를 5일간 대여했다. 이에 필요한 450만원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틀을 채 넘기지 않았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응집력, 헤비 유저들을 주축으로 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놀랄만한 ‘화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에겐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몇 백만원은 금방 모으는 수준”이라며 “트럭이 회사 주변을 섰다 움직이기를 반복하는데, 진화한 시위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 공식 사과문에도 트럭은 계속…게임 업계 ‘속앓이’

보통의 시위와 달리 ‘사람’도 없고 ‘소리’도 없었지만, 영향력은 대단했다. 새롭게 나타난 시위 방식에 지나가던 시민들은 자리에 서서 셔터를 눌렀고, 이는 각종 소셜네트워크세비스(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이용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게임 업계는 공식 사과문을 연달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다만 당분간 이같은 트럭 시위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넷마블의 페인트그랜드오더 측은 지난달 초부터 이용자 불만에 대한 사과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빠진 사과문에 이용자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5차 사과문 이후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넷마블 측이 오는 6일 이용자 간담회를 열고 각종 의견을 수렴하기로 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상태다.

그라비티도 지난 2일 라그나로크 오리진 공식카페를 통해 “소통에 대한 모험가님(유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라비티 측은 Δ버그수정 Δ오프라인 간담회 등의 대안을 제시했으나 트럭 시위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게임 이용자 측은 게임 내 구체적인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사과문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보상’ 아닌 ‘신뢰’가 핵심…전문가 “기계적인 대응 변화해야”

트럭 시위를 이끄는 게임 이용자 이모씨(30대)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회사에게 원하는 건 ‘보상’이 아닌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용자 측 성명서과 회사 측 사과문을 비교해보면, 사과문엔 회사가 하고 싶은 말만 적혀있다”며 “사과문을 보며 더욱 분노한 이용자를 중심으로 트럭 시위를 강행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보상이나 게임 업데이트가 중요한 게 아니다.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 이용자와 소통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도 사과문에 의존한 대응방식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위 회장은 “이용자들은 게임에 대해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며 “트럭을 보내는 방식도 기본적으로 애정이 없으면 못하는 시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게임업계가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마치 공무원이 민원처리하듯 기계적으로 대응하니 이용자는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조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