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다니는 조선 공주들… 바람의 옷, 한복의 美

김태언 기자

입력 2021-02-05 03:00:00 수정 2021-02-08 09: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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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옷 재해석한 비대면 패션쇼
두달새 온라인 등 100만 뷰 육박
김영진 디자이너 “고증과 파격, 21세기의 전통 만들고 싶어”


궁중 평상복인 당의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복과 예복에 갖춰 쓴 족두리를 새로 디자인한 한복, 복온공주가 국가의식 때 입은 활복(위쪽 부터).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카메라에 처음 비춰진 건 조선왕조 공주와 옹주가 입던 정통 예복. 이윽고 화면은 경복궁 교태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공주로 옮겨간다. 이때 갑자기 그가 어디론가 뛰기 시작한다. 공주가 도착한 곳은 덕수궁 석조전. 여기서 체크무늬나 올 블랙의 현대식 한복을 입은 공주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가 경복궁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쇼는 끝이 난다.

2분 남짓한 이 영상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지난해 12월 개최한 비대면 패션쇼 ‘코리아 인 패션(KOREA IN FASHION)’의 홍보용으로 제작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전시 플랫폼인 카카오갤러리에서 볼 수 있는데 4일 오전 기준 누적 조회수는 약 93만 뷰에 이른다. 재단은 “문화유산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바꾸고 문화유산으로서 한복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기획했다”고 밝혔다. K드라마의 높은 인기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경복궁 앞에는 한복 대여점이 잇달아 생기기도 했다.

코리아 인 패션쇼에 나오는 세련된 한복들은 김영진 디자이너(50·여)의 손을 거쳤다. 그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고애신(김태리)이 입은 한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3일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책 ‘조선공주실록(역사의아침)’부터 보여줬다. 5년 전 여행 중 우연히 이 책을 읽고서 역사 속 숨겨진 공주들을 위한 패션쇼를 열고 싶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공주들은 정략혼을 강요받는 등 개인적인 삶을 희생당했다. 김 디자이너가 천진난만한 공주의 아름다운 시절이나 활쏘기, 서예를 즐기는 다양한 공주상을 그린 이유다. 재단이 “궁과 한복을 소재로 영상을 찍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공주를 테마로 할 것을 요청했다.

공주를 콘셉트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왕, 왕비, 세자빈에 비해 공주 의복에 대한 사료는 많지 않았다. 그는 국립고궁박물관 도록 등을 통해 순조 둘째 딸 복온공주의 활옷(조선 중·후기 공주와 옹주가 중요한 국가의식 때 입던 예복)과 셋째 딸 덕온공주의 녹원삼(조선시대 공주와 옹주의 예복)을 소재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는 단순히 전통을 계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현대의 공주라면 어떤 궁중복을 입을까’를 궁리했다. 대표적인 게 분홍색 한복. 조선시대 분홍색은 정3품 이상 남성 관리들이 입던 복식이나 궁인들의 속옷 색상이었다. 김 디자이너는 “속옷을 겉옷으로 만들고 남자 옷을 여자 옷으로 만드는 등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패션을 창조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했다.

공주들이 많이 입던 ‘당의(궁중 평상복)’도 각색했다. 특히 당의 앞뒤에 수놓은 ‘문자도’가 그의 관심을 끌었다. 조선시대 주요 덕목이던 삼강오륜을 나타내는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8자를 썼다. 하지만 김 디자이너는 대신 아(我)와 애(愛)를 새겼다. 그는 “문자는 시대를 반영한다. 현대사회에선 충효보다 내가 중요한 세상인 만큼 글자를 바꿨다”고 설명했다.

고증과 변화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김 디자이너는 한복도 패션임을 강조했다. 공작털이 달린 티아라(작은 왕관)를 이번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고려시대, 삼국시대 한복이 달랐고,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전기·후기 한복 모양이 다르다”며 “과거의 전통을 물려받는 것도 좋지만 나는 지금의 한복, 21세기의 전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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