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장 방역에 희생양 된 노숙인[현장에서/지민구]
지민구 사회부 기자
입력 2021-02-03 03:00 수정 2021-02-03 14:59
지난달 14일 경기 수원시의 수원역 뒤편 주차장에서 노숙인들이 긴급 식료품을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수원=이상환 기자 return20@donga.com
지민구 사회부 기자
“전형적인 행정 실패예요. 노숙인이 검사를 받은 뒤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노숙인지원단체 ‘홈리스행동’은 최근 노숙인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증가를 한마디로 꼬집었다. 서울역 희망지원센터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집단 감염은 지원시설 관련 확진자가 2일 64명까지 늘어났다.
홈리스행동이 ‘행정 실패’라고 보는 이유는 간명하다. 노숙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시민은 휴대전화 연락처를 적어내고, 집에 가서 ‘자가 격리’를 하며 결과를 기다린다. 하지만 이를 노숙인에게 적용하면 무용지물이다. 단체 관계자는 “휴대전화와 거주지가 있다면 왜 노숙생활을 하겠느냐”고 했다.
“노숙인은 검사 받은 뒤 보통 지원단체 직원의 번호를 남겨요. 갈 데가 없으니 당연히 다시 거리로 나갑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임시거처라도 마련했어야죠. 떠도는 신세인데 연락 안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자기가 확진됐는지조차 모르고 있겠죠.”
최근 코로나19에 확진됐지만 소재 파악이 안 됐던 노숙인은 모두 3명. 수색에 나선 경찰이 어렵사리 2명을 찾아 치료시설로 보냈지만, 50대 1명은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묘한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일각에서 노숙인들이 코로나 방역에 훼방을 놓고 있다며 비난이 거세진 것이다.
하지만 홈리스행동이 지적했듯, 현재 노숙인 방역의 구멍은 그들 탓이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은 지난해 초부터 1년 가까이 이어졌다. 노숙인 등 주거취약계층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걸 지자체 등은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여태껏 관련 역학조사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건 직무유기에 가깝다.
방역당국의 때늦은 대책은 이미 감염자가 대거 나온 뒤에야 쏟아지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일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30분 안에 확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노숙인이 머물 별도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도 2일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선제적 검사 등 강화된 방역 조치를 ‘곧’ 시행하고 격리 공간의 추가 확보 등을 위해 지원단체 등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주거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요셉의원의 신완식 원장은 “노숙인이 코로나19 상황에서 취약한 계층이란 건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며 “급하게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관리체계를 처음부터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혹시 지금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는 대책이 땜질식 처방의 또 다른 버전이 아니길 바란다. 애꿎은 이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려지는 건 이번 한 번으로도 족하다.
지민구 사회부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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