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로사 대책’에도 20㎏ 체중 감량 택배기사 사망 왜 못 막았나

뉴시스

입력 2020-12-25 22:30 수정 2020-12-25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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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롯데택배 소속 택배 노동자 숨져
대책위 "20㎏ 감소…분류작업 인력투입 無"
정부, 노사 이견에 분류작업 대책 손도 못대
처우개선 담은 '생활물류법' 국회 통과 기대



정부가 택배 노동자들의 잇단 과로사 방지를 위해 지난달 관련 종합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택배연대노조는 택배사들이 분류작업 인력투입 등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을 계속되는 과로사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4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이른바 ‘택배 과로사 방지법’이 그 보완책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5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23일 롯데택배 수원권선 세종대리점 소속 택배 노동자 박모(34)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대책위는 “가족과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일하는 등 하루 14~15시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며 “하루 평균 배송 물량은 적게는 250개, 많게는 300개를 넘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추석 명절 기간 과도한 물량에 힘들어하면서 박씨의 체중은 올해 7월 입사 이후 무려 20㎏나 감소했다고 한다.

대책위는 무엇보다 “고인이 일했던 터미널에는 롯데택배가 약속했던 분류작업 인력도 전혀 투입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10월 롯데택배는 분류작업 인력 1000명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노조는 고강도 작업과 함께 장시간 노동이 과로사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와 택배사들에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강민욱 대책위 교육선전국장도 “고인은 분류작업만 7시간 가까이 했다”며 “분류작업만 하지 않았어도 고인의 죽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박씨가 숨지기 전날인 지난 22일에는 로젠택배 부천지점 소속 택배 노동자가 터미널에서 분류작업을 하던 도중 덮개가 없는 체인에 손가락이 끼어 네 번째 윗마디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관계부처인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12일 이 같은 과제를 포함한 ‘택배 과로사 대책’을 발표했지만, 분류작업 문제는 사실상 손도 대지 못했다. 노사 간 이견이 첨예하다는 이유에서다.

택배 노동자들은 ‘분류업무는 택배기사 업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택배사들은 ‘분류업무는 배송업무에 포함되며 배송 수수료에 분류수당도 포함된다’고 맞서고 있다.

결국 정부는 당시 발표에서 “분류작업은 의견수렴을 거쳐 명확화·세분화하고, 표준계약서에 반영해 합리적 계약 체결을 유도하겠다”는 원론적 대책만 내놨다.

또 분류작업과 같이 노사 간 쟁점이 있는 과제는 노사와 국회, 정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로 공을 넘기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출범한 사회적 합의 기구는 내년 설 전까지 1차 합의 결과를 내놓기로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사회적 합의 기구가 진행 중인 만큼 관련 논의는 계속 해나가고 있다”며 “택배사들이 대책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택배사들의 대책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택배사들의 인력 운영 등은 노사 합의에 따르는 것인 데다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아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책이 선언적 수준에 그친 이유다.

이에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생활물류법) 제정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생활물류법은 위탁계약 갱신청구권 6년 보장, 표준계약서 작성 및 사용 권장, 안전시설 확보 노력 등 택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위탁계약 갱신청구권을 법적으로 부여하는 것 외에는 모두 ‘권장’ ‘노력’ 등으로 정부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의원은 “생활물류법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과로사가 발생한 택배사에 국토부가 자료요청과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것”이라며 “완벽할 순 없겠지만 분명 과로사를 막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대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정안은 내년 1월8일까지인 이번 임시국회 내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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