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안지고 사는게 목표였는데…올해 카드빚만 2500만원”
특별취재팀
입력 2020-12-21 03:00 수정 2020-12-21 09:49
[‘코로나 혹한’ 자영업의 눈물/‘황금 상권’ 홍대골목의 쇠락]가게 40곳 들여다보니
《1997년 외환위기가 회사원을 쓰러뜨렸다면 2020년 코로나19 위기는 자영업자를 강타했다. 경기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로 체력이 고갈된 자영업자들은 매출 절벽의 한계상황에 내몰렸다.국내 대표 상권인 홍대골목 ‘사장님’들을 통해 코로나 혹한에 쓰러져 가는 자영업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월매출 800만원 옛말… 카드빚만 2500만원”▼
벼랑끝에 내몰린 디저트 맛집
“빚 안지고 사는게 목표였는데…”
매일 오전 6시에 가게에 도착해 12시간 넘게 일하지만 4000원짜리 커피 1잔도 팔지 못한 날이 부지기수. 매출 0원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내 잘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책을 하게 된다.
권희범 씨(61)는 경기 고양시에서 4년 넘게 하던 카페를 접고 올 6월 홍대 부근에 새 카페를 차렸다. 미리 가게 계약을 한 데다 여름이 지나면 코로나19가 끝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홍대 술집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손님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권 씨는 20대 후반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컴퓨터부품 가게를 열며 자영업에 뛰어든 ‘용산 1세대’다. 좋은 부품을 구해 정직한 가격에 내놓기만 해도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 밀려 용산전자상가가 쇠락하면서 권 씨도 용산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한 고양시 카페는 디저트 맛집으로 이름을 날렸다. 월 매출 800만 원이 넘었다. 홍대로 가게를 옮긴 지 두 달 만에 매출은 20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이후 하루 매출은 1만 원도 안 된다. 매일 아침 아내와 둘이 새 메뉴를 개발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도 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없다.
권 씨에겐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도 남의 일이었다. 6월 홍대 카페를 개업한 탓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앞서 고양시 카페를 접을 때도 당시 경기도가 지급한 지원금을 못 받았다. “영세 자영업자는 몇십만 원도 절실한데 요건에 안 맞아 못 받는다니 억울하죠.”
요즘 권 씨의 아침 일과는 카페 맞은편 의류회사의 출근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곳 직원 180명이 단골이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출근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더라도 빚 안 지고 사는 게 목표였는데 물거품이 됐네요. 올해 카드 빚만 2500만 원이 생겼으니…. 코로나가 끝나면 살 만할까요? 모르겠습니다.”
▼“투잡 뛰어 연명… 개점휴업 DVD방 접을것”▼
최저임금에 울고 코로나에 무릎
“새벽 손님 뚝 끊겨 월매출 90만원”
6470원(2017년)→7530원(2018년)→8350원(2019년)→8590원(2020년). 최저임금 앞자리가 달라질 때마다 직원들이 한 명씩 줄었다.
최저임금이 한 해 1060원 뛴 3년 전, DVD방을 운영하는 김모 씨(43)는 종업원 4명 중 1명을 처음으로 내보냈다. 시급을 챙겨주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게 해마다 직원 1명씩을 내보내 올해 3월, 그는 혼자가 됐다. 김 씨의 근무시간은 하루 5시간에서 14시간으로 늘었다.
DVD방을 떠난 건 직원들만이 아니었다. 이곳을 찾던 단골손님도 점차 사라졌다. 원래는 일을 끝낸 근처 술집 알바생들이 첫차를 기다리며 김 씨의 DVD방에서 쪽잠을 잤고,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이 출근 전 햄버거를 사들고 와 시간을 때웠었다. 그들은 이제 오지 않는다. 주변 사장들도 김 씨처럼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알바생과 주방 아주머니들을 내보낸 탓이다. “나 살겠다고 식구처럼 지내던 직원을 자른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거죠.”
새벽 첫차를 기다리던 단골손님이 사라진 뒤 DVD방 문 닫는 시간은 오전 5시에서 오전 2시로 당겨졌다. 3년 전 1000만 원을 넘던 월 매출은 지난해엔 600만 원, 지난달엔 9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김 씨는 이제 ‘투잡’을 뛴다. 한때 특허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특허 서류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그나마 용돈벌이 하는 정도다. 가게 월세와 유지비 4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보다, 10년 넘게 매달 60만 원씩 드리던 부모님 생활비를 끊은 게 가슴 아프다. 김 씨가 바란 건 퇴근 후 소소하게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고, 별 탈 없이 DVD방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일상의 행복이 사라진 지금, 그는 11년간 꾸려온 DVD방을 접고 홍대를 떠나기로 했다.
▼“집팔아 버텼는데… 노래방 시작한 내가 죄인”▼
‘직업이 사장님’ 70대 베테랑의 후회
“월세 330만원… 언제 문열어 빚갚나”
열흘 넘게 문 닫은 노래방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8월부터 두 달 가까이 열지 못했던 노래방은 이달 8일, 두 번째 영업정지를 맞았다. “노래방을 시작한 내가 죄인이지.”
안모 씨(71)는 1977년 인쇄소를 시작으로 문방구, 백반식당까지 40년 넘게 ‘사장님’으로 불린 베테랑 자영업자다. 직장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식당 덕에 서울 마포구에 어엿한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다.
주변에서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던 자영업자의 삶은 15년 전 홍대 부근에 노래방을 차린 뒤부터 차츰 무너져 갔다. 노래방이 자리를 잡고 장사가 될 만하면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쫓겨나기를 벌써 4차례. 상권 권리금이 뛰면서 노래방은 대로변에서 뒷골목으로 점점 밀려났다. 결국 3년 전 마포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1년 전 1500만 원을 웃돌던 월 매출은 올봄 700만 원으로 줄었다가 지금은 말 그대로 0원이다. 장사를 못 해도 매달 내야 하는 월세 330만 원 때문에 빚은 4000만 원으로 불었다.
“그래도 나는 40년 넘게 사장님 소리나 들었지, 요즘 젊은이들 보면 더 딱해.” 4, 5년 전 홍대 골목에 사람이 넘쳐날 때만 해도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안 씨도 최저임금에 시급 1000원을 더 얹어주고 겨우 알바생을 뽑았다.
하지만 몇 년 새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딴판이 됐다. 학생들이 먼저 찾아와 알바 자리 없냐고 묻지만 그들을 고용할 여력이 없다. “자영업 평생 이런 적은 처음이야. 경기가 좋으면 알아서들 월급 더 주거든. 정부가 개입하니까 이 꼴이 나는 거야.”
알바생을 줄이고 직접 일하는 시간이 늘면서 인공관절을 삽입한 그의 무릎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제 그만 쉬고도 싶지만 노후에 모아놓은 돈이 변변찮아 노래방을 접을 수 없다. 손님 없는 노래방을 찾아 켜켜이 쌓여가는 먼지를 닦을 뿐이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기자
《1997년 외환위기가 회사원을 쓰러뜨렸다면 2020년 코로나19 위기는 자영업자를 강타했다. 경기 부진과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로 체력이 고갈된 자영업자들은 매출 절벽의 한계상황에 내몰렸다.국내 대표 상권인 홍대골목 ‘사장님’들을 통해 코로나 혹한에 쓰러져 가는 자영업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월매출 800만원 옛말… 카드빚만 2500만원”▼
벼랑끝에 내몰린 디저트 맛집
“빚 안지고 사는게 목표였는데…”
매일 오전 6시에 가게에 도착해 12시간 넘게 일하지만 4000원짜리 커피 1잔도 팔지 못한 날이 부지기수. 매출 0원을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엔 내 잘못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자책을 하게 된다.
권희범 씨(61)는 경기 고양시에서 4년 넘게 하던 카페를 접고 올 6월 홍대 부근에 새 카페를 차렸다. 미리 가게 계약을 한 데다 여름이 지나면 코로나19가 끝날 줄만 알았다. 하지만 홍대 술집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손님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권 씨는 20대 후반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컴퓨터부품 가게를 열며 자영업에 뛰어든 ‘용산 1세대’다. 좋은 부품을 구해 정직한 가격에 내놓기만 해도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에 밀려 용산전자상가가 쇠락하면서 권 씨도 용산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한 고양시 카페는 디저트 맛집으로 이름을 날렸다. 월 매출 800만 원이 넘었다. 홍대로 가게를 옮긴 지 두 달 만에 매출은 20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이후 하루 매출은 1만 원도 안 된다. 매일 아침 아내와 둘이 새 메뉴를 개발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도 하지만 나아질 기미는 없다.
권 씨에겐 코로나 2차 재난지원금도 남의 일이었다. 6월 홍대 카페를 개업한 탓에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앞서 고양시 카페를 접을 때도 당시 경기도가 지급한 지원금을 못 받았다. “영세 자영업자는 몇십만 원도 절실한데 요건에 안 맞아 못 받는다니 억울하죠.”
요즘 권 씨의 아침 일과는 카페 맞은편 의류회사의 출근자가 몇 명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곳 직원 180명이 단골이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출근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하루하루 생활비를 벌더라도 빚 안 지고 사는 게 목표였는데 물거품이 됐네요. 올해 카드 빚만 2500만 원이 생겼으니…. 코로나가 끝나면 살 만할까요? 모르겠습니다.”
▼“투잡 뛰어 연명… 개점휴업 DVD방 접을것”▼
최저임금에 울고 코로나에 무릎
“새벽 손님 뚝 끊겨 월매출 90만원”
6470원(2017년)→7530원(2018년)→8350원(2019년)→8590원(2020년). 최저임금 앞자리가 달라질 때마다 직원들이 한 명씩 줄었다.
최저임금이 한 해 1060원 뛴 3년 전, DVD방을 운영하는 김모 씨(43)는 종업원 4명 중 1명을 처음으로 내보냈다. 시급을 챙겨주지 못할 게 뻔했다. 그렇게 해마다 직원 1명씩을 내보내 올해 3월, 그는 혼자가 됐다. 김 씨의 근무시간은 하루 5시간에서 14시간으로 늘었다.
DVD방을 떠난 건 직원들만이 아니었다. 이곳을 찾던 단골손님도 점차 사라졌다. 원래는 일을 끝낸 근처 술집 알바생들이 첫차를 기다리며 김 씨의 DVD방에서 쪽잠을 잤고,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이 출근 전 햄버거를 사들고 와 시간을 때웠었다. 그들은 이제 오지 않는다. 주변 사장들도 김 씨처럼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알바생과 주방 아주머니들을 내보낸 탓이다. “나 살겠다고 식구처럼 지내던 직원을 자른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거죠.”
새벽 첫차를 기다리던 단골손님이 사라진 뒤 DVD방 문 닫는 시간은 오전 5시에서 오전 2시로 당겨졌다. 3년 전 1000만 원을 넘던 월 매출은 지난해엔 600만 원, 지난달엔 90만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김 씨는 이제 ‘투잡’을 뛴다. 한때 특허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특허 서류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그나마 용돈벌이 하는 정도다. 가게 월세와 유지비 4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보다, 10년 넘게 매달 60만 원씩 드리던 부모님 생활비를 끊은 게 가슴 아프다. 김 씨가 바란 건 퇴근 후 소소하게 친구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고, 별 탈 없이 DVD방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일상의 행복이 사라진 지금, 그는 11년간 꾸려온 DVD방을 접고 홍대를 떠나기로 했다.
▼“집팔아 버텼는데… 노래방 시작한 내가 죄인”▼
‘직업이 사장님’ 70대 베테랑의 후회
“월세 330만원… 언제 문열어 빚갚나”
열흘 넘게 문 닫은 노래방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8월부터 두 달 가까이 열지 못했던 노래방은 이달 8일, 두 번째 영업정지를 맞았다. “노래방을 시작한 내가 죄인이지.”
안모 씨(71)는 1977년 인쇄소를 시작으로 문방구, 백반식당까지 40년 넘게 ‘사장님’으로 불린 베테랑 자영업자다. 직장인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식당 덕에 서울 마포구에 어엿한 아파트도 한 채 마련했다.
주변에서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던 자영업자의 삶은 15년 전 홍대 부근에 노래방을 차린 뒤부터 차츰 무너져 갔다. 노래방이 자리를 잡고 장사가 될 만하면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쫓겨나기를 벌써 4차례. 상권 권리금이 뛰면서 노래방은 대로변에서 뒷골목으로 점점 밀려났다. 결국 3년 전 마포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1년 전 1500만 원을 웃돌던 월 매출은 올봄 700만 원으로 줄었다가 지금은 말 그대로 0원이다. 장사를 못 해도 매달 내야 하는 월세 330만 원 때문에 빚은 4000만 원으로 불었다.
“그래도 나는 40년 넘게 사장님 소리나 들었지, 요즘 젊은이들 보면 더 딱해.” 4, 5년 전 홍대 골목에 사람이 넘쳐날 때만 해도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안 씨도 최저임금에 시급 1000원을 더 얹어주고 겨우 알바생을 뽑았다.
하지만 몇 년 새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딴판이 됐다. 학생들이 먼저 찾아와 알바 자리 없냐고 묻지만 그들을 고용할 여력이 없다. “자영업 평생 이런 적은 처음이야. 경기가 좋으면 알아서들 월급 더 주거든. 정부가 개입하니까 이 꼴이 나는 거야.”
알바생을 줄이고 직접 일하는 시간이 늘면서 인공관절을 삽입한 그의 무릎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제 그만 쉬고도 싶지만 노후에 모아놓은 돈이 변변찮아 노래방을 접을 수 없다. 손님 없는 노래방을 찾아 켜켜이 쌓여가는 먼지를 닦을 뿐이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기자
비즈N 탑기사
‘책 출간’ 한동훈, 정계 복귀 움직임에 테마株 강세
조선 후기 화가 신명연 ‘화훼도 병풍’ 기념우표 발행
붕괴 교량과 동일·유사 공법 3곳 공사 전면 중지
명동 ‘위조 명품’ 판매 일당 덜미…SNS로 관광객 속였다
“나대는 것 같아 안올렸는데”…기안84 ‘100 챌린지’ 뭐길래- ‘전참시’ 이연희, 득녀 5개월만 복귀 일상…아침 산책+운동 루틴
-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잠수함’ 기념우표 발행
-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음주운전’ 인천시의원 송치
- 학령인구 감소 탓에 도심지 초교마저 학급 편성 ‘비상’
- 상속인 행세하며 100억 원 갈취한 사기꾼 일당 붙잡혀
다이어트 콜라의 역습?…“아스파탐, 심장·뇌 손상 위험” 경고
23일부터 폰 개통에 안면인증…내년 3월부터 정식 도입
서울 아파트 월세, 올 3% 넘게 올라… 송파-용산은 6% 훌쩍
서울 서북권 관문 상암·수색의 변화…‘직주락 미래도시’ 변신
“참치보다 비싸다”…겨울 별미 대방어 값 치솟은 이유는?- 내년 1분기 전기요금 동결…한전, 연료비조정단가 kWh당 5원 유지
- 12월 1~20일 수출 430억달러 6.8% 증가…반도체 41.8%↑
- 학원비 5년만에 줄였다… 고물가에 소비위축
- 부자아빠 “내년 최고 유망자산은 ‘이것‘…200달러까지 간다”
- 방산기업 LIG넥스원의 도전… 미사일 넘어 위성도 진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