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의 가마 ‘마흐말’-메카 신전 감싼 ‘키스와’ 서울에

김민 기자

입력 2020-12-21 03:00 수정 2020-12-2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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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캇 오리엔탈 카펫 컬렉션展

서울 종로구 바라캇 서울 지하 갤러리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리엔탈 카펫 컬렉션 전시 전경. 왼쪽은 의례용 장식 가마인 ‘마흐말’이고, 오른쪽은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장식했던 장막 ‘키스와’다. 바라캇 서울 제공

빨강, 초록, 검정의 비단 위에 반짝이는 금사·은사가 아낌없이 수놓아졌다. 멀리서 보면 탐스럽게 얽히고설킨 식물 덩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랍의 문자다. 전시장 가운데 놓인 캐노피 모양의 화려한 천막, 메카 순례에 사용됐던 장식 가마 ‘마흐말’이다. 순례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오스만 제국 술탄의 상징물이 서울 종로구 바라캇 서울 갤러리에 놓였다.

지난달 25일부터 시작한 바라캇 서울의 ‘1002번째 밤의 이야기: 바라캇 오리엔탈 카펫 컬렉션’전은 오스만 황실을 위한 수공예품인 터키 헤레케 카펫과 페르시아 카펫, 성지를 장식한 키스와 등 수 세기에 걸친 호화로운 직조 예술의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펼쳐진 화려한 카펫과 장식물들은 파예즈 바라캇 회장이 수집한 소장품들이다.

전시장 1층에는 황실과 메카 성지에 사용됐던 작품들이 전시됐다. 메카로 떠나는 ‘하지’ 기간에 의례용 가마로 사용된 ‘마흐말’이 이곳에 있다. 마흐말을 사용한 풍습은 아랍권에서 13세기부터 이어져 왔다. 마흐말은 낙타의 등에 올려진 채 술탄을 대신해 성지로 향했다. 그리고 이 행렬 속에 메카 신전을 감싸는 장막인 ‘키스와’가 운반됐다. 키스와도 전시장 안쪽 벽에 함께 전시됐다.

전시장의 마흐말과 키스와는 새겨진 문자를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메카에 다녀온 행렬이 마을을 돌면 주민들은 마흐말의 성스러운 기운을 받으려고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매년 치러지는 성지순례가 끝나면 왕족이나 가까운 사람의 소장품이 됐다.

이들 작품은 색채나 도상이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시기별 눈에 띄는 차이는 볼 수 없으며, 우상 숭배를 금했기에 문자의 비중이 큰 것도 독특하다. 그럼에도 문자를 최대한 화려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장식적 요소를 더했던 것이 눈에 띈다.

지하 1층으로 가면 좀 더 다양한 도상과 스타일의 오리엔탈 카펫을 볼 수 있다. 온갖 종류의 꽃이 피는 ‘생명의 나무’, 물이 흐르는 이국의 정원, 술탄의 궁전과 전사들의 사냥터를 표현한 모습이 나타난다. 구체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카펫에서는 유럽 문화의 영향도 감지할 수 있다. 터키에서 만들어진 ‘헤레케’ 카펫은 중동의 ‘에르메스’로 여겨지는 명품이다. 실크와 금사를 활용한 카펫은 벽을 장식하거나, 바닥에 놓고 기도하는 용도로 쓰였다. 내년 2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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