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한 입에 바다향이, 다시 돌돌 말면 장독대 구수한 맛이…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입력 2020-12-15 13:53:00 수정 2020-12-15 14:03:03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해산물을 발효하고 숙성시킨 젓갈 가운데 ‘감칠맛 대장’은 자하젓을 꼽는다. 자하젓은 세하(細蝦), 갓난아기의 손톱만큼 여리고 작은 바다새우로 담는다. 강과 바다가 맞닿은 청정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세하로 젓갈을 담으면 숙성되면서 투명하게 붉어지니 자하(紫蝦)젓 혹은 자하해(紫蝦醢)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획 즉시 젓갈로 담아야 하는데 충남 서천의 자하젓을 최고로 친다. 자하젓은 조직이 연한 껍질과 내장, 살이 동시에 발효되고 숙성돼 우러나는 감칠맛이 섬세하고 진하다. 영양가도 뛰어나 예로부터 임금님에게 진상하는 음식이었다.

자하젓은 천연 소화제 역할을 한다. 새우 내장에서 나오는 프로테아제(단백질 분해효소)와 리파아제(지방 분해효소)가 풍부하다. 돼지고기 수육을 먹을 때나 족발, 삼겹살을 먹을 때 새우젓을 곁들이면 소화가 잘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발효될 때 생성되는 베타인 성분은 위액의 산도(酸度)를 조절해 위염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새우 살점은 저분자 아미노산으로 분해 되는데 체내 흡수율과 이용율이 높다. 새우껍질은 함유 효소로 인해 키틴과 키토산이 키틴올리고당으로 변한다. 키틴올리고당은 면역에 관여하는 대식(大食)세포를 활성화시켜 면역체계 기능을 끌어올린다.

이런 효능을 몰라도 자하젓오일파스타는 한 끼로 무척 맛있는 요리였다. 싱그러운 올리브오일에 자하젓을 배합해 특제 소스를 만들어 냈다. 엔초비 알리오 올리오에서 응용했다고 하는데 훨씬 더 고소하고 깔끔한 맛이다. 특히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애호박과 궁합이 좋았고 마늘과 어우러져 풍미가 화사하게 퍼졌다. 엔초비 파스타에서 감칠맛은 올리고 비린 맛은 지워 버린 한국형 파스타라고 할까. 탄력 있게 삶은 링귀니 면이 치밀하게 담은 소스의 향미가 입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후루룩 한입 먹으면 바다향이 밀려오고 다시 면을 돌돌 말아 한입 먹으면 할머니 장독대에서 꺼내온 구수한 맛이 가슴을 두드렸다. 자하젓이 밀가루의 소화를 도우니 먹고 나서도 속이 편안했다.


서울 용산구의 레스토랑 ‘더젤’은 건물 자체가 거대한 발효통이다. 와인 저장에 최적화하기 위해 100년 이상 된 벽돌로 지었다. 레스토랑 자체가 숨 쉬는 황토방 같았다. 지하에는 100년 넘은 와인이 보관돼 있고, 1층 와인숍에서는 하우스와인서부터 프리미엄급, 내추럴 와인까지 다양한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숨통을 트이게 하는 남산 전경은 선물이다. 벽이 통유리로 된 2층에 앉으니 남산 중턱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벽난로에 불이 지펴지며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에 마음이 안정됐다.

자하젓오일파스타를 비롯해 더젤의 음식은 한국의 지역 식재료와 발효문화를 재해석했다. 과거에는 회원제로 운영됐지만 지금은 음식과 와인, 삶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편안하게 열려있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