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근하세요”… 밈 날개 달고 양지로 나온 ‘헬창’
김기윤 기자
입력 2020-11-03 03:00 수정 2020-11-03 03:00
체중 조절 및 근육 불리기 집착 유행
신조어 ‘헬창’ 유머 및 밈으로 재탄생
라이프스타일 공개 등 新콘텐츠 제작
코로나 이후 홈 트레이닝 인기에 헬창들 유튜브로 활동반경 넓혀
“통장 잔고 빠지는 것보다 근육 빠지는 게 더 무서워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근육을 뽐내던 권상우를 필두로 비, 이효리의 폭발적 인기는 몸짱 열풍을 불러왔다. 몸짱 신드롬은 육체·정신 건강의 조화를 추구한 웰빙, 힐링 바람에 차츰 스러졌다. 수년 전부터는 건강을 해칠 만큼 체중 감량에 몰입하거나 근육 불리기에만 집착하는 이를 일컫는 ‘헬창’이란 단어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헬창’은 하나의 유머코드이자 ‘밈(meme·출처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나 콘텐츠)’이 돼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스스로 헬창임을 고백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고 ‘자학 개그’ 소재로 활용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한때 비하나 멸시가 강했던 단어의 어감도 긍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헬창들은 서로 “득근하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며 몸을 만든다. 이들의 철저한 생활수칙과 신념은 대중이 경탄하는 수준이다.
‘언더아머 단속반’도 화제였다. 3대 운동(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의 중량 총합이 500kg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달라붙는 언더아머 티셔츠를 입으면 단속한다는 개그다. 미국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유행한 ‘1000파운드 클럽’(약 450kg)에서 비롯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운동한 적이 있다” “운동하는 꿈을 꾼다” “클럽보다 헬스클럽이 좋다”는 헬창 체크리스트도 인기 있다.
구독자 요청으로 제작한 한 보디빌더의 라면 먹방도 화제다. 수프를 넣지 않은 라면과 삶은 달걀 30개의 흰자를 함께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반인륜적” “식욕이 사라지는 신기한 먹방” “존경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회수는 112만 회에 달했다. ‘가짜사나이’를 기획한 유튜브 ‘피지컬갤러리’ 김계란의 ‘헬창의 삶’ 시리즈도 유명하다. 평균 조회수 200만 회에 육박하며 웹툰도 제작했다. 실내 헬스장이 문을 닫자 산, 한강, 공원 운동기구를 찾아 나서 야외 헬스장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헬창은 여성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육질 몸매 인증 사진을 올리며 ‘근육질=남자’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운동하는여자’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900만 건이 넘는다.
이 같은 헬창의 트렌드는 운동의 일상화와 밈 놀이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일상, 패션에도 운동 열풍이 스며들어 ‘헬창’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며 “유튜브, SNS의 빠른 전파 속도로 인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하나의 밈으로 몰려갔다가 또 다른 밈으로 향하는 ‘롤코족’이 대세”라고 분석했다.
‘땅끄부부’ ‘말왕’ ‘흑자헬스’ 등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의 성공에 컬트적 밈이 더해진 독특한 인터넷 놀이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엔 코로나19로 홈트레이닝이 유행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네이버, 카카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헬창 관련 데이터는 단어가 등장한 2018년에 비해 코로나19 이후 3∼4배 많이 검색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신조어 ‘헬창’ 유머 및 밈으로 재탄생
라이프스타일 공개 등 新콘텐츠 제작
코로나 이후 홈 트레이닝 인기에 헬창들 유튜브로 활동반경 넓혀
“통장 잔고 빠지는 것보다 근육 빠지는 게 더 무서워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쌍절곤을 휘두르며 근육을 뽐내던 권상우를 필두로 비, 이효리의 폭발적 인기는 몸짱 열풍을 불러왔다. 몸짱 신드롬은 육체·정신 건강의 조화를 추구한 웰빙, 힐링 바람에 차츰 스러졌다. 수년 전부터는 건강을 해칠 만큼 체중 감량에 몰입하거나 근육 불리기에만 집착하는 이를 일컫는 ‘헬창’이란 단어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헬창’은 하나의 유머코드이자 ‘밈(meme·출처를 알 수 없이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한 문화 요소나 콘텐츠)’이 돼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스스로 헬창임을 고백하며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고 ‘자학 개그’ 소재로 활용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한때 비하나 멸시가 강했던 단어의 어감도 긍정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헬창들은 서로 “득근하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며 몸을 만든다. 이들의 철저한 생활수칙과 신념은 대중이 경탄하는 수준이다.
가수 김종국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박준형 등과 만나 피트니스 이야기를 하며 “근손실보다는 통장에 돈 빠지는 게 낫다”고 말했다. SBS ‘미운 우리 새끼’ 캡처
‘헬창’ 밈의 기원은 디시인사이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 유머 게시물이 시초다. ‘근손실’(근육이 빠지는 현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헬스 트레이닝을 최우선하는 ‘헬창 인지감수성’이 주된 유머코드다. “장례식장에 갔는데 근손실이 올까 봐 울음도 참는다”란 글에 “운구할 때 관을 들어 리프팅 훈련을 할 수 있다”는 댓글이 달린다.‘언더아머 단속반’도 화제였다. 3대 운동(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의 중량 총합이 500kg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달라붙는 언더아머 티셔츠를 입으면 단속한다는 개그다. 미국 트레이너들 사이에서 유행한 ‘1000파운드 클럽’(약 450kg)에서 비롯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운동한 적이 있다” “운동하는 꿈을 꾼다” “클럽보다 헬스클럽이 좋다”는 헬창 체크리스트도 인기 있다.
보디빌더 강경원이 수프를 넣지 않은 라면, 생오이, 달걀 30개의 흰자만 골라 먹고 있다. 유튜브 채널 ‘강경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불러온 헬스장 운영 중단은 헬창들을 유튜브로 끌어들인 계기가 됐다. 가장 주목받은 이는 스스로 ‘타락 헬창’이라 칭하는 구독자 53만 명의 유튜브 채널 ‘핏블리’다. 전형적인 운동 콘텐츠를 소개하던 그는 9월 초부터 헬스장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먹방’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렸다. 피자, 치킨, 치즈볼 등 평소에 입에도 안 대던 고열량 음식을 삼키며 “이래서 회원님들이 식단 관리를 못 했구나” “이런 속세의 맛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타락한 그의 모습에 구독자들이 열광했고, 급기야 닭가슴살, 치즈볼 광고 촬영으로까지 이어졌다.구독자 요청으로 제작한 한 보디빌더의 라면 먹방도 화제다. 수프를 넣지 않은 라면과 삶은 달걀 30개의 흰자를 함께 먹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반인륜적” “식욕이 사라지는 신기한 먹방” “존경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회수는 112만 회에 달했다. ‘가짜사나이’를 기획한 유튜브 ‘피지컬갤러리’ 김계란의 ‘헬창의 삶’ 시리즈도 유명하다. 평균 조회수 200만 회에 육박하며 웹툰도 제작했다. 실내 헬스장이 문을 닫자 산, 한강, 공원 운동기구를 찾아 나서 야외 헬스장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헬창은 여성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육질 몸매 인증 사진을 올리며 ‘근육질=남자’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운동하는여자’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은 900만 건이 넘는다.
이 같은 헬창의 트렌드는 운동의 일상화와 밈 놀이문화가 결합된 산물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일상, 패션에도 운동 열풍이 스며들어 ‘헬창’이라는 단어는 어느새 표준어처럼 쓰이고 있다”며 “유튜브, SNS의 빠른 전파 속도로 인해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하나의 밈으로 몰려갔다가 또 다른 밈으로 향하는 ‘롤코족’이 대세”라고 분석했다.
‘땅끄부부’ ‘말왕’ ‘흑자헬스’ 등 수십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의 성공에 컬트적 밈이 더해진 독특한 인터넷 놀이문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엔 코로나19로 홈트레이닝이 유행한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네이버, 카카오 트렌드 분석에 따르면 헬창 관련 데이터는 단어가 등장한 2018년에 비해 코로나19 이후 3∼4배 많이 검색됐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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