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털 박힌 HDC현산에 무리한 매각 산은…아시아나 노딜 후폭풍

김형민기자

입력 2020-09-03 20:35 수정 2020-09-0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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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결국 채권단 관리로
9개월간 협상 물거품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결렬로 9개월 간 밀고 당기던 산업은행과 HDC현대산업개발의 줄다리기도 끝을 맺게 됐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꿈꿨던 ‘모빌리티 그룹’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이번 기회에 금호와의 악연을 끝내겠다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목표도 무산됐다.

일각에선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털어내지 못한 채 급하게 매각을 추진한 산업은행, 정부의 요구에도 협상을 거부해 미운털이 박힌 HDC현산 모두 이번 매각 무산에 따른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맞을 것으로 전망한다.

●채권단 “부실 알고도 뛰어든 거 아니냐”
지난해 12월,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입찰에 뛰어들어 무려 2조5000억 원을 써내 일찌감치 다른 인수 후보를 앞질렀다. 미래에셋이라는 든든한 자금줄까지 동원한 정몽규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HDC현산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탈바꿈하는 목표를 세웠다.

그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퍼지고 각국이 봉쇄조치를 단행하자 항공기가 아예 뜨지를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4조 원 대로 불어났다. ‘무리한 인수로 그룹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승자의 저주’ 그림자가 HDC현산에 드리워졌다.

금호산업과 HDC현산 간의 불통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에 대한 자료 요구를 수십 차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금호산업은 반대로 HDC현산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맞섰다. 결국 HDC현산은 올해 7월 12주간의 재실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계열사 부당지원, 부채 급증 등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사정을 하나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렸다.

채권단은 당황했다. 채권단도 아시아나항공이 금호그룹 아래서 부실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인수 실사를 7주간 진행했으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실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뛰어든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모든 인수합병은 인수 후 리스크 대비 이득이 크면 성사된다”라며 “(12주 재실사는) 무산을 대비한 포석이다”라고 했다. 이동걸 회장은 결국 재실사 요구를 거부했다.

●감사 한정의견 받은 회사를 매각한 산업은행
이번 매각 무산에 따른 책임에서 산업은행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19년 3월 회계 문제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했다. 산업은행은 곧바로 다음 달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아시아나항공은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다. 그만큼 회사의 재무상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시아나항공과 재무구조 개선 관련 업무협약(MOU)을 한 산업은행이 회사의 재무 상황을 들여다보고 불투명한 부분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면 이번 협상이 이렇게 길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 입장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최대한 빨리 털어내고 싶었을 것”이라며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무산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산업은행은 질긴 악연인 아시아나항공을 다시 품어야하는 부담이 생긴다. 영구채 8000억 원을 출자전환해 최대 주주가 될 수도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 약 2조 원을 회사에 쏟아 부어야 한다.

●미운털 박힌 HDC현산…금호 악연 이어가는 산은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 딜 무산으로 산업은행은 결국 금호와의 악연을 다시 이어가게 됐다”라고 했다.

HDC현산도 정부와 채권단에 미운털이 박혔다. HDC현산은 코로나19 이후 줄기차게 대면협상도 나서지 않고 미온적 태도를 유지하며 정부와 채권단의 애를 태워왔다. 인수 가격 인하라는 산은의 파격적 조건에도 결국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은 시간을 왜 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차라리 공개적으로 코로나19로 도저히 못 사겠으니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는 게 정정당당하다”라고 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코로나19가 언제 잠잠해질지 예단할 수 없고 회사의 민낯이 이번 인수합병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 회사 가치가 급락했다. 아시아나항공도 부실자산을 털어내야 하는 구조조정이 피하기 어렵다. 다만, 현 정부의 인적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 당분간 국책은행 우산 안에서 유동성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이제는 결렬 후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김형민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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