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홀린 매운맛… 프리미엄 라면으로 ‘辛바람’

이미영 기자

입력 2020-08-19 03:00 수정 2020-08-1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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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가 꼽은 ‘가장 맛있는 라면’ 농심 신라면 블랙

지난해 4월 농심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열린 뮤직페스티벌 행사에서 현지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신블랙’ 샘플링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했다. 농심 제공
최근 미국 인스턴트 라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라면협회(WINA·World Instant Noodles Association)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 인스턴트 라면만 약 46억3000만 개로, 4년 전에 비해 5억5000만 개나 더 팔렸다. 시장 규모는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달한다. 한국 라면 생산업체들은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 시장을 뚫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농심의 활약이 돋보인다. 닐슨·유로모니터 등 시장조사기관 분석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2%에 불과했던 미국 내 농심 시장점유율은 최근 15%까지 올라 일본 도요스이산(46%), 닛신(30%)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러한 성과를 낸 배경에는 2011년, 출시 4개월 만에 한국에서 생산 중단 위기를 겪은 ‘신라면 블랙’이 있다.

○ 해외 시장으로 눈 돌려 위기 극복

미국 시장 진출 9년 차인 신라면 블랙은 최근 프리미엄 라면으로 시장 내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5월 뉴욕타임스의 제품 및 서비스 평가 매체인 ‘와이어커터’가 요리사, 기자, 인스턴트 라면 전문가 등 7명을 초대해 평가를 진행한 결과 신라면 블랙이 11개 제품 중 가장 맛있는 라면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판정단은 ‘매운맛과 쫄깃한 면발, 야채 건더기의 조합이 훌륭하다’고 호평했다. 또한 이번 품평회에서 신라면, 짜파구리 등 농심 제품이 4개나 선정되는 등 미국 내에서 급성장한 농심의 시장 입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신라면 블랙은 2011년 4월 농심이 야심 차게 개발한 신제품이었다. 연구개발 기간 3년, 개발 비용만 100억 원이 들었다. 이미 포화하고 있는 라면 시장에서 더욱 까다로워진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9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들은 기존 라면보다 가격이 2배가량 비싼 신라면 블랙을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신라면 블랙에 표기된 영양성분이 과장됐다며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소비자들이 이 신제품에 등을 돌리는 사태가 빚어졌다. 결국 농심은 4개월 만에 신라면 블랙 생산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어렵게 개발한 제품을 포기할 순 없었다. 이미 글로벌 박람회에서 신라면 블랙은 좋은 평가를 받아 여러 해외 시장으로부터 선주문을 받은 상태였다. 농심은 프리미엄 라면에 거부감이 없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 신라면 블랙을 판매해보기로 결정했다. 생산은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설립한 공장에서 이뤄졌다.

미국 시장에 주력하던 사이 한국 시장에서 뜻밖의 희소식이 들렸다. 신라면 블랙을 원하는 국내 고객들이 미국 시장에서 역직구로 신라면 블랙을 사먹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농심은 국내 소비자들의 재요청으로 이듬해인 2012년 10월 신라면 블랙의 국내 판매를 재개했다.

○ 건강하고 매운 ‘한국 맛’

미국 시장에서의 전략 역시 ‘프리미엄’이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공략했다. 인스턴트 라면이더라도, 좋은 원료와 공정을 거쳐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이미 라면 시장을 선점한 일본 업체들이 저소득층을 주 타깃층으로 잡고 저렴한 원료로 생산한 라면들과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미국 소비자들이 부르기 편하게 ‘신블랙(Shin Black)’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농심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높은 미국에서 라면을 저가의 음식으로 포지셔닝하기보다 스파게티 등의 면류와 대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고급화를 추구했다”고 말했다.

또한 농심은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라면 맛을 현지화하지 않았다. 한국의 맵고 개운한 라면 맛을 고수해 맛을 차별화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농심이 택한 전략은 한국식 시식 행사였다. 월마트, 코스트코 등 미국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안방구장, 뉴욕 양키스 안방구장 등에서 신라면 시식 행사를 열었다. 현지 소비자들이 신블랙을 맛보고 기존 라면과의 차별점을 직접 경험하도록 했다.

농심의 노력은 조금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경쟁업체 라면에 비해 3배가량 비싼 신블랙을 기꺼이 선택했다. 2017년 1700만 달러였던 매출이 2019년 2180만 달러까지 성장했다.

○ 코로나19를 새로운 기회로

농심은 신라면 블랙을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매출을 늘리는 호재로 작용했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간편식에 대한 수요가 크기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농심은 미국 시장에서 2020년 상반기에만 135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전년 동기 대비 49% 늘어난 수치다. 특히 비대면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면서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아마존에서의 신라면 블랙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9%나 늘었다. 신동엽 농심 미국법인장은 “지난해 9월 2억 달러를 들여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제2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는 등 미국 및 캐나다, 멕시코 등 시장 공략을 위한 투자도 크게 늘렸다”며 “뛰어난 제품과 체계적인 생산, 유통 시스템을 확보해 미국 시장 1위에 올라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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