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불어 좋은 곳

강릉 평창 횡성 정선=김동욱 기자

입력 2020-07-18 03:00 수정 2020-07-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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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기획]강원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풍경
탁 트인 고원에 흐드러진 야생화… 울창한 숲속 그늘은 나그네 쉼터
밤하늘엔 별총총 은하수 흐르고 우웅 발전기 울음은 선풍기 소리


해발 1256m 강원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한때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가 조성돼 있었지만 이젠 샤스타데이지 등 꽃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 꽃들은 많이 진 상태지만 초록빛 초원이 하얀 풍력발전기 날개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푹푹 찌는 여름. 시원함이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바람이 많은 곳으로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풍력발전단지는 바람이 많이 부는 길목에 주로 자리 잡고 있다. 그중 강원도에 위치한 풍력발전단지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이나 능선에 있다. 고지대인 데다 바람까지 많아 다른 곳에 비해 기온이 3∼5도 낮다. 방풍 점퍼가 필요할 정도지만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눈과 몸,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바람 맞기 좋은 강원도 명소들을 소개한다.



○ 횡성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태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하늘 아래 첫 학교’였던 태기분교의 터가 남아 있다. 1968년 개교해 1976년 문을 닫은 이 학교에는 106명의 학생들이 공부했다.
태기산(해발 1261m)은 횡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횡성 신대리에서 출발해 송덕사를 거쳐 세 가지 코스를 선택해 오를 수 있다. 등산 시간은 2시간 반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자동차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국도 6호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해발 980m의 양구두미재가 나온다. 국도 6호선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강릉으로 가는 유일한 국도였다. 하지만 이젠 오가는 자동차도 드문 한적한 도로여서 운전하기 편하다.

양구두미재까지만 올라가도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여기에서 태기산 정상까지는 약 4.3km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등산을 즐길 수 있다. 길은 포장과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가며 나오는데 일부 비포장 구간은 길이 꽤 험하다. 승용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도 있어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한다.

강원 평창과 횡성에 걸쳐 있는 태기산(해발 1261m)의 양구두미재에는 능선을 따라 20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태기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풍력발전기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태기산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20기로 능선을 따라 늘어선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높이 80m에 날개 길이만 40m인 풍력발전기를 밑에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모습에 살짝 위압감마저 느껴진다. 날개가 돌면서 내는 ‘쉬익 쉬익’ 소리는 공포영화에 나오는 효과음 같다.

태기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하늘 아래 첫 학교’였던 태기분교의 터가 남아 있다. 1968년 개교해 1976년 문을 닫은 이 학교에서는 106명의 학생이 공부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숲 체험시설과 함께 ‘하늘 아래 첫 학교’였던 태기분교 터(해발 1200m)가 나온다. 태기분교는 1968년 개교해 1976년 문을 닫았다. 가난한 화전민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싶었던 한 선생님이 도지사를 만나 교실을 마련해줄 것을 호소한 끝에 교실 4개가 있는 학교가 만들어졌다. 106명의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 분교가 있었던 터 옆에는 작은 전시관이 있다. 학교 주위에는 나무로 만든 짧은 산책로가 있다.

태기산 정상 부근에는 야생화화원, 양치식물길 등이 조성돼 있다. 걸어서 5분이면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짧지만 사슴 조형물과 다양한 식물 등 볼거리가 많다.
태기산 정상은 군부대가 있어 끝까지 오르지는 못한다. 그 대신 부대 바로 밑에 전망대가 있다. 승용차 5, 6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도 있다. 전망대에 서면 횡성은 물론이고 평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도 전망이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 강릉 안반데기 풍력발전단지
해발 1100m 고지대에 위치한 강릉 안반데기 마을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은 채소밭과 그 채소밭을 지키듯이 서 있는 10여 기의 풍력발전기가 인상적이다. 안반데기라는 마을 이름은 ‘안반덕’의 강릉 사투리가 굳어진 것으로 ‘안반’은 떡메로 쌀을 칠 때 쓰는 오목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판을, ‘덕’은 고원의 평평한 땅을 뜻한다. 험준한 백두대간 줄기에 우묵하고 넓은 지형이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채소밭 면적은 축구장 280개 정도의 크기인 약 198만 m²로 독수리 날개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1965년부터 화전민들이 삽과 곡괭이로 일군 산밭으로 이젠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가 됐다. 이곳은 크게 안반데기와 고루포기 구간을 나눠 걸을 수 있다. 풍경을 눈에 담으며 여유롭게 걸어도 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마을 전체에 포장도로가 나 있어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된다. 하지만 도로 폭이 좁아 만약 반대 방향에서 다른 자동차가 온다면 한참 뒤로 후진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강원 강릉의 안반데기는 해발 1100m 고산지대에 대규모 고랭지 배추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어우러진 곳이다. 배추밭의 면적은 약 198만 ㎡로 축구장 280개 정도의 크기다.
안반데기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멍에전망대는 현재 보수 중인 관계로 일시 폐쇄된 상태다. ‘멍에’는 밭갈이 할 때 소의 어깨에 걸치는 농기구의 하나다. 전망대 둘레의 돌벽은 2010년 화전민의 개척정신과 애환 등 굴곡진 삶을 기리기 위해 밭갈이 현장에서 나온 돌을 모아 쌓은 것이다.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없던 시절, 안반데기에선 소를 이용해 밭갈이를 했다. 전망대에 꼭 오르지 않더라도 안반데기 마을 어느 곳에서도 마을 특유의 오목한 지형과 푸릇푸릇한 채소밭 풍경을 볼 수 있다. 안반데기 남쪽에는 해발 1146m의 옥녀봉이, 북쪽에는 해발 1238m의 고루포기산,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등산로가 있다.

해발 1256m 강원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한때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가 조성돼 있었지만 이젠 샤스타데이지 등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
청옥산 정상(해발 1256m)에 오르려면 승용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야 한다. 길 양편으로 소나무 낙엽송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렇게 길을 가다보면 눈에 띄는 숲이 나타난다. 자작나무 군락지로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처럼 면적이 넓진 않지만 흰색의 나무와 초록색 이파리가 잘 어우러진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도로가 나오면 곧 거대한 구릉이 나타난다. 비포장도로를 운전할 때는 흙먼지가 많이 발생하니 차량 간 거리를 두고 가는 게 좋다. 10여 분 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구릉 너머로 10여 기의 하얀색 풍력발전기를 비롯해 삿갓봉, 남병산, 백파령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구릉이 조성됐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육백마지기’란 지명은 정상 부근의 평탄한 지형이 볍씨 600말을 뿌릴 수 있는 넓은 곳이라는 뜻이다. 청옥산은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기로 유명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산나물을 뜯어 연명하던 주민들이 삶의 고달픔을 잊기 위해 부른 노래가 ‘평창아라리’다.

해발 1256m 강원 평창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한때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가 조성돼 있었지만 이젠 샤스타데이지 등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구릉을 가득 채웠던 채소밭은 현재 많이 줄었다. 그 대신 축구장 3개 면적에 여름철에는 샤스타데이지가 만개한다. 현재 꽃들은 많이 진 상태지만 초록빛 초원이 시원함을 더 한다. 주말이면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린다. 주차장은 큰 편이지만 주말이면 도로에까지 주차를 해야 할 정도다. 이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방문하는 게 좋다. 이곳은 여름밤에 선명한 은하수를 볼 수 있다. 한때 야영객들이 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야영과 취사 행위가 금지됐다.

○ 정선 정암풍력발전단지
해발 1330m인 강원 정선의 함백산 만항재 산봉우리에는 14기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능선을 따라 정선 운탄고도를 트레킹할 수 있다.
정선의 함백산 자락에 위치한 만항재(해발 1330m)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야생화 군락지 중 하나다. 함백산 능선을 따라 14기의 풍력발전기가 운영되고 있다. 만항재부터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곳을 향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많이 부는 바람길 트레킹 코스가 인기있다. 길을 따라 걷노라면 풍력발전기가 내는 소리가 선풍기가 도는 소리처럼 들려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로 시작되는 고 김광석의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글·사진 강릉 평창 횡성 정선=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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