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농사 짓고 농부는 경영… 데이터 농업 시대 열릴 것”

김호경 기자

입력 2020-06-18 03:00 수정 2020-06-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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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개척하는 청년창업가들] <16> 벤처기업 그린랩스 신상훈 대표

2018년 12월 네덜란드에서 막을 내린 ‘제1회 세계농업인공지능(AI)’ 대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세계 2위 농업 수출국인 네덜란드의 베테랑 농부와 세계 각국 AI 연구팀이 3개월간 누가 더 오이를 잘 키우는지 경쟁했는데 우승자는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이 주축인 AI 팀이었다. 방울토마토를 두고 경쟁한 2회에서도 본선에 진출한 5개 AI 팀 모두 농부보다 수확량이 많았다.

고된 농사일을 데이터와 AI에 맡기고 육체노동에서 해방된 농부는 지식노동자로 변신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영에 집중하는 세상. 국내 첨단농업 신생 벤처기업 ‘그린랩스’가 그리는 미래 농업의 모습이다. 신상훈 그린랩스 대표(40)는 “사람보다 데이터와 AI가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미 확인됐다”며 “머지않아 ‘데이터 농업’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린랩스는 농업에 첨단기술을 접목한 국내에선 드문 ‘애그테크(AgTech)’ 기업이다. 전자책 ‘리디북스’와 소개팅 애플리케이션 ‘아만다’를 창업했던 신 대표와 소셜커머스 업체 ‘쿠차’ 창업자 출신 안동현 대표, 최성우 대표가 2017년 5월 함께 차렸다.

모바일 비즈니스를 하던 이들이 농업에 주목한 건 여전히 농업이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인류에게 꼭 필요한 산업인데 발전은 더뎠다”며 “기술을 통해 발전시킬 잠재력이 무궁하다고 봤다”고 회상했다.

그린랩스는 사람에 의존하던 농사일을 자동화할 수 있는 스마트팜 솔루션 ‘팜모닝’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모든 작물은 생장시기에 따라 온도, 습도, 일사량 등 최적의 생육환경이 정해져 있다. 기존 스마트팜 대다수는 농부가 이런 환경을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는 데 그쳤다. 온도를 얼마나 올리고 내릴지, 환기를 해야 할지 등은 전적으로 농부가 경험에 의존해 결정해야 했다. 이렇다 보니 수많은 장비를 동시에 조작해 원하는 온도나 습도를 맞추기도 쉽지 않은 데다 자칫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한 해 농사를 망칠 위험이 있었다.

그린랩스는 이런 한계를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로 보완했다. 농장에 설치된 100여 개의 센서를 통해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농업 전문가 자문과 관련 논문들을 바탕으로 만든 생육환경 데이터를 제공해 농부가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농부가 적정 온도와 습도 등을 설정하면 컴퓨터가 알아서 수많은 장비의 자동 제어도 할 수 있다.

신 대표는 “기존 스마트팜은 수동 조작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리모컨’에 불과했지만 그린랩스 솔루션은 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린랩스 솔루션을 도입한 농가는 700여 곳. 그린랩스에 따르면 생산성 향상을 통해 매출이 늘어나는 농가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이 솔루션을 활용해 베트남 현지에 딸기 농장을 지은 농가도 나왔다. 충남 천안시에서 7년째 딸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두호 씨(54)는 베트남에서 국산 딸기가 고가에 팔린다는 걸 알고 현지 진출을 고민하던 차에 그린랩스 솔루션을 접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현재 천안에 머물면서 베트남 농장 상태를 확인하고 제어하고 있다. 그린랩스 솔루션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 작물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 결과, 병충해가 50%가량 줄었고 그만큼 농약 사용량도 줄었다.

그린랩스는 농산물 유통 분야로도 사업을 넓힐 계획이다. 고령화와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가들이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이들에게 온라인 판매 대행과 유통 컨설팅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온라인 쇼핑은 일상적인 서비스로 자리매김했지만 이런 쇼핑몰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방식은 여전히 중간 유통상인을 통한 과거 방식 그대로다. 신 대표는 “온라인 직거래를 원하는 농가와 온라인 쇼핑 채널을 연결해줌으로써 농가에는 제값을 받을 기회를, 소비자에겐 값싸게 살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한국을 세계적인 농업 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었다. 한국 땅은 너무 좁은 게 아닐까. “네덜란드는 남한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데 세계적인 농업 강국이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하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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