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년 만에 돌아온 그때 그 사람 그 풍속
조종엽 기자
입력 2020-05-20 03:00 수정 2020-05-20 03:00
기산 김준근 풍속화전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까지 생업-의식주-의례-놀이 등
19세기 말 민중의 삶 생생 묘사… 1894년 獨서 한국인 첫 전시회
김준근은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 모습까지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민속의 전 분야를 그렸다. 단오에 씨름하고 그네 타며, 매사냥을 하고, 쟁기로 밭을 갈고, 손수 두부를 만들고, 가마 타고 시집장가가고, 상여를 메던 120여 년 전 한국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관아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도, 지금은 사라진 판수(判數·점을 치거나 독경하던 시각장애인)의 모습도 그의 그림에 담겨 있다.
기산이 그린 풍속화의 구매자는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이었다. 여행가, 외교관, 상사 주재원, 선교사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풍속을 종이에 담아 고국으로 가져갔다. 오늘날 여행지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오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을 터다. 정형호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은 “개항기 외국인이 남긴 조선 방문기와 사진이 그들의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촬영한 것임에 비해, 기산의 그림은 19세기 후반 다양한 계층의 삶을 총체적으로 옮겨놓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근의 그림 약 1500점 가운데 국내에 있는 것은 약 300점뿐이고 거의 해외(유럽 878점, 북미 138점 등)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은 독일 MARKK(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기산 풍속화 71점 등을 선보이는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를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한다. 이 그림들은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된 이후 12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외의 기산 풍속화가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에 온 건 처음이라고 박물관은 밝혔다. 지난해 박물관이 국내에서 경매로 수집한 28점도 볼 수 있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880, 90년대다. 등장인물을 조선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천로역정’ 번역본(1895년 간행)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1848∼1901), 미국 해군 제독이자 외교관인 슈펠트(1822∼1895)의 딸,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1842∼1893),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립했던 독일인 마이어(1841∼1926) 등이 그의 작품을 다수 구입한 이들이다. 이들의 구입 관련 기록에서 김준근의 활동지가 개항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마이어는 1894년 독일 함부르크민속공예박물관에서 자신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까지 생업-의식주-의례-놀이 등
19세기 말 민중의 삶 생생 묘사… 1894년 獨서 한국인 첫 전시회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서 선보이는 기산 김준근의 여러 풍속화를 한 화면에 모았다. 각각 다루는 주제는 1 연날리기 2 줄광대 3 타작 4 짜기 5 새참 6 썰매 사냥꾼 7 부엌 풍경 8 서당 9 전통 혼례의 초례(醮禮) 10 승려 11 검무 12 시집가는 모습 13 탈춤 14 매사냥 15 상여행렬 16 빨래터 17 포졸 18 널뛰기 19 다듬이질 등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풍속화라면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의 걸작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주제의 다양성과 작품의 양으로 보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천 부산 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기산 김준근(?∼?)이 그들을 뛰어넘는다.김준근은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 모습까지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민속의 전 분야를 그렸다. 단오에 씨름하고 그네 타며, 매사냥을 하고, 쟁기로 밭을 갈고, 손수 두부를 만들고, 가마 타고 시집장가가고, 상여를 메던 120여 년 전 한국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관아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도, 지금은 사라진 판수(判數·점을 치거나 독경하던 시각장애인)의 모습도 그의 그림에 담겨 있다.
기산이 그린 풍속화의 구매자는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이었다. 여행가, 외교관, 상사 주재원, 선교사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풍속을 종이에 담아 고국으로 가져갔다. 오늘날 여행지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오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을 터다. 정형호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은 “개항기 외국인이 남긴 조선 방문기와 사진이 그들의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촬영한 것임에 비해, 기산의 그림은 19세기 후반 다양한 계층의 삶을 총체적으로 옮겨놓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근의 그림 약 1500점 가운데 국내에 있는 것은 약 300점뿐이고 거의 해외(유럽 878점, 북미 138점 등)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은 독일 MARKK(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기산 풍속화 71점 등을 선보이는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를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한다. 이 그림들은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된 이후 12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외의 기산 풍속화가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에 온 건 처음이라고 박물관은 밝혔다. 지난해 박물관이 국내에서 경매로 수집한 28점도 볼 수 있다.
▼ 구한말 조선의 팝아티스트… ‘천로역정’ 삽화도 그려 ▼
‘저잣거리의 화가’ 기산 김준근
1890년대 이미 서양에서 작품이 정식으로 전시된 한국인 화가라 할 수 있는 김준근은 생몰연도를 비롯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880, 90년대다. 등장인물을 조선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천로역정’ 번역본(1895년 간행)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1848∼1901), 미국 해군 제독이자 외교관인 슈펠트(1822∼1895)의 딸,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1842∼1893),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립했던 독일인 마이어(1841∼1926) 등이 그의 작품을 다수 구입한 이들이다. 이들의 구입 관련 기록에서 김준근의 활동지가 개항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마이어는 1894년 독일 함부르크민속공예박물관에서 자신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김준근은 ‘저잣거리의 화가’였다. 예술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서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100개가 넘는 소재를 반복해 그렸고, ‘공장’과 비슷한 화실을 차려 그림을 대량 생산하고 자신의 인장을 찍어 팔았을지도 모른다. 이경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김준근은 한류의 원조이자 앤디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민속학, 민족학 연구 차원에서 활용됐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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