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자녀들에 경영권 안물려줄것”

김현수 기자 , 서동일 기자 , 이건혁 기자

입력 2020-05-07 03:00:00 수정 2020-05-07 05: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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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대국민 사과]
대국민 사과 회견 “더이상 승계 논란 안생기게 하겠다”
노조 와해 논란엔 “무노조 말 안나오게 노동3권 보장”
삼성 준법감시위 권고 수용… “외부 질책과 조언 경청”


“국민에 실망 안겨” 고개 숙인 李부회장 6일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국민에게 실망을 안겼다” “삼성 노조 문제로 상처 입은 분들께 사과드린다”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말하며 모두 세 번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깜짝 선언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날 오후 3시 짙은 남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이 부회장은 단호한 표정으로 기자 80여 명이 기다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다목적홀 앞에 섰다. 그는 “오늘의 삼성은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민의 사랑과 관심 덕분”이라면서도 “기술과 제품은 일류라는 평가를 받지만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다. 저의 잘못으로, 사과드린다”며 단상 옆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이 부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3월 10일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경영권 승계 △노조 와해 논란 △준법감시위 활동과 재판 논란 등 세 가지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사과를 권고하면서다. 이 부회장은 각각의 항목에 대해 사과 말을 전하며 고개도 세 번 숙였다.

경영권 승계 논란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훌륭한 인재를 모시는 것이 나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면서 “오로지 회사의 가치를 올리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준법위 권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승계 세습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무노조 경영과 관련해 이 부회장은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란 평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노동 3권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시민사회 소통 및 준법감시위와 관련해 “외부 질책과 조언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겠다. 재판이 끝나도 준법위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오늘은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미래였다”며 “최근 2, 3개월 동안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다.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주식시장에서 삼성그룹주는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나온 직후 장중 10% 넘게 뛴 끝에 전 거래일 대비 6.61% 상승으로 마감했다. 삼성전자는 1.44% 올랐다.


▼ “성별 국적 불문하고 인재 영입… 국격 어울리는 새 삼성 만들것” ▼

에버랜드 전환사채 등 거론하며 작심한듯 ‘경영 세습 불가’
강조오너 있는 10대 그룹 중 처음… “경영권 승계 관련 새역사 열릴것”

6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삼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회견장 출입 기자 수를 80명으로 제한하고 좌석 간격을 넓혔다. 사진공동취재단
형식은 사과였지만 실질 내용은 삼성의 비전 제시였다.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문’ 발표 자리에서 승계, 노사문화, 준법경영 등 굵직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풀어낸 후 결국 ‘새로운 삼성’으로 끝을 맺었다.

“최근 2, 3개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국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선 의료진과 공동체를 위한 자원봉사자들, 시민들….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제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어울리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습니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반도체 시장 진출을 알린 1983년 고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양에서 질로의 전환을 선언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이은 이 부회장의 미래 비전 선포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고 인재가 이끄는 ‘명품 기업’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사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향후 승계, 노사문화, 준법경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 경영권 세습 고리 끊는다

이날 이 부회장이 작심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삼성의 현안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말하겠다”고 운을 뗀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았다”며 “특히 삼성에버랜드(전환사채 저가 배정·무죄 판결)와 삼성SDS(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유죄 판결)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매우 강한 어조로 “분명하게 약속드린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오랫동안 생각해 왔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을 주저해 왔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고 선언했다.

이번 선언이 실천될 경우 삼성은 창립 82년 만에 이병철 창업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던 가족경영을 뒤로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다. 이 부회장은 슬하에 1남(20) 1녀(16)를 두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17.08%), 삼성SDS(9.2%), 삼성전자(0.7%), 삼성생명(0.09%)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파격 선언’ 배경에 대해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미래 생존을 담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주업인 정보기술(IT) 시장의 룰이 급변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4년 회장님(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난 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깨닫고 배운 것이 적지 않다. 한 차원 높게 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며 “삼성은 전문성과 통찰력을 가진 최고 수준의 경영진이 필요하다. 이게 제가 가지고 있는 절박한 위기의식”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 그들이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삼성은 계속 삼성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가족 승계 안 하겠다” 재계로 확산되나


재계에 따르면 오너가 있는 10대 그룹 가운데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삼성이 처음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승계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한 적이 있었고, 지난해 코오롱그룹도 이웅열 회장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자녀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한 건 이 부회장이 처음”이라고 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국식 오너 중심 경영에서 탈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며 “앞으로 재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새로운 역사가 열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너 경영이 한국 산업화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면서도 “삼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언을 한 건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가겠다는 다짐”이라고 풀이했다.

사실 삼성은 이미 2018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하며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데 이어 최근에는 이사회 의장에 최초로 외부 인사인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을 선임하기도 했다. 애플, 구글과 경쟁하는 글로벌 IT 기업으로서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로 경영하겠다는 의지였다. 구글은 지난해 창업자가 경영 전면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맡겼고, 애플 역시 2011년 스티브 잡스 작고 이후 팀 쿡 최고경영자가 이끌고 있다.

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이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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