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1유로에 드립니다” 유럽 지방도시들 생존 안간힘

특별취재팀

입력 2019-11-12 03:00:00 수정 2019-11-1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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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이코노미 시대 변해야 살아남는다]
<2> 세계로 번지는 ‘저패니피케이션’
인구유출 막기 위한 정책 쏟아내


“인생 최대의 꿈이 ‘내 집 마련’이었는데 리모델링 비용 5만5000파운드(약 8200만 원)로 그 목표를 이뤄서 너무 만족하죠.”

10월 31일 영국 리버풀에서 만난 식당 웨이트리스 레이철 씨가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것은 리버풀시의 ‘1파운드 주택 정책’ 덕분이었다. 상권도 죽고 유동인구도 사라져 버린 도시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리버풀시는 2013년부터 시 소유의 빈집을 단돈 1파운드(약 1490원)에 넘겨주는 파격적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더 이상 돈이 돌지 않는 쇠퇴한 산업도시인 리버풀은 떠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수천 채가 빈집으로 남아있다. 주택을 철거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제도다. 그럼에도 진도는 더디다.


리버풀시의 주택정책담당 직원 토니 무스데일 씨는 “현재까지 67채가 리모델링됐으며 29채가 수리 중이고, 7채가 소유권 이전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제로 이코노미’의 파도가 경제 여건이 취약한 지방도시를 덮침에 따라 각국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감소라는 난제(難題)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인구 감소는 지자체 세수 감소와 재정 파탄에 이어 도시 소멸로까지 이어진다. 각국 도시들은 주민들에게 주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취업 알선, 육아 지원 등 다양한 실험에 나서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 “무료로 빈집 제공” “노인용 자율주행 버스”

유럽에서는 리버풀을 벤치마크해 ‘1유로(약 1260원) 주택’이 곳곳에서 도입되고 있다. 프랑스 북부 도시 릴 인근 루베시도 그중 한 곳이다. 빈집 5000여 채로 몸살을 앓던 루베시는 2018년부터 ‘1유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 위치한 소도시 올로라이 역시 2250명이던 인구가 1300여 명으로 줄어들자 지난해부터 석조 주택 200여 채를 채당 1유로에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아브루초주는 기업들에 ‘취업 보너스’를 내걸었다. 16∼24세 청년들을 새로 고용하는 업주에게 최대 8060유로(약 1036만 원)의 지원금을 준다. 2016년 한 해 동안 850명의 고용주가 이 보너스를 받았다. 이탈리아 국가 차원에서도 전문지식이나 기술 보유자, 해외 대학 학위자 등 고숙련 근로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 감면 정책을 쓰고 있다.

떠나는 인구를 잡기 위해 독자적인 콘텐츠를 키우는 곳도 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시는 1990년대엔 유령도시에 가까웠다.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의 본사와 공장이 있지만 근로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썰물처럼 타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 테마파크 ‘아우토슈타트’가 생기고 지자체와 기업의 일자리 지원 노력 덕분에 관광객이 다시 증가하는 등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 지방 쇠퇴-인구 감소의 대세는 막기 어려워

저패니피케이션(일본화)의 발원지 일본에서는 이미 다양한 지방 살리기 정책 아이디어가 나온 상황이다. 2014년 정책제언기관 일본창성회의는 2040년까지 기초단체 1799곳 가운데 절반인 896곳이 인구 감소로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 이른바 ‘마스다 리포트’를 내놨다.

오쿠타마에서는 2015년부터 빈 주택을 무료로 제공하고 리모델링 사업비까지 지원한다. 집을 고치는 데 들어간 사업비가 10만 엔 이상일 경우 그중 반액을 최대 200만 엔(약 2140만 원)까지 지원하는 것. 최근엔 아예 새집을 지어 공짜로 주는 방안도 동원했다. 정원과 주차장이 딸린 2층 신축주택을 매달 5만 엔의 사용료를 받고 빌려주되 22년이 지나면 아예 무료로 양도하기로 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신기술로 활로를 찾기도 한다. 도쿄도 다마시와 효고현 미키시 등 뉴타운에서는 자율주행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노인 거주자라도 붙잡기 위해서다. 다마뉴타운에 사는 직장인 스즈키 씨(34)는 “고령자들이 개인 차량을 이용하지 않아도 병원이나 상업시설에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인구 유출을 조금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지방 인구 감소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실제로 일본 오쿠타마 인구는 여전히 내리막이다. 2012년 226명, 2013년 165명 인구가 줄었던 것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요즘도 한 해 수십 명씩 떠나가고 있다. 젊은층의 이탈과 고령화에 시달리는 리버풀도 마찬가지다. 이 도시 토박이 하워드 씨(41)는 “시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리버풀이 영국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이 된 건 변함없다”고 했다.


▼ 한국 소멸위험 시군구 75→89곳, 거점지역까지 확산

공기업 직원들 거주비율 떨어져 본사 이전효과 나타나지 않아

‘제조업 벨트’가 쇠퇴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지방 소멸’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저성장, 고령화에 유독 취약한 지방 도시들이 몰락하면 빈곤층이 급격히 늘면서 사회 문제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 지방 소멸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228곳 중 소멸 위험 지역은 2013년 75곳(32.9%)이었지만 2018년 89곳(39%)으로 늘었다.

소멸 위험 지역은 해당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이 0.5 미만인 곳이다. 가임 여성 인구가 고령자의 절반도 안 되는 지역은 인구 감소로 공동체가 붕괴돼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고용정보원은 일본의 총무성(한국의 행정안전부에 해당) 장관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 씨가 쓴 ‘지방 소멸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러한 분석 틀을 만들었다.

지방 소멸 현상은 농어촌 낙후 지역뿐만 아니라 지방의 대도시는 물론이고 수도권에서 공공기관 본사들이 이전해 오는 거점 지역까지 확산되고 있다. 공기업 직원들이 해당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이 떨어져 본사 이전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에 참여한 이상호 고용정보원 지역일자리지원팀장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은퇴자들이 급격히 늘고 있어 소멸 위험 지역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별 경제지표에서도 지방 제조업 도시들의 부진이 나타난다. 올 9월 발표된 통계청의 지역소득통계에 따르면 명실상부한 전국 개인소득 1위였던 울산은 2017년 기준으로 서울에 밀려 2위(2195만6000원)로 내려왔다. 글로벌 조선·해운업 부진과 자동차 산업 불황으로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해 경북(―1.2%), 경남(―0.7%), 울산(―0.7%)의 역내 성장률도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개인 연체자도 지방 경기가 안 좋은 지역들에서 다량 발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금융권에서 신용불량자(금융채무 불이행자)는 경남(13.1%), 경북(12.2%), 울산(12.0%) 등 제조업 침체 지역에서 많이 증가했다. 연체자 증가는 지방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지방 소멸 위험은 급속하게 진행되는 저출산·고령화와 주력 산업 붕괴가 겹친 탓이란 분석이 많다. 안 그래도 인구가 줄고 있는 지역에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명예교수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주도권을 쥐고 일자리와 지역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방 소멸 현상이 너무 심각해 지금은 정책의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라고 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경제부 조은아, 도쿄·사이타마=장윤정 기자, 런던·리버풀=김형민, 프랑크푸르트=남건우, 코펜하겐·스톡홀름=김자현
▽특파원 뉴욕=박용, 파리=김윤종, 베이징=윤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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