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정신분석은 공자님 말씀?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19-04-10 03:00 수정 2019-04-10 03: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빈 문화 속에서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태어나 유럽, 서양문화를 자양분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현대 정신분석의 99%가 서양문화의 산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 정신분석이 동아시아에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지금 서양의 정신분석과 동양의 전통 사상이 어떻게 만나 교류할지가 본격적인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동아시아의 전통 사상 중에 유교를 빼놓을 수 없고 유교 사상 중에도 효(孝), ‘부모를 잘 섬기는 일’의 개념은 인문학적 가치를 넘어 조선 왕조의 통치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효를 논할 때 한국인의 머리에서 쉽게 연상되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즉 ‘임금, 스승, 부모는 한몸과 같으니 정성껏 받들어야 하며…’라는 말은 율곡 이이(李珥)에게서부터 전해져 옵니다. 효 사상의 뿌리인 공자는 늘 제자들과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철학적 사고를 이어갔습니다. 그림처럼 전해오는 이런 광경은 정신분석 시간에 분석가와 분석 받는 사람(피분석자)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광경과 비슷해 보입니다.
과연 비슷할까요? 아니면 비슷해야만 할까요? 정신분석을 교육을 통한 성장의 과정으로 본다면 결과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정신분석과 문화적 가치가 만나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마련입니다.
피분석자가 분석가를 인생의 스승으로, 삶의 방향과 방식을 제시하고 가르치는 현자(賢者)로 여긴다면? 스승의 그림자를 밟을 수 없을 겁니다. 효성 있게 대하고, 말과 행동을 분별 있게 하려 애쓰고, 반대하는 말이나 비판은커녕 감히 머리에도 떠올려서는 안 되는 절대 금물이 돼야 할 겁니다. 물론 분석적 관계가 완벽하게 평등하지는 않습니다. 프로이트로부터 전해져 내려왔고 지켜야 할 ‘분석 태도’에는 ‘갑과 을의 관계’인 면도 있습니다. 피분석자는 서로 협의해 정해진 시각에 와야 하고, 늦어도 분석은 정해진 시각에 끝나며, 사전 협의와 무관한 결석(?)은 치료비를 내야 합니다. 제 분석가는 교통사고로 못 간 시간도 청구했고 저는 냈습니다. 물론 그 의미의 분석이 뒤따릅니다.
피분석자는 분석가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데 각각 긍정적, 부정적 전이(轉移)로 부릅니다. 전이는 분석가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보다는 피분석자가 과거와 현재에 경험했던 다른 사람, 일례로 아버지에 대한 것을 엉뚱하게 분석가에게 옮겨 오는 현상입니다. 여기에 효가 개입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프로이트와 공자의 가르침은 뚜렷하게 구별돼야 합니다. 우선 분석적 만남은 사회적 관계와 다릅니다. 특징적으로, 이별을 전제로 한 만남입니다. 성과를 이루면 협의를 해서 미련 없이 헤어지게 돼 있습니다. 둘째, 분석가는 피분석자의 이야기를 분석실 밖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셋째, 분석가는 피분석자의 이야기에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중립성을 지키면서 이야기 자체를 인정하고 듣고 의미를 파악합니다. 비판적 태도는 분석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니 분석가 자신의 정치, 종교, 윤리 관련 견해를 분석에 개입시키는 일은 금기입니다. 넷째, 분석가도 사람인지라 분석가의 전이 현상도 흔히 일어나는데 역전이(逆轉移)라고 합니다. 역전이는 피할 수 없기에 막으려 애쓰기보다는 인지, 의미 탐색, 해소 등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분석의 걸림돌로 보기보다는 전이와 더불어 디딤돌로 써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알지 못하듯 사람은 평소 문화의 영향에 둔감합니다. 공기처럼 삶에 녹아 있던 효를 둘러싼 갈등이 분석에서는 고통의 뿌리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급격하게 사회, 경제, 문화의 변화를 겪은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정신건강에 전통 가치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도 분석의 과제입니다.
분석가 자신이 프로이트가 물려준 ‘분석 태도’에 완고하게 집착한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정신분석의 조상 프로이트에게 바치는 효성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종교적 신념’도 절대자에 대한 효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동성애를 종교적 신념에 따라 부정적으로 보는 분석가가 있다면 분석 태도의 측면에서는 ‘중립성의 위반’입니다. 분석이 해야 할 일은 성 소수자의 고통과 갈등을 듣고, 이해하고, 적응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비판이나 배척이 아닙니다. 그러한 행위는 세계의사협회의 성 소수자 차별금지 선언에도 벗어납니다.
분석 과정과 효 개념의 상호작용으로 돌아가서 피분석자가 분석가를 부모처럼 본다면, 분석가는 피분석자를 자식처럼 대하게 된다면 분석이 왜곡되고 정체될 위기가 왔다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부모 전이, 부모 역전이’를 대화로 풀어내 의미를 탐색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분석이, 분석이 아닌 양육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분석은 의존성이 독립성으로 변환되는 과정입니다. 독립적인 사람이란 분석 종료 이후에도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분석하는, ‘자기 분석 능력’을 습득한 사람입니다. 분석의 바람직한 결과는 피분석자의 성장과 독립이며 의존, 집착, 종속이 아닙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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