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인생을 노래하는 ‘반백의 신사들’

양형모 기자

입력 2018-11-16 05:45:00 수정 2018-11-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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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를 가득 메운 98명의 한국남성합창단. 창단 60주년을 기념한 이날 연주회에서 중후하고 웅장한 화음으로 관객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사진제공|한국남성합창단

■ 한국남성합창단 60주년 기념 연주회

직업·나이 다양…순수 아마추어 합창단
정체성·역사·희망을 담아 총 15곡 선사
60주년 기념 위촉곡 ‘사해 칸타타’ 선봬


무대 위에 부려놓은 거대한 학익진처럼 보였다. 100명(정확히는 98명)의 남자들이 검은 수트를 차려입고 지휘자를 구심점으로 둥글게 늘어섰다. ‘남성’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합창단.


한국남성합창단(단장 황영호)이 창단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이날 정기연주회는 1층부터 3층까지 전석이 찼고, 합창단원들의 뒤통수를 봐야 하는 무대 위 합창석까지 관객들로 메워졌다.

한국남성합창단은 1958년에 창단됐다. 20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홍식 상임지휘자는 “우리는 58년 개띠 합창단”이라며 관객을 웃겼다. 이 합창단은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며 중후한 화음을 오래도록 맞춰왔다. 단원들의 나이도 직업도 천차만별이다. 최연소 30세(1988년생)부터 최고령 80세(1937년생)까지 연령대가 넓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단원인 경우도 있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이들이 한국 음악계에 끼친 선한 영향은 프로 합창단 이상이다. 희귀한 남성합창곡들을 수집하고 집대성하는 한편 작곡 위촉 등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들이 많다.

김홍식 지휘자는 “정기연주회를 하고 나면 우리가 초연한 곡들이 전국의 남성합창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곤 한다”고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연주도 많았다. 독일합창제 초청으로 참가한 베를린 카라얀홀 연주회가 대표적이다. 1985년부터는 100년 전통을 눈앞에 둔 일본의 ‘도쿄리더타펠1925’ 합창단과 교환방문하며 합동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남성합창단

이날 연주회는 창단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인 만큼 합창단의 정체성과 역사, 희망을 담은 레퍼토리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총 6개의 스테이지로 나누어 15곡의 합창곡을 선사했다. 1부는 피아노 외에 오보에(고민식), 첼로(조연우)를 곡에 따라 첨가해 합창을 반주했고 2부에서는 모스틀리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려 사운드를 확장했다.

반백의 신사들이 부르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작사·이병우 작곡·박혜진 편곡)’는 한없이 쓸쓸하면서도 뭐라 표현하기 힘든 온기가 손바닥에 남았다. 이날 초연한 ‘뱃노래-자진 뱃노래(경상도 민요·전경숙 편작)’의 독특한 2중 구조는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뭐니 뭐니 해도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2부 첫 순서에 배치한 ‘바다 칸타타 사해(四海)’. 60주년을 맞아 작곡가 박지훈에게 위촉한 작품으로 ‘동해’, ‘서해’, ‘남해’, ‘잃어버린 북해’의 4악장 구성이었다. 한국남성합창단은 일출과 파도의 장엄함이 느껴지는 동해, 사랑과 그리움의 서정적인 서해, 다도해를 신비로운 돌무더기로 표현한 남해, 동해를 재소환하며 힘찬 내일을 노래하는 북해를 마치 거대한 유화를 보듯 생생하게 소리로 펼쳐놓았다.

이날 연주회는 단원들과 관객이 ‘들장미’를 합창하며 막을 내렸다. 종이 위에 잉크를 입히는 볼펜이 아니라, 종이 속으로 스며드는 만년필 같은 ‘60년 화음’을 들을 수 있었던 연주회. 가사 속의 삶을 몸소 살아본 인생들만이 부를 수 있는 ‘진짜 노래’로 귀 부른 날이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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