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우버가 ‘서울의 택시’라면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10-31 03:00:00 수정 2018-10-3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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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보스턴 식품점의 햄버거와 스테이크 값은 다 다릅니다. 그러나 목요일 오후나 토요일 새벽에 쓰는 전기 요금은 똑같죠. 10년, 20년 후 사람들은 제가 내고 있는 이 전기 요금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할 겁니다.”

지난주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만난 지속가능 경영의 석학 포리스트 라인하트 교수는 “화석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고 같은 값에 판매하는 식의 19, 20세기 방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인하트 교수는 최근 한국 통신회사 KT의 ‘스마트 에너지’ 신사업을 분석해 사례 연구 논문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전력회사와 정부 규제가 똬리를 틀고 있는 에너지 시장의 판을 흔드는 ‘파괴적 혁신’이 될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라인하트 교수는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의 존재와 정부의 역할에 따라 변화의 속도가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시장을 장악한 기업과 규제 시스템을 설계한 정부가 때론 변화를 막는 ‘체인지 몬스터(괴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래된 시장일수록, 독과점이 심할수록, 정부 규제가 강할수록 체인지 몬스터는 위세를 떨친다.


정부가 택시 면허 제도를 통해 차량 대수, 요금, 자격 요건을 규제하고 시장 진입을 철저히 통제해온 택시 시장이 대표적이다. 택시를 쉽게 보기 힘든 실리콘밸리에서 ICT를 이용해 자가용 소유자와 택시 수요자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주고 수요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차량공유회사 우버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득권과 규제에 묶여 화석이 돼버린 시장을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새로운 서비스를 일단 허용하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식의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체적 사례가 생기면 규제하는 영미법과 달리 할 수 있는 규제를 일일이 열거하는 대륙법 체계에선 쉽지 않은 도전이다. 자칫 시장 변화를 방치하다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뉴욕시의 경우 우버 진입을 허용한 이후 80년 전통의 ‘옐로 캡(뉴욕 택시)’ 시스템이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 뉴욕시는 뒤늦게 우버 등의 차량 대수를 제한하고, 우버 운전사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해 차량공유회사의 급격한 팽창을 막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선도하는 ‘변화 관리자’로 변신한 사례다. 우버의 진출을 막았던 핀란드는 올해 7월 택시 면허 제도는 유지하되, 택시 대수와 요금 규제 등은 없애는 개혁안을 시행했다. 우버를 택시 면허 제도의 틀 내로 끌어들여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넓힌 것이다. 기존 택시회사들도 요금 규제에서 벗어나 도전자와 경쟁할 수 있게 돼 변화를 거부할 명분이 줄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과 관련해 “이 정도 규제도 못 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서울 택시가 우버가 될 수 있고, 우버가 서울의 택시가 될 수 있다는 과감한 상상력과 치밀한 준비 없이는 과거의 틀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기 어렵다.

내년 기업 공개를 추진하고 있는 우버의 시장 가치는 1200억 달러(약 136조 원)로 미국 3대 자동차회사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동유럽의 우버’로 불리는 에스토니아의 택시파이(Taxify)는 세계 25개국에 진출했다. 한국은 시장이 없으니 이런 회사들도 나오지 않는다.

뉴욕 모델이든, 핀란드 모델이든, 아니면 한국만의 새로운 모델이든, 선택은 정부의 몫이다. 소비자 선택권은 넓히지 못하고 개혁을 핑계로 기득권의 손실만 세금으로 보전하는 식의 어정쩡한 타협만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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