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장성구]믿고 먹는 藥, 믿을 만한 藥

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입력 2018-10-31 03:00 수정 2018-10-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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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지난해 건강보험에서 지출한 국민들의 약값은 16조2000억 원. 건강보험 연간 총 지출의 4분의 1이다. 국민들이 지출하는 약값을 합치면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이렇게 막대한 약값이 갖는 의미는 경제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약으로서의 가치가 충족돼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대해서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낸 일이 고혈압약 ‘발사르탄’ 사태다. 중국산 원료에서 검출된 발암물질 때문에 약의 수거, 판매금지 등 큰 소동을 빚었다. 약의 외국산 원료가 점차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언제든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제약회사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고 제약사는 그럴 수 없다고 난리다. 국정감사에서는 이 문제로 여야가 연일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정치적인 논쟁에 그치고 있다.

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한 톨의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하던 학창 시절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의사는 약의 선택과 투여에 신중해야 하고 약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동일한 성분으로 제조된 약이라도 생산과정에 정도관리가 안된 약을 우리는 ‘가짜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제약산업의 열세로 원천적 소유권을 갖는 원제품약은 손에 꼽을 정도고 외국 원제품의 복제약이 대부분이다. 복제약을 생산할 때 효능 검증 과정에서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을 거친다. 이 시험을 통해 복제약을 투약 받은 사람들의 혈액 속에 약의 농도가 원제품약 대비 90∼110% 범위에 도달하면 원제품약에 대한 등가제품으로 인정한다. 이론적으로 한 종류 원제품약에 수십 종의 등가성을 갖는 다양한 농도의 복제약이 존재하게 된다. 국민들이 혼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생동성시험이라는 말 때문이다. 이 말은 원제품약 대비 혈중농도만 따졌을 때 등가성을 갖는다는 의미이지 복제약의 임상적 효과가 원제품약과 같다는 뜻이 아니다. 생동성시험에 통과 된 복제약이라도 원제품약과 비교임상시험을 통해 효과가 동일하다는 점이 확인돼야 진정한 의미의 복제약이며 마음 놓고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동성시험만 통과되면 원제품약과 효과가 동일한 복제약으로 인정하고 판매를 허락하고 있다. 비교임상시험이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 때문이다.

생동성시험에 통과되면 바로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복제약 생산과정의 부조리를 우리는 일찍이 경험했다. 2006년 전국적으로 생동성시험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국민들을 경악시켰었다. 치료의학적 동등성을 중요시하는 선진 외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투여한 약이 효과적이고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고집스럽게 처방을 변경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복제약에 대한 불신, 생산과정의 정도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의사들이 비싸지만 원제품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의약품 시장 구조이다. 물론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을 하면 고령화시대에 건보재정은 약값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복제약이 의사나 국민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약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제약업계만 아니라 의료계도 엄청난 불신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신뢰가 추락한 복제약을 대상으로 대체조제나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는 것은 내용을 알고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도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제약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부도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값싼 약만 주장하다가는 고령화 사회에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게 된다. 좋든 싫든 약은 생활필수품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약에 대한 신뢰는 필수다. 믿을 수 있는 약의 생산을 위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장성구 대한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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