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고 워라밸 보장” 日 ICT 업체로 몰리는 한국 청년들

이은택 기자

입력 2018-06-27 03:00 수정 2018-06-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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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자 5년새 2배 가까이 늘어

18일 오전 일본 도쿄 라쿠텐 본사에서 만난 하은영 씨와 홍용빈 씨(오른쪽)는 각각 지난해 10월, 올해 5월에 입사했다. 두 사람은 “일을 하다 보면 국적의 장벽은 느낄 수 없다.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일본 기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일본 도쿄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라쿠텐 본사 라쿠텐 크림슨하우스. 18일 오전 2층 회의실에서는 일본인, 외국인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미팅 중이었다. 다들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영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1997년 세워진 정보기술(IT)기업 라쿠텐은 연 매출 7조 원 규모의 일본 최대 IT기업 중 하나다. 한국 네이버와 카카오를 합친 규모다.

숙명여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 이곳에 입사한 하은영 씨(26)는 대학에서 문화관광을 전공했지만 라쿠텐에서 안드로이드 기반의 페이(지불)시스템 개발업무를 맡고 있다. 전공과 다른 분야에 뛰어든 것이다. 하 씨는 한국에서 한국무역협회의 해외 취업 프로그램 스마트클라우드(SC) IT마스터 과정에 먼저 등록했다. 11개월 동안 일본어와 프로그래밍을 배운 후 라쿠텐 면접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 씨는 “IT 분야에 흥미가 생겨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전공자가 아니면 취업이 쉽지 않았다. 반면 일본 기업은 기본적인 실무 능력과 언어 소통 능력만 갖추면 입사가 가능하고 사내 교육으로 배워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야마 고헤이 라쿠텐 채용담당부장은 “2015년부터 한국인을 채용했다. 잠재력과 인성을 갖췄다면 실력은 회사가 키워준다”고 강조했다. 5월 라쿠텐에 입사한 한국인 홍용빈 씨(28)는 “한국 IT기업은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일상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주 5일 근무가 보장되고 평일에는 ‘칼퇴(정시 퇴근)’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오는 한국 청년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취업난이 극심한 한국을 떠나 원하는 일을 하면서 양질의 근무환경과 교육시스템을 제공해주는 일본 기업에 도전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로봇, 컴퓨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이상철 씨(25)는 올해 4월 일본 IT기업 파소나테크에 입사했다. 모회사 파소나그룹의 지난해 연 매출은 약 2조8000억 원이다. 이 씨는 현재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있다. 명함 주는 법 등 사소한 비즈니스 매너부터 시스템 개발이나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방대한 분야의 교육이 3개월 동안 이뤄진다. 이 씨는 “최종 면접 현장에 사장이 직접 와서 지원자들에게 밥을 사고 이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사람을 채용하거나 대하는 방식이 매우 겸손하고 인간적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 기업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직장문화, 연공서열, 과로(過勞)로 유명했다. 하지만 2015년 유명 광고회사 덴쓰의 신입 여직원이 과로사한 사건이 발단이 돼 야근, 초과근무를 적극적으로 줄이는 추세다. 이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기업도 한국 인재 채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비혼족 증가, 고령화, 학령인구 감소는 고스란히 젊은 경제활동 인구 감소로 이어져 일할 사람이 부족한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신입사원에게 돈을 투자해 교육하는데 이들이 떠나면 손해라며 오래 다닐 수 있는 한국 청년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18∼22일 무협 주관으로 도쿄에서 개최된 대규모 SC IT마스터 채용박람회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19일 찾은 채용박람회 현장에는 SC IT마스터 과정을 끝내고 최종 면접을 보려는 한국 취업준비생과 관심을 갖고 찾아온 주요 기업이 몰려 있었다. SC IT마스터 과정은 2001년부터 무협이 운영해왔으며 약 11개월간 일본어와 프로그래밍 교육이 이뤄진다. 1인당 2000만 원 정도가 드는데 1800만 원을 국가와 무협이 지원한다. 올해 3월까지 총 2134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 중 약 1000명이 현재 일본 IT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34기 과정을 밟고 있는 134명이 도쿄에서 현지 기업 면접을 치르고 있었다.

이날 채용박람회장에서 만난 스에히사 유지 파소나테크 인사부장은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맞춰 기업들도 사업 분야와 규모를 빠르게 늘려야 하는데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2016년 한국 인재를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오래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간다면 한국 인재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채용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노동후생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은 2012년 4431명에서 2017년 7721명으로 늘어났다. 한국 취업난과 일본의 구직난이 맞아떨어진 영향이 크다.

한국 청년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실망도 영향을 미쳤다. 현지 면접 현장에서 만난 여모 씨(24)는 “한국에서 일했을 때 고용주는 수당도 안 주면서 야근, 주말 출근을 당연히 여겼다”고 말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인구구조나 기업문화를 관찰하면 한국이 수년 차이로 일본을 늘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한국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변해야 젊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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