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소확행’ 누리려면… 작지만 귀찮은 일을 감수하라

박영규 인문학자 , 최한나 기자

입력 2018-04-30 03:00:00 수정 2018-04-3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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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없이 좋은 결과 얻진 못해
발품 팔고 문제점 해결해야 기업도 계약성사 기쁨 누릴것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의미하는 소확행(小確幸)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다. 소확행이란 말을 처음 쓴 무라카미 하루키는 운동 후 벌컥벌컥 들이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차곡차곡 갠 수건이 가득 찬 수납장을 바라보는 시선, 추운 겨울 이불 속을 파고드는 고양이의 따스한 촉감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크고 화려해 보이지만 나와 거리가 먼 부나 권력보다는 내 몸과 마음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긴 것이다. 소확행과 관련해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47호에 실린 글을 소개한다.

소소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형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수납장을 가득 채운 깨끗한 수건들이 주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빨래라는 노동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먹을 것을 챙겨주고 똥오줌을 치우는 수고부터 해야 한다. 소확행을 누리기 위해서는 소소하지만 귀찮은 행동(소귀행)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장자가 ‘응제왕’ 편에 소개한 우화를 보자. 정나라에 계함이라는 유명한 무당이 있었다. 호자의 제자인 열자가 스승에게 무당의 신통함을 전하니 호자는 데려와 보라고 말한다. 호자를 만나고 나온 계함은 “당신의 스승은 곧 죽는다”고 말한다. 열자가 이 말을 전하자 호자는 계함을 다시 데려오라고 말한다. 계함은 “나를 만난 덕분에 당신의 스승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호자는 열자에게 계함을 다시 데려오라고 말한다. 호자를 세 번째 만난 계함은 아무 말도 없이 줄행랑을 친다.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 자유자재로 변하는 내 모습을 보여줬더니 놀라서 도망간 것이다’라는 설명을 들은 열자는 크게 뉘우치고 3년간 수양에 증진해 도(道)에 이른다.


이때 열자는 두 가지 일에 몰두했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짓는 일과 돼지에게 밥을 챙겨주는 일이다. 가족과 타인, 동물과 자연을 위해 헌신해 도의 세계에 이르고, 그러면서 자유와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우화의 가르침이다. 소확행은 도를 닦은 결과 누리는 삶의 모습이고, 소귀행은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쏟아 붓는 땀과 정성, 수고와 노동이다.

계약 성사 후 팀원들끼리 주고받는 하이파이브, 월급을 받은 샐러리맨들의 입가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 퇴근 후 삼겹살집에서 건배할 때 쨍하고 울려 퍼지는 소주잔의 경쾌한 소리 같은 것들이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기업 구성원의 소확행이다. 여기에도 예외는 없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가신 일부터 해야 한다. 계약을 성사시켜 하이파이브를 날리기 위해서는 먼저 발품을 팔며 땀을 흘려야 하고, 소주잔의 경쾌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불평불만을 듣고 성심껏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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