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우영]‘불변응만변’을 생각하며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입력 2017-12-22 03:00 수정 2017-12-2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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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7개월… 국가전략 점검 필요
격랑의 시대 관통하는… 만고불변 진리 ‘청년정신’
도전과 극복의 정신으로 현재위기에 대응해야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격랑의 시대, 처세는 몇 가지가 있으리라.

항상 우리 청년들과 마주하며 강단에 서다 보니 종강 때면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함께 새기는 정언(定言)이 있다. 하나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요, 또 하나는 ‘∼에도 불구하고’이다. ‘촛불’로 시작해서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들어선 한 해, 우리는 과연 이 격랑의 시간을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구약에 다윗이 반지 세공사에게 준 지혜로운 숙제에서 비롯한다.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과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주는 글귀를 넣어라.” 좀처럼 명구(名句)가 떠오르지 않자, 세공사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찾아갔고 이 말을 받아 반지에 새긴다.

‘∼에도 불구하고’는 모든 위대한 성업에 깃들어 있다. 밀턴은 실명(失明)에도 불구하고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썼으며 베토벤은 귀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합창’과도 같은 명곡을 남겼다. 고락(苦樂)에 초연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처세나, 어떠한 역경도 이겨내는 ‘∼에도 불구하고’의 처세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한결같은 청년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고난이나 잠시의 승리에 초연하며 어떠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겨내는 힘은 도전하고 좌절하더라도 끊임없이 다시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 바로 청년정신이다. 그래서 그 도전과 극복의 순간을 ‘청년의 시간(時間)’이라 하여 되새기곤 한다.

시간은 오랫동안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계속 흘러가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돼 왔다. 물리학의 지평을 연 뉴턴도 시간과 공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로 여겼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을 통합하여 ‘시공간(spacetime)’이란 개념으로 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다.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뉴턴의 중력이론과 결합하면서 시공간도 물질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인 시공간은 과거부터 미래로 일정 속도와 일정 방향으로 흐르는 기계적인 ‘크로노스 시간’에 반해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 시간’을 확장하게 하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을 현재 또는 순간(瞬間)으로 묶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우리 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홀로그램과 가상현실, ‘포켓몬 고’와도 같이 실제와 허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증강현실이 다가와 있다. 이처럼 더 커진 시공간의 울타리 속에 사는 우리는 무엇이 가짜이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구별조차 힘들어지게 되었다.

올해 신년 초 필자는 정유년 새해를 열며 위기의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변화와 혁신을 향한 ‘카이로스 시간’을 열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성찰하고자, 김구 선생께서 광복 직후 혼란의 조국을 향하면서 새긴 휘호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을 화두로 삼았던 기억이 새롭다. ‘변하지 않는 가치로 모든 변화에 대응하겠다’ 하신 각오. 광복 전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가주권의 위기에서 우리 민족이 지켜야 할 신념과 가치로 주신 이 글을 보노라면, 북핵 문제를 둘러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 마치 아인슈타인이 만들어놓은 시공간의 통합장(場)에 그때와 지금이 여전히 공존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이 지났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그동안 설계하고 실행한 정책들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용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신뢰도 중요하지만 수출주도 경제의 한국이 세계 경제의 변화와 흐름에 역행하는 변수, 막상 해보니 실현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암초들,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풍선효과로 나타나 의도와 다르게 가고 있는 돌연변이 등 재검토가 필요한 공약들은 국민을 설득하고 세밀하게 재설정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부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금언이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뜻함도, 굴신(屈身)이나 아세(阿世)를 의미함도 아니라는 점을 새기면서 변함없는 항상심(恒常心)으로 공무에 임해야 한다. 지금이 ‘불변응만변’의 시기요, ‘청년의 시간’이 아닌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시간은 진정한 의미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교훈으로, 오늘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난관을 ‘∼에도 불구하고’의 도전과 의지로 이겨나가는 ‘청년의 시간’임을 새긴다.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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