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국립중앙의료원이 이름값 하려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입력 2017-12-21 03:00:00 수정 2017-12-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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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름값을 못했던 국립중앙의료원. 명실상부한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는 원장 인선과 시스템 등에 획기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200여 개 지방의료원과 국공립의료기관을 통솔하는 컨트롤타워다. 또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총괄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두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이국종 교수가 근무하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등 전국 8개 권역외상센터의 본부 역할을 맡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감염병 격리병상(25병상)도 국립중앙의료원에 있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환자 30명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국립중앙의료원엔 임시로 지은 외상센터와 50년 이상 된 노후한 가건물 수준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말만 외상센터 본부일 뿐 환자 이송에 필요한 헬리콥터가 착륙할 장소조차 없다. 행정동 건물의 화장실은 ‘남녀공동’으로 사용할 정도로 열악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머지않아 서울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한다. 의료원 신축 건물은 내년 착공해 2022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전 후에는 수장의 의지에 따라 의료원의 위상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이에 국립중앙의료원은 7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과 국가중앙외상센터 설립, 100병상 규모의 국내 최대 감염병센터, 국내의료기관 최초의 최첨단 BL4(생물안전 4등급 밀폐 병실) 설치 등 공공의료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한 구상을 진행하고 있다. 예산만 6000억∼7000억 원으로 추정한다. 만일 의료원 규모를 현재 논의 중인 1200병상으로 확장하면 1조 원 이상이 든다.

최근까지 이를 기획한 안명옥 원장은 21일 퇴임한다. 안 원장 후임으로 서울대병원 박노현 교수(전임 서울대병원 기조실장), 김민기 서울의료원장, 정기현 현대여성아동병원 원장 등 3명이 최종 후보자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중 한 명을 차기 원장으로 낙점한다. 현재로서는 전남 순천에서 자신의 병원을 운영해 온 정 원장이 임용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덕분인지 의료원 이사회에서 차기 원장 후보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정 원장은 공공의료분야에서 활동한 경험이 거의 없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복지부는 11월 17일 공공보건의료 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그에게 임기 3개월짜리 공동위원장 감투를 씌워줬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 원장은 보건소 소장을 하는 등 의료 현장을 누구보다 많이 알아 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다.

떠나는 안 원장은 자신의 후임으로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줄 인물을 원했다. 기자가 구체적 호명을 요청하자 조심스럽게 김용익, 양승조 전 의원 등을 거명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법인화된 국립중앙의료원은 초대원장과 2대 원장으로 서울대병원 교수를 임명했고 3대 원장인 안 원장은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 출신이다. 이번에도 서울대병원 경영진은 서울대병원에서 차기 국립중앙의료원장 후보를 추천하고자 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으로부터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출신이 원장을 맡아 공공의료 발전을 위해 제대로 한 게 무엇이냐’는 핀잔만 들었다”는 게 서울대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상황을 파악한 서울대병원 측은 원장 추천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그 대신 공공의료 관련 의사와 간호사로 파견팀을 구성해 국립중앙의료원의 공공의료 역할 확대를 지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차기 원장 최종 후보에 오른 박 교수는 서울대병원 경영진과 교감 없이 독자적으로 원장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국립중앙의료원은 1조 원까지 소요될지 모르는 천문학적인 국민 혈세를 쏟아부으면서 명실상부한 공공의료 대표기관으로 거듭나야 하는 매우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다.

먼저 외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당장 내년에 신축될 새 병원의 기초 설계와 실지 설계가 남아있다. 건물 기초공사를 위한 시공사 선정도 해야 한다. 시공사를 선정하면 연이어 건물을 올려야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공사 현장인 만큼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각종 비리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내용적인 측면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당면 과제인 중앙외상센터, 중앙감염병센터, 중앙응급의료센터 등의 규모를 정하고, 공공의료를 위해 일할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원을 설립하는 일들을 모두 내년에 해야 한다. 한 의료원 관계자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양적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전국의 공공의료를 관장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며 “새 원장이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공의료기관을 신축하고 이를 위해 수많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누구를 앉히고, 그가 이 과제를 얼마나 잘 추진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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