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이 함께 일으킨 고장… 강릉에 살어리랏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7-12-09 03:00:00 수정 2017-12-0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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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서울역서 2시간’ 성큼 다가온 강릉

강릉∼삼척의 바다를 차창을 통해 영화처럼 감상하는 바다열차. 강릉(강원)에서 summer@donga.com
고2 때(1975년)다. 한 선생님이 휴가를 내고 어딘가 다녀오셨다. 강릉이었다. 그날은 영동고속도로 마지막 구간(신갈∼강릉)이 뚫린 실제적인 개통일. 기술교과를 가르쳤던 그분은 그 길을 누구보다 먼저 달려보고 싶었단다. 그게 휴가까지 내 강릉을 다녀온 이유였다.

강릉은 그렇게 내게 각인됐다. 첫 여행은 그 5년 후. 군복무 후 복학에 앞서 떠난 설악산 여행길에서다. 고속버스는 대관령 구절양장 도로를 기다시피 했다. 그래서 주변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삼청교육대의 교육생들이 보였다. 군 작업복 차림으로 총을 든 군인 감시 하에 산기슭에서 간벌작업 중이었다.

그 강릉은 여행취재에서도 한 획을 긋는 곳이다. 여행 전문기자로 일해온 22년간 가장 많이 찾은 곳으로. 그 배경은 정동진이다.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로 뜬 지도 벌써 22년. 그럼에도 그 인기는 여전하다. 새해 첫날도 똑같다. 해변이 발 디딜 틈 없이 해맞이 인파로 메워진다. 평소라고 다를까. 국내 유일의 이 해변 역은 갈 곳 마땅찮은 이에게 가장 만만한 곳이다. 청량리역에서 중앙선(무궁화호) 열차에 오르기만 하면 되니까. 여행기사는 독자의 시선을 쫓는다. 그게 내가 강릉을 무수히 찾은 이유다.

시운전 중에 서울역에 들어선 경강선 KTX 산천.
그런데 지난 몇 년만큼은 소원했다. 서너 번이 고작이었다. 이유는 역차별. 과거에 많이 찾았던 만큼 이후 관심은 준 것이다. 그런 강릉이 2주전 다시 내 품에 안겼다. 경강선(서울∼강릉)고속철도 시승을 통해서다. 서울역에서 불과 두시간 남짓. 청량리발 중앙선(무궁화열차)으론 지금도 4시간 21분(261분)이 걸리니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릉역 실종사건’이다. 고속철 역사를 짓느라 철거했다. 또 있다. 허름한 안목해변은 지구촌 유일의 커피스트리트로, 단오제밖엔 자랑할 게 없던 강릉이 커피축제까지 여는 ‘커피공화국’으로 등극한 것이다. 해변의 철조망도 싹 걷혔고 경포호반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라 할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비슷한 모습의 호텔(스카이데크·건축 중)도 보인다.

독자 중엔 기자처럼 과거의 강릉에 매몰된 분도 많을 듯싶다. 그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고속철이 강릉을 되찾을 분명한 이유를 선사해서다. 두 시간은 조간신문 하나도 끝까지 다 읽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 그사이에 우린 강릉에 닿는다. 그런데 강릉은 더 이상 기억속의 그곳이 아니다. 구수한 사투리는 여전해도 먹고 마시고 쉴 곳은 서울 뺨친다. 어쩌면 은퇴 후 새 삶의 도전장을 내기에도 안성맞춤일 수 있다. 그런 운명의 장소로 점쳐질 정도로 마음이 끌린다. 경강선 고속철 개통은 이달 22일. 가능하면 올림픽 개막 전에 다녀오자. 전광석화급 열차 운행이 강릉을 ‘동해 수도’로 일으켰다.


장가들기로 일어선 오죽헌

오죽헌 옆 강릉오죽한옥마을. summer@donga.com
이번 취재 길에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강릉을 일으킨 이 중에 다수가 타지사람이다. 오죽헌부터가 그렇다. 이 고택은 강릉 최씨가문 것. 그러니 예서 태어났다면 최씨여야 할 텐데 그 주역인 신사임당이나 그녀의 아들 율곡 이이(3남)가 모두 신씨와 이씨다. 물론 거기가 친정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이이 등 8남매가 모두 거기서 성장했다. 그 배경, 처가살이다.

당시(조선중기)엔 고려유산인 ‘장가(장인의 집으로 처가)들기’가 여전했다. 사위가 신접살림을 처가에 차리고 거기 사는 것이다. 그 반대가 ‘시집가기’인데 이건 유생들 주장으로 조선후기에 200여 년간 팽배한 ‘신 풍속’. 사임당 당시엔 이게 혼재해 아버지(신명화)는 물론이고 배우자(이원수)가 모두 강릉처가에 장가를 들었다. 부친은 애초부터 처가살이할 사위를 골랐다. 그래서 ‘홀어머니의 외아들’에 일가친척이 없는 이원수를 골랐던 것. 이유는 하나, 사임당의 예술문학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시집가면 모든 걸 포기해야 했기에. 그런데 이 집 내력이 특이하다. 사임당 외조부(이사온·심명화의 장인)마저 강릉 최씨 집안에 장가를 들었으니. 오죽헌은 그런 ‘아들잡이’의 무대다. 그렇다보니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타지태생의 이들이 강릉으로 장가들기를 거부했다면…. 신사임당도 율곡도 오죽헌도 없었을 수 있다.


강릉 3대명소도 타지인의 작품

지금의 강릉도 다르지 않다. 강릉의 어트랙션 3개가 같은 맥락이다. 노추산 모정탑(母情塔) 길을 보자. 주운 돌을 하나하나 올려 쌓은 돌탑이 3000개나 줄이어진 특별한 숲길이다. 주인공은 2011년 타계한 차옥순 씨. 26년간 쉼 없이 사흘에 한 개꼴로 쌓았다는 데 그 사연은 이렇다. 슬하 4남매 중 두 아들이 요절하고 남편마저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던 차 씨는 ‘탑을 쌓으면 평화를 얻을 것’이란 꿈을 꾸었다. 노추산을 찾은 차 씨는 움막을 짓고 홀로 돌탑 쌓기를 시작했다. 그게 1986년이고 그 일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 역시 서울서 강릉으로 시집온 타지사람이다.

강릉을 ‘커피공화국’으로 이끈 이 중 한 사람인 박이추 씨(59·바리스타)는 일본서 태어나 귀화한 재일교포다. 목축업을 하러 귀국했지만 이내 접고 커피숍(서울 혜화동·1988년)을 차렸다. 하지만 제 맛을 내려면 배울 게 많았다. 그래서 도쿄로 가 바리스타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 커피전문점을 근 10년이나 운영했다. 강릉 이주는 1999년. ‘보헤미안 로스터스’(커피콩 가공공장)를 세우고 커피사업을 키웠다. 경포호반과 영진해변, 사천해변의 가공공장에 커피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또 한 사람, 참소리 축음기·에디슨박물관 설립자 손성목 관장(74)이다. 1993년에 보유한 축음기 700여 대로 기네스북에 등재(최다 콜렉터)된 집념의 수집가다. 그중에 에디슨 것은 미국 에디슨기념관(워싱턴DC) 수장품 보다 30대나 많았다. 그는 1992년 강릉 송정동에 지은 3층 건물에서 그걸 전시했다. 2007년 경포도립공원에 개관한 ‘참소리 축음기 에디슨 박물관’의 모태인 ‘참소리 축음기박물관’이었다. 이 손 관장 역시 강릉태생이 아니다. 그의 고향은 원산이다.


강릉에서 바다를 즐기는 두 가지 방법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을 걷는 도중 만나는 풍경. 융기작용으로 바위가 들려올려진 모습이 선명하다. 강릉(강원)에서 summer@donga.com
강릉에서 정동진은 극장에서 영화보기식의 당연지사.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도 아쉬운 곳. 그래서 추천한다. ‘바다열차’로 동해를 영화처럼 감상하기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2.86km)로 파도 위 걷기다. 바다열차는 2001년 12월에 운행을 개시한 ‘환상의 해안선 기차’ 업그레이드. 국내 최초 바다조망 관광열차로 그건 기자의 제안으로 개발됐다. 삼척∼강릉 해안만 왕복하며 바다를 감상하는 특별 관광열차로. 그게 인기를 끌자 코레일은 일본철도를 벤치마킹해 창과 마주한 계단(3단)식 좌석의 바다열차를 만들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의 통유리창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바다풍광을 감상하도록. 2007년 운행개시 후 강릉여행자에게 참새 방앗간이 됐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정동진(썬크루즈리조트 주차장)∼심곡항(2.86km 구간) 해안단구를 물가에 낮게 가설한 경관보도. 해안단구란 해안의 바위가 계단처럼 발달한 지형으로 지각의 융기나 해수면 저하로 물에 잠겼던 바위가 드러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부산 태종대. 바다부채길 구간은 태종대의 강릉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간엔 간첩 침투로 악용가능성으로 출입이 금지됐다. 험준한 바위해안을 따르는 보도 주변의 풍경은 열 걸음 한 번씩 기념사진을 촬영하게 만들 만큼 수려하다. 특히 바위에 깨지는 파도 모습과 그 소리는 태종대를 능가한다. 단, 주말은 피한다. 찾는 이가 너무 많다.

강릉(강원)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KTX 경강선:
12월 22일 개통. 고속철(신설) 구간은 서원주∼강릉(120.7km), 65%가 터널. 대관령터널(21.7km)은 국내 최장. 신설 역은 6개(만종 횡성 둔내 평창 진부 강릉) ◇요금 ▽서울역 2만7600원 ▽청량리역 2만6000원 ▽인천공항역 4만700원. 상봉역(서울지하철 7호선·경춘선 환승)에서도 타고 내린다. ◇운행 ▽주중 18회 ▽주말 26회 ◇출발시각(매시) ▽서울역 1분 ▽청량리역 22분 ▽강릉역 30분. ◇소요시간 ▽서울역 114분 ▽청량리역 86분

강릉오죽한옥마을: 오죽헌 옆에 조성한 우아한 한옥마을. 단층, 2층 한옥이 큰 마을을 이뤘다. 강릉시 죽헌길 114, 033-655-1117 www.ojuk.or.kr

차현희 순두부·청국장의 전복 순두부전골과 생선구이.

맛집: ◇차현희 순두부·청국장(본점): 강릉 초당순두부마을 안. 전복순두부전골(2인분 이상·1인분 1만5000원)에 황태구이(1만 원) 명태찜(1만 원), 생선구이(3000원)를 추가하면 멋진 한상차림이 된다.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98, 033-653-0811 ◇산나물천국(점봉산산채): 서른 가지 반찬의 상차림 한가운데 열네 종 산나물모둠 접시가 놓인다. 그걸 명이나물로 쌈해 먹는 나물쌈이 이 식당의 특징. 차림별로 1만∼2만 원. 강릉시 난설헌로 168(허균생가 옆), 033-652-7033. 첫째·셋째 일요일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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