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기자들은 쓴 대로 사느냐”
정성희 논설위원
입력 2017-11-03 03:00
정성희 논설위원20년도 넘은, 보건복지부를 출입할 때 일이다. 한 기자가 고아들이 해외로 수출되는데 복지부가 방관한다는 기사를 썼다. 국내 입양에 대한 인식이 없어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될 때라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쓰던 시절이었다. 이런 기사가 나오면 부처는 국내 입양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지나가는데 이때 입양 담당 공무원은 달랐다. 그는 입양신청서를 작성해 기사를 쓴 기자를 끈덕지게 쫓아다니며 “고아 한 명만 입양해 달라”고 졸라댔다. 해당 기자는 도망 다니느라 바빴고 나머지 기자들은 배꼽을 쥐었다. 그러면서도 ‘기사 내용과 삶이 일치되도록 주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 이는 기자만이 아니라 지식인과 공무원, 나아가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의 가치다.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들이 말에 책임지는 삶을 설파한 것은 그렇게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라며 이론(테오리아)과 균형을 이루는 실천(프락시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만 넘쳐나는 시대에 여전히 울림을 주는 통찰이다.
쪼개기 증여에 대해 예의 청와대 관계자는 “국세청 홈페이지에 그 방법이 가장 합법적 절세 방법이라고 소개까지 되어 있다”고 엄호했지만 이는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홍 후보자가 소신대로 살아왔느냐는 양식의 문제이다. 그는 스스로를 강의실에 가두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쓰고자 시민단체 활동에 나섰고 의원 배지를 달면서는 교수라는 기득권까지 버렸던 실천적 지식인이다. 그렇기에 부의 세습을 사갈시하던 그의 실제 삶이 더욱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격세 증여의 당사자가 아니라 수혜자라는 논리는 대학 부정 입학이 엄마 최순실과 이화여대 교수들에 의해 이뤄져서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정유라와 닮은 느낌이다.
누구는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자도 쓴 대로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기자는 자기 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직업적 책무가 있다. 프랑스 드골 정부가 독일 부역자를 청산할 때 가장 먼저, 많이 숙청당한 직업인이 언론인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기자 출신 공직 후보자는 평소 칼럼과 연설을 낱낱이 검증당했다. 중학생 딸이 증여받은 8억 원대 건물을 갖고 있는 기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 장관 지명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국민 누구라도 낡은 질서나 관행에 좌절하지 않도록, 국민 누구라도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말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나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이 나라에 여전히 낡은 관행과 반칙이 작동한다는 신호를 주는 홍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어야 한다. 아울러 부실 검증 책임자와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언론을 우롱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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