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임금 이노베이션’

김성규기자

입력 2017-09-11 03:00 수정 2017-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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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임금인상률, 물가 연동해 자동결정’ 합의… 대기업 첫 시도
소모적 임금협상 악순환서 탈피
생애주기별 상승폭도 조정하기로
노사협력 기본급 2% ‘상생 기부’


SK이노베이션 노사가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임금인상률을 물가에 연동하기로 합의했다. 매년 소모적이고 관행적인 임금 협상으로 일부 기업은 물론이고 관련 산업이 몸살을 앓는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10일 SK이노베이션은 “8일 마감한 노동조합원 투표에서 ‘2017년 임금·단체협약 갱신 교섭(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73.6%의 찬성률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전체 조합원은 2517명이며 이 중 90.3%(2274명)가 투표했다. 이번 합의는 SK에너지·종합화학·루브리컨츠 등 SK이노베이션 계열사에도 적용된다.

합의안의 핵심은 앞으로 매년 임금인상률을 전년도에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CPI)에 연동하는 것이다. 물가가 오른 만큼 임금을 올린다는 개념이다. 올해 이 회사 직원들의 임금인상률은 전년도 CPI인 1%에 각자의 호봉승급분(평균 2.7%)을 더해 결정된다. 임금인상률이 사실상 자동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밀고 당기기 식의 소모적 협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임·단협 협상 기간이 길게는 1년도 넘어 다음 해 임·단협이 시작될 때까지도 결정이 나지 않는 식의 행태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현대중공업은 2016년 5월 10일 시작한 임·단협을 아직도 끝내지 못해 올해분과 합쳐 교섭하고 있으며, 이는 창사 이래 최장 기록이다.

이번 합의는 차기로 이어지는 노조가 회사 측과 합의를 유지하는 한 계속 적용된다. 다만 CPI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급격한 물가상승이 발생할 때는 별도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직원 평균 연봉이 지난해 1억100만 원에 이를 정도로 처우가 좋고, 매출 39조5205억 원의 회사치고는 직원 수가 6047명(계열사 포함)에 불과해 노사가 합의에 이르기 좋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산업계에서는 노사 양측이 공통의 임금인상 기준에 대해 서로 합의하고 향후 이행을 약속해 임·단협의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에는 10월까지 임금협상을 매듭짓지 못해 정유업계 최초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 신청을 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한국형 노사 교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노사가 함께 미래 경쟁력 확보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 노사는 임금 체계를 직원의 생애주기별 자금 수요를 고려해 연차별 상승 폭을 조절하는 구조로 개선하는 데도 합의했다. 지금까지는 연차에 따라 임금이 일괄적으로(평균 2.7%) 꾸준히 오르는 구조였다. 앞으로는 결혼, 출산 등으로 자금 수요가 많은 30, 40대에는 인상률을 더 높이고, 50대를 넘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기존보다 낮추거나 동결하는 식으로 바뀐다.

또 SK이노베이션 노사는 다음 달부터 기본급의 1%를 사회적 상생을 위한 기부금으로 출연하기로 했다. 직원이 기본급의 1%를 기부하면 그만큼 회사도 기부금을 적립해 협력업체 임직원의 복지 향상과 소외계층 지원 사회공헌에 활용한다. 이 회사 전 임직원이 2007년부터 자발적으로 해오던 ‘1인 1후원계좌’ 기부를 노사가 합의해 제도화한 것으로 올해 기부 예상액은 약 40억 원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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