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갈등 중재 역할 해야 할 정부는 “공론화”만 되풀이

박재명 기자 , 이건혁 기자 , 최혜령 기자

입력 2017-07-11 03:00 수정 2017-07-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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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원전 건설 중장비 공사가 중단된 울산 울주군 신고리 6호기 건설 현장 전경. 근로자들은 찾아볼 수 없고 중장비가 멈춰서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11일 이사회를 재소집해 공론화 기간 중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울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탈(脫)원전 정책이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작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력 학계 등에서 “제왕적 조치” “법적 근거가 없다”는 등 반발이 커지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원전 건설 중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시민·환경단체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원전 건설 영구 중단을 결정해야 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전력 수급 대안, 에너지 안보,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구성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지만 공론화위원회 구성 방침만 밝힌 채 아직까지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 학계, 업계에 이어 노조까지 반발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13일 오전 경북 경주시 본사에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의 일시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이사회를 연다. 한수원은 7일에도 이사회를 열었지만 관련 내용을 논의하지 못했다.

한수원 노동조합은 이사회 원천 봉쇄를 예고했다. 한수원 노조는 “회의실을 점거해 이사회를 무산시킬 것”이라며 “건설 일시 중단은 법적인 근거가 없으며 (정부가) 공기업에 비용을 떠넘기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수원 노조는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결정이 내려질 경우 이사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신고리 원전 건설 잠정 중단을 밝히며 갈등을 조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14일 동안 이를 둘러싼 찬반 갈등은 되레 극심해지는 양상이다. 5일에는 대학교수 417명이 모여 “대통령 결정만으로 원전 건설을 중단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는 내용의 비판 성명을 냈다. 신고리 5, 6호기를 짓고 있는 건설업체들 역시 최근 “구체적인 공사 중단 범위를 명시하고 보상 방안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탈원전 반대 진영이 속속 집결하는 모습이다.

반면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환경단체는 “기존 원자력 카르텔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 결정을 지원하는 논평을 내고 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에너지법에 따라 원전 건설 중단은 문제가 없다”며 찬성 편에 힘을 싣고 있다.


○ 정부·정치권이 ‘이해 당사자’…분쟁 장기화 우려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데도 정부조차 수수방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대표적인 사회갈등이었던 밀양 송전탑 사태나 2013년 철도파업의 경우 정부와 정치권이 욕을 먹으면서도 중재 역할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들이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로 참여하면서 조정 여지를 잃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 추진 주체는 산업부가 아니라 국무조정실이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보상 규정을 마련하는 등 대책 발표 역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직접 담당했다. 국무조정실은 이제까지 정부부처와 국민 간 갈등 조정을 맡아 왔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직접 나섰던 밀양 송전탑 사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정책 추진에 직접 나서다 보니 갈등이 커져도 조정자 역할을 하기 쉽지 않게 됐다.

정치권 역시 진영 논리에 갇혀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신고리 5, 6호기 건설 현장을 찾아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당은 탈원전 정책 속도 조절을 요구한 교수들과도 이미 국회에서 만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당 의원들은 탈원전 정책이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 ‘정책 후퇴’를 의미하는 분쟁 조정에 개입하기 쉽지 않다. 만약 탈원전 정책에서 파열음이 계속될 경우 조정할 주체도 여의치 않다는 의미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일이 국가 수준의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탈원전을 결정한 것은 단순한 이해관계를 초월해야 결론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해관계를 떠나 윤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이건혁 / 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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