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시대’… 기업들 청춘 품다

장윤정 기자

입력 2017-07-10 03:00 수정 2017-07-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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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 세대로 불리는 청년층, 취업난 시달리며 치열한 삶
KT 등 고민 들어주는 기업들, 토크쇼 형태로 마음열기 나서
학업-아르바이트-연애 등 소소한 일상까지 함께 털어놔
진정성 있는 소통과 공감 통해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


6월 27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청춘氣업 토크콘서트 #청춘해’에 강연자로 나선 가수 홍진영(가운데), 개그맨 김영철(오른쪽)이 포스트잇에 적
힌 청춘들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T 제공
“과거 우리 사회는 1등만을 원했지만 이젠 달라졌어요. 1등이 아니라 나만의 ‘캐릭터’가 있으면 되죠. 나는 신동엽, 유재석, 강호동처럼 1등이 될 수 없어요. 하지만 되지 않아도 좋아요. 여러분도 틀을 깨버렸으면 좋겠어요.”

‘말 많고 안 웃기는 개그맨’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없으면 안 되는 캐릭터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개그맨 김영철의 진솔한 이야기에 20대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박수를 보냈다. 김영철은 ‘스물네 살에 무엇을 해야 후회가 적을까’라는 고민을 던진 청중에게 즉석에서 강상중 교수의 저서 ‘고민하는 힘’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열린 KT ‘청춘기(氣)업 토크콘서트 #청춘해’(이하 청춘해)에 참석한 수백 명의 청춘은 무더위와 기습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고 연사로 참여한 개그맨 김영철, 가수 홍진영과 뜨거운 ‘공감(共感)’의 시간을 즐겼다. 연세대 경영학과 김모 씨(23)는 “아는 사람이 좋다고 해서 와봤는데 우리 눈높이에 맞춘 내용이라 공감이 갔고 즐길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N포 세대’, ‘청년실신(청년실업+신용불량)’, ‘흙수저’ 등 청년들의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는 신조어가 쏟아지는 시대에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소통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에 친근한 기업이미지를 조성하는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고객 및 ‘팬’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조언이나 가르침보다는 인정과 따뜻한 격려에 목말랐던 청춘들의 호응도 뜨거워 지난해 3월 시작된 KT의 ‘청춘해’는 이미 대학가에서 입소문을 타며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 입소문 타기 시작한 KT의 ‘청춘氣업 토크 콘서트’

공연과 인생 상담이 버무려진 KT ‘청춘해’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쌍방향 소통이다. 공연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2030 청춘들과 출연진이 페이스북 대화 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며, 무대를 함께 꾸며 나간다. 2030 청춘들이 응모한 사연 가운데 토크쇼 아이템을 직접 채택하는 것.

실제로 ‘청춘해’에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학자금, 취업, 학업에 대한 고민부터 뒤처질까, 낙오될까 싶은 두려움까지 온갖 걱정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이런 고민에는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이 오간다.

지난해 5월 26일 광주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행사에선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직원이 마이크를 들고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도 했는데, 월급은 대부분 학자금 갚는 데 들어간다”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행사 진행자 중 한 명이었던 가수 ‘샘 김’은 곧장 무대 아래로 내려가 그 직원을 따뜻이 안아줬다.

청춘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프로그램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특징이다. 공연과 강연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당초 공연 비중이 더 높았던 행사는 올해 들어 강연 비중이 높아졌다. 지난해 행사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약 70%의 관객들이 “강연 비중을 높여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KT는 3월부터 전문 강사를 섭외하기 시작했고 강연시간도 지난해의 배로 늘렸다.


○ 앞다퉈 청춘을 만나러 가는 기업들

사실 청춘들과의 스킨십에 나선 기업은 KT만이 아니다. 삼성은 2016년 5월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청춘문(問)답’ 행사를 진행했다. 2011년부터 4년간 ‘열정락(樂)서’, 2015년 ‘플레이 더 챌린지’ 등 토크 콘서트를 운영해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퀴즈와 토크 콘서트를 결합한 ‘청춘問답’을 선보인 것이다. 청춘問답의 주요 연사로는 외부 명사들은 물론이고 삼성 임원들도 참석해 수십 년간 경영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전달했다. 또 삼성은 청춘세대와 공감하는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가기 위해 2013년부터 20대가 즐기는 웹 드라마를 매년 한 편씩 만들어 오고 있다.

국민카드는 ‘청춘대로 프리마켓’ 행사를 개최해 젊은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에뛰드하우스의 ‘메이크업 유어드림’도 강연을 통해 청춘들에게 조언과 응원을 전하는 프로그램이다.


○ 청춘을 품어야 미래가 있다

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아직은 주류가 아닌 청춘들에게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미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유스(youth) 마케팅’ 차원일까.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디지털마케팅연구소장)는 “청년실업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사회적 소통에 나서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를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몇 년간 청년실업이 최대 난제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청년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30세대,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 사이 출생한 세대)의 까다로운 소비 취향도 기업들을 움직인 배경이다. 이 교수는 “현 2030세대는 기존의 오프라인 문법이 잘 통하지 않는 세대”라며 “젊은층에게 다가가기 위해 디지털 데이터를 모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문화행사를 통해 기업의 ‘지지자(advocate)’를 확보하는 방식의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정성만 통하면 톡톡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사실 KT의 경우 공기업 이미지, 보수적 기업 이미지가 강해서 젊은층의 호감을 얻는 데 한계가 있었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이지만 KT를 두고 ‘젊고 혁신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힘들었던 것. 고민 끝에 나온 ‘청춘해’ 콘서트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지만 단기에 큰 성과를 얻고 있다는 게 KT의 자체 평가다.

관중 수가 초기 수백 명에서 최근 수천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 수도권 위주로 이뤄지던 타사 청춘 콘서트와 달리 전국을 돌면서 행사가 진행돼 ‘지지자’들이 전국구라는 특징도 생겼다. 이미지 제고는 상품 판매로도 이어지고 있다.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청년특화 상품인 ‘Y24 요금제’(만 24세까지 가입 가능, 매일 3시간 데이터 무제한, 이용요금은 2만∼5만 원대로 상대적으로 저렴) 가입자 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KT는 ‘청춘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업 내부 소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KT인들을 대상으로 한 세대공감 토크콘서트 ‘케미’가 열렸다. 2030세대와 4050세대가 얼굴을 맞댄 행사에서는 젊고 창의적인 KT를 만들기 위한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청춘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KT홍보실 류준형 상무는 “KT는 진심으로 청년세대를 응원하며 이를 ‘청춘해’ 콘서트로 녹여내고 있다”며 “앞으로 행사 규모와 채널을 확대해 더 많은 청춘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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