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신라 왕궁 연못에서 건진 목제 남근…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5-10 03:00 수정 2017-05-10 09:02
<32> 경주 월지(안압지) 발굴
8일 경북 경주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안압지)’를 함께 찾은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70)이 건넨 선문답 같은 말이다. 과연 그러했다. 천년왕성 월성(月城) 동문 터와 맞보고 있는 월지 남쪽에 들어서자, 연못을 중심으로 복원된 건물들과 인공섬 대도(大島), 소도(小島)가 한눈에 들어왔다. 월지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지점이다. 그러나 연못의 북서쪽 방면에 자리 잡은 중도(中島) 일대는 볼 수 없었다.
42년 전 윤 전 소장과 함께 월지를 발굴한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안압지 발굴조사와 복원’ 글에서 “월지는 무한한 바다를 좁은 공간에 표현했다”고 썼다. 월지는 경복궁 경회루처럼 통일신라시대 연회를 베풀던 경치 좋은 연못과 정원이다. 삼국사기는 월지에 대해 “서기 674년(문무왕 14년)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했다. 삼국통일 직후 왕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문무왕이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월지에 집약한 게 아닐까. 나중에 그가 바닷속 수중왕릉에 묻힌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음, 모양이 딱 그건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975년 5월 29일 월지 북쪽 기슭 발굴현장. 최정혜 당시 조사원이 바닥 개흙층에서 발견한 17.5cm 길이의 기다란 나무 조각을 한 남성 조사원에게 내밀었다. 조각을 뒤덮은 진흙을 닦아낸 남성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챘지만 대답을 머뭇거렸다. 남녀유별이 남아 있던 1970년대엔 그럴 만도 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남성의 심벌 모양이었다.
왕궁 연못에서 느닷없이 남근(男根)이라니.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 이쪽으로 쏠렸다. 윤근일의 회고. “최규하 총리를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가 현장에 와서 목제(木製) 남근을 만져보고 신기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다보니 최태환 당시 작업반장이 남근에 실을 살짝 묶어놓았어요. 약품 보존처리 중이던 목제 유물들에 둘러싸인 남근을 손쉽게 찾으려고 한 거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남근의 용도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학계에서는 예부터 바닷가 해신당(海神堂)에서 남근을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 것처럼 제의용이라는 견해가 일찍부터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고대 로마 폼페이 유적에서도 도시 곳곳에서 남근 조각과 그림들이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월지에서 출토된 남근의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데다 돌기까지 붙어 있어 여성의 자위 기구라는 설도 제기된다.
○ 삼국시대 배 최초로 발견
둘레 1005m, 면적 1만5658m²에 이르는 월지를 제대로 즐기려면 유람선을 띄우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975년 4월 16일 연못 한가운데에서 통일신라시대 나무배 한 척이 발견됐다. 그때까지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선박이었다.
문제는 엎어진 채 모습을 드러낸 나무배를 안전하게 들어내는 것이었다. 부식이 쉽게 일어나는 유기물 특성상 1300년 묵은 나무는 스펀지처럼 취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1960∼90년대 경주 발굴현장을 지킨 고 김기출 작업반장과 상의한 끝에 윤근일은 나무장대 여러 개를 나무배 아래로 밀어 넣은 뒤 마치 상여를 메듯 들어 올렸다. 길이 6.2m, 너비 1.1m의 나무배에 인부 30명이 달라붙었다. 경사로에서 나무배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이 맞지 않아 살짝 금이 갔지만, 거의 완형을 유지한 채 무사히 수습을 마칠 수 있었다. 발굴팀은 나무배를 즉시 약품에 담가 7년 동안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 예상보다 훨씬 넓었던 동궁 영역
이날 ‘동궁과 월지’ 동편지구 발굴현장에서 만난 장은혜 학예연구사(29)는 2년 전 통일신라시대 우물을 발굴한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궁과 월지 발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지 동편지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2007년부터 이어가고 있다.
당초 동편지구는 별도의 왕경 유적으로 추정됐지만, 막상 땅을 파보니 이곳에서 확인된 건물 터와 유물은 월지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했다. 신라시대 동궁 영역이 현재 사적지로 지정된 범위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백전노장과 청년 고고학자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동궁과 인근 월성 발굴은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1970년대 발굴에서 확인하지 못한 월지 동편과 북편 경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31> 부산 복천동 고분
<30>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29> 동삼동 패총의 재발견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75년 4월 16일 경주 월지(안압지) 발굴 현장에서 통일신라시대 나무배를 끌어올리고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여긴 사방 어디서도 전체를 볼 수 없는 무한(無限)의 공간이오.”8일 경북 경주시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안압지)’를 함께 찾은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70)이 건넨 선문답 같은 말이다. 과연 그러했다. 천년왕성 월성(月城) 동문 터와 맞보고 있는 월지 남쪽에 들어서자, 연못을 중심으로 복원된 건물들과 인공섬 대도(大島), 소도(小島)가 한눈에 들어왔다. 월지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지점이다. 그러나 연못의 북서쪽 방면에 자리 잡은 중도(中島) 일대는 볼 수 없었다.
42년 전 윤 전 소장과 함께 월지를 발굴한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안압지 발굴조사와 복원’ 글에서 “월지는 무한한 바다를 좁은 공간에 표현했다”고 썼다. 월지는 경복궁 경회루처럼 통일신라시대 연회를 베풀던 경치 좋은 연못과 정원이다. 삼국사기는 월지에 대해 “서기 674년(문무왕 14년) 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으며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기록했다. 삼국통일 직후 왕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문무왕이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월지에 집약한 게 아닐까. 나중에 그가 바닷속 수중왕릉에 묻힌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경주 월지(안압지)에서 출토된 목제 남근. 귀두 부위에 튀어나온 돌기가 보인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선생님, 방금 이런 게 나왔는데 뭔지 아시겠어요?”“음, 모양이 딱 그건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1975년 5월 29일 월지 북쪽 기슭 발굴현장. 최정혜 당시 조사원이 바닥 개흙층에서 발견한 17.5cm 길이의 기다란 나무 조각을 한 남성 조사원에게 내밀었다. 조각을 뒤덮은 진흙을 닦아낸 남성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챘지만 대답을 머뭇거렸다. 남녀유별이 남아 있던 1970년대엔 그럴 만도 했다. 그것은 전형적인 남성의 심벌 모양이었다.
왕궁 연못에서 느닷없이 남근(男根)이라니.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 이쪽으로 쏠렸다. 윤근일의 회고. “최규하 총리를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가 현장에 와서 목제(木製) 남근을 만져보고 신기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찾다보니 최태환 당시 작업반장이 남근에 실을 살짝 묶어놓았어요. 약품 보존처리 중이던 목제 유물들에 둘러싸인 남근을 손쉽게 찾으려고 한 거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남근의 용도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학계에서는 예부터 바닷가 해신당(海神堂)에서 남근을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 것처럼 제의용이라는 견해가 일찍부터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고대 로마 폼페이 유적에서도 도시 곳곳에서 남근 조각과 그림들이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월지에서 출토된 남근의 표면이 매끈하게 다듬어진 데다 돌기까지 붙어 있어 여성의 자위 기구라는 설도 제기된다.
○ 삼국시대 배 최초로 발견
둘레 1005m, 면적 1만5658m²에 이르는 월지를 제대로 즐기려면 유람선을 띄우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975년 4월 16일 연못 한가운데에서 통일신라시대 나무배 한 척이 발견됐다. 그때까지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선박이었다.
문제는 엎어진 채 모습을 드러낸 나무배를 안전하게 들어내는 것이었다. 부식이 쉽게 일어나는 유기물 특성상 1300년 묵은 나무는 스펀지처럼 취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1960∼90년대 경주 발굴현장을 지킨 고 김기출 작업반장과 상의한 끝에 윤근일은 나무장대 여러 개를 나무배 아래로 밀어 넣은 뒤 마치 상여를 메듯 들어 올렸다. 길이 6.2m, 너비 1.1m의 나무배에 인부 30명이 달라붙었다. 경사로에서 나무배를 끌어 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이 맞지 않아 살짝 금이 갔지만, 거의 완형을 유지한 채 무사히 수습을 마칠 수 있었다. 발굴팀은 나무배를 즉시 약품에 담가 7년 동안 보존 처리를 진행했다.
○ 예상보다 훨씬 넓었던 동궁 영역
윤근일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과 장은혜 학예연구사, 박윤정 학예연구실장(왼쪽부터)이 8일 경북 경주시 ‘동궁과 월지’를 둘러보고 있다. 윤 전 소장은 1975∼76년 발굴에 참여했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로프에 몸을 묶고 7m 깊이의 캄캄한 우물 안으로 들어간 기억이 생생하네요.”이날 ‘동궁과 월지’ 동편지구 발굴현장에서 만난 장은혜 학예연구사(29)는 2년 전 통일신라시대 우물을 발굴한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궁과 월지 발굴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지 동편지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2007년부터 이어가고 있다.
당초 동편지구는 별도의 왕경 유적으로 추정됐지만, 막상 땅을 파보니 이곳에서 확인된 건물 터와 유물은 월지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했다. 신라시대 동궁 영역이 현재 사적지로 지정된 범위보다 훨씬 넓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백전노장과 청년 고고학자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말한다. “동궁과 인근 월성 발굴은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1970년대 발굴에서 확인하지 못한 월지 동편과 북편 경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과제입니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31> 부산 복천동 고분
<30>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29> 동삼동 패총의 재발견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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