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의 연극인 열전] 무대미술가 박동우 “브로드웨이가 경쟁상대다”

심규선 기자

입력 2017-04-30 20:30:00 수정 2017-05-04 08: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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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30년인 무대미술가 박동우는 그동안 연극·뮤지컬·오페라 분야 등에서 500여 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그는 창작극을 만들 때는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기존의 작품도 적극적으로 재해석한다. 무대장치는 될 수 있으면 개념화, 단순화한다. 그래서 그는 무대미술가를 ‘시인이자 화가이자 건축가’라고 주장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무대제작소가 경기도에 많아 형편은 어렵지만 자동차를 샀다. 1980년대 후반 서울종로경찰서 관내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직업을 ‘무대미술가’라고 했더니 경찰이 ‘인테리어’라고 썼다. 그게 아니라고 했더니 경찰이 ‘이 친구야, 그게 그거지’라고 했다. 2년 후 또 종로경찰서 관내에서 사고를 만났다. 경찰은 바뀌었지만 사정은 똑 같았다. 그 때도 ‘무대미술가’라고 했더니 ‘무직’이라고 썼다. ‘왜 무직이냐’고 따졌더니, 경찰은 ‘이 사람아, 직업과 취미는 다른 거야’라고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무대로 관객을 사로잡는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30년간 그가 관여한 작품만 500여 편. ‘그’는 무대미술가 박동우(55)다. 4월 25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1. 학교와 회사-길을 헤매다

그는 무대미술가가 되기까지 무대미술과 오랫동안 썸을 탄 것 같다. 다음은 이번 인터뷰와 다른 인터뷰 등을 종합해 만들어 본 박동우의 자기소개서다.

“나는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진보국민학교를 다녔다. 5학년 학예발표회 때 담임이 ‘화랑 관창’이라는 연극에서 품일장군이라는 중요한 역을 맡겼지만 거절하고 의상이나 소품을 맡겠다고 했다. 대구중, 대구심인고 재학 때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최인호가 우상이었다. 그래서 최인호가 졸업한 연세대 영문과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와 재수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서울역 앞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대우빌딩을 봤고, 이번에는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졸업한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교동창을 따라 연세극예술연구회(연세극회)의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했다가 분위기가 좋아 그대로 눌러 앉았다. 공작에 재주가 있어 무대미술과 장치를 담당했다. 대학 때 20여 작품에 참여했던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대우전자에 들어가 1년 반 정도를 다녔다. 재미가 없었다. 무대미술이 하고 싶었다. 사표를 내고 홍익대 대학원에 들어가 무대미술을 전공했다. 회사는 나를 만류할 수 없었다. ‘무대미술가’가 뭐 하는 걸 잘 몰랐기 때문에. 막상 회사를 그만두니 먹고 살아야만 했다. 회사로고 제작, 광고와 인쇄물 디자인, 인테리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을 만나게 됐다. 공연포스터 디자인을 의뢰받았는데, ‘저는 포스터 디자인보다 무대디자인을 더 잘 합니다’고 했다. 그러자 임 선생님은 내게 ‘숲속의 방’을 맡겼다. 당시 임 선생님은 오랫동안 함께 일하던 장종선 무대디자이너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새로운 무대디자이너를 찾던 중이었다. 그때가 1987년. 나는 그렇게 무대미술가가 됐다.”

그는 나중에 최인호 선생의 ‘몽유도원도’를 뮤지컬로 만들 때 직접 만나 ‘선생님은 제 우상입니다’했더니 당시 집필하던 ‘상도’라는 연재소설에 ‘박동우’라는 인물을 넣어줬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나는 “대학에서 무대미술을 할 때 칭찬을 받았느냐”고 물어봤다. 아무리 본인이 좋아한다고 해도 좋은 직장까지 때려치울 때는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테고, 그 중 하나가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였을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박동우는 연극에서도 좋은 작품을 남겼지만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던 한국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을 통해 한국 무대미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1997년 미국 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올린 ‘명성황후’의 앵콜 공연. 명성황후, 고종, 외국대사들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무대가 갑가지 올라가고, 그 밑에서 명성황후의 시해를 모의하는 일본 낭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2층 구조의 이 장면은 양쪽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에이콤 인터내셔널 제공



2. 무대, 무대, 무대-길을 달리다

그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데뷔한 지 3년 만인 1990년 대한민국연극제 무대미술상(‘실비명’)을 받더니, 그 다음해 최고 권위인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봉숭아꽃물’)을, 그 다음해 또 다시 대한민국연극제 무대미술상(‘이승의 죄’)을 수상했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대미술가라는 직역이 빨리 정착했다고 본다. 무대미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마지막 세대의 덕을 많이 본 셈이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덜한데 예전에는 심적 고통이 많았다. 내일이면 무대를 세워야 하는데,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이다. 새로 무대를 만들 시간이 없으니. 그러나 지금은 거의 그런 일이 없다. 최선의 길을 찾아 노력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본인의 아이디어와 관객의 취향은 어떻게 융합하나.

“예전부터 공연은 대중문화다. 반 고흐 그림이 아니다. 나중에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평가를 받는다. 내가 좋은데, 관객도 좋으면 최상이다. 그러니 감각을 최고도로 유지해야 한다.”

관객에 대한 존중과 영합의 차이를 물었다.

“차이를 별로 못 느낀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지금은 바이블이지만, 당시에는 대중적이었다. 관객의 반응을 보아가며 계속 고치고 바꿨다. 그 때 완성된 희곡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안 된다. 이 시대, 지금 관객이 보는 것이니까. 표피적인 재미만을 살리는 것은 영합이지만, 지금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을 배려하는 것은 존중이다.”

무대미술의 프로세스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연출이 의뢰를 했지만, 요즘에는 보통 기획사가 의뢰를 한다. 대개는 희곡을 읽어보고 결정하지만, 어떤 연출가와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마음이 맞는 연출가라면 희곡을 읽어보기 전에도 오케이를 한다.

다음은 개념도출이다. 가장 행복한 경우는 희곡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개념이 떠오르는 것이다. 안 되면 자료 조사도 해보고, 역사 공부도 한다. 그래도 개념이 잘 안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머리 속에서 하는 작업까지가 개념도출이고, 그 다음이 개념을 구체화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그림, 도면, 모형을 만들고 재료 조사 등을 하는 것이다. 결정이 되면 제작소에 넘긴다. 제작소로 넘기기 전에 연출과 협의한다. 연출과 배우, 디자이너 등이 모여 희곡을 처음으로 읽어보는 첫 리딩 때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 다음은 제대로 만들었는지 따지는 감리다. 건축은 설계와 시공, 감리가 분리되어 있지만, 공연에서는 무대미술가가 감리를 한다. 제작소에 자주 갈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예전과 달리 제작소의 제작기술과 예술감각도 많이 좋아졌다.

감리가 끝나면 극장에 들여온다. 설치해서 의도한 대로 작동되는지, 기술적 변수 등을 체크한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 단계도 중요하다.”

무대미술도 장르별로 차이가 많은 것 같다.

“뮤지컬은 장면이 많다. 1, 2막에 30여개나 된다. 각 장면마다 시각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매끄럽게 전환해야 한다. 오페라는 많지 않다. 그 대신 한 장면 한 장면이 크다. 무대장치가 음향반사판 역할도 해야 한다. 그걸 모르고 만들면 가수 소리가 안 들려 실패한다. 요즘은 무대미술도 분화를 하고 있다. 작업의 90% 이상을 오페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무대미술의 트렌드를 물었다.

“물감에서 빛으로, 평면에서 입체로, 배경에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빛은 영상을 의미한다.”

그는 후학도 양성하고 있다. 1992년에 생긴 무대미술아카데미에서 6기까지 12년간 교수로 일했다. 2002년부터 중앙대 안성캠퍼스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퇴사하고, 2016년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으로 옮겼다. 과목은 학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는 전공자를 위한 무대미술, 비전공자를 위한 극장사, 극장공간연구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별도의 작업실을 갖고 있다. 1993년부터 7년간 혜화동에서 일하다, 서래마을 10년을 거쳐, 2010년부터는 예술의전당 바로 앞에 오피스텔을 마련했다.

2008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했던 극단 코끼리만보의 ‘거투르드’의 객석 모습. 이 연극은 배경이 술집이었다. 박동우는 극장 입구부터 술집처럼 꾸미고, 객석은 스탠드 바처럼 만들었다. 무대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으로 확대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관객도 연극의 일부가 된다. 박동우 홈페이지.



3. ‘명성황후’와 ‘영웅’-길을 만들다

박동우는 일관되게 무대미술가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건축가라고 주장한다. 시인이라 함은 ‘우리는 지금 왜 이 작품을 여기서 공연해야 하는가’라고 인문학적인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며, 화가라고 함은 개념을 시각화하기 위해 무대를 도화지삼아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며, 건축가라고 함은 화가가 그린 그림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형태로 구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늘 무대미술가는 시대와 사람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무대미술가의 역량이 연출가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며, 실제로 그러도록 노력해 왔다.

그의 작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나.

첫째, 창작극인 경우는 대본을 만들 때부터 관여한다.

“뮤지컬 ‘영웅’에서 화제가 됐던 기차 장면은 내가 아이디어를 내서 넣은 것이다. 하얼빈 역으로 기차가 들어오는 게 하이라이트인데, 그 때 처음으로 기차를 보게 되면 긴박감도 쌓이지 않고, 관객은 그 기차가 어떻게 그곳에 왔는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전 단계인 만주에서 기차를 한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의 꿈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독립투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내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뒤로 손이 묶인 채 기차로 압송 중이었다. 기차가 철교 위를 지날 때 나는 강으로 뛰어내렸다. 그 꿈을 살려 ‘설희’라는 인물을 기차에서 뛰어내리게 했다. 이 아이디어를 냈더니 윤호진 연출이 흔쾌히 수용했다.”

2011년 8월 23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링컨센터. 만주벌판을 거쳐 하얼빈 역으로 향하던 기차 영상이 갑자기 실물 기차로 바뀌는 장면에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그 기술에 대해 자세히 묻자 “비밀”이라고 했다). 미국의 공연영화전문 사이트인 스테이지앤시네마는 그 장면을 만든 무대, 조명, 의상, 특수효과 디자이너들을 “극장의 렘브란트들(Rembrandts of the theatre)”이라면서 무대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꼭 봐야할 장면이라고 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처럼 무대위에서 빛을 절묘하게 사용했다는 찬사였다. 뉴욕타임스도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2막에 등장하는 실물 크기의 기차”라고 했다.

‘영웅’보다 앞서 그에게 자신감을 준 작품이 뮤지컬 ‘명성황후’다. 1995년 국내에서 공연한 ‘명성황후’는 1997년 한국의 창작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그는 “뉴욕 진출을 위해 1년간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한 단계 성숙해졌고, 결국은 ‘브로드웨이 콤플렉스’를 떨쳐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브로드웨이 콤플렉스’는 한국은 아무리 노력해도 브로드웨이를 따라갈 수 없다는 열패감이었다. 그는 1990년 대한민국연극제 무대미술상을 받고 포상으로 브로드웨이를 2주간 방문했을 때 많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존 내피어의 무대가 그랬다. 내피어는 요셉 스보보다(체코)와 함께 현대 무대미술의 전설. 내피어는 ‘브로드웨이 오페라 빅4’ 중 ‘오페라의 유령’만 빼고 ‘레미제라블’, ‘캣츠’, ‘미스 사이공’을 모두 담당한 백만장자 무대미술가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센 강으로 빠지는 장면에서 네피어는 겨우 20cm 높이의 다리를 갑자기 솟아오르게 한 뒤 무대를 회전시켜 자베르 경감이 센 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런 사람들이 일하는 브로드웨이였기에 ‘명성황후’ 공연을 앞둔 현지 분위기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무대에 오른 ‘명성황후’는 명품이었다.

“요즘은 모두들 브로드웨이 수준으로 만들자고 한다. 특히 국내뮤지컬을 갖고 해외에 나갈 때는 그렇다. 일본 중국은 자주 간다. 모두가 그런 목표로 일하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브로드웨이는 이제 경쟁상대다.”

둘째는 개념화와 단순화다.

이는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김아라 연출의 ‘내마’ 공연의 경우 작가의 우화적 기법을 무대미술에 적용시켜 작품배경을 공중목욕탕으로 설정하자고 연출에게 제시했다. 무대미술가가 해석한 공간을 연출가가 수용한 셈이다. 또 다른 예는 ‘갬블러’공연에서다. 원래 독일원작에서는 ‘자금성’이라는 카지노를 배경으로 한 것을 우리 식으로 신비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에서 이슬람문화권으로 바꿨다. 이 설정에서는 모든 의상이며, 대사, 악기구성, 음악편곡까지 바뀌게 된다.”(월간 한국연극, 2003년 6월호)

서울시극단 창단 20주년 기념공연인 헨리크 입센의 ‘왕위주장자들’의 도입부. 호콘 왕의 어머니 잉가 부인이 불에 달군 쇠를 만지는 시련에서도 다치지 않았다며 이는 호콘 왕이 신의 정당한 선택을 받은 왕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동우는 무대를 3면이 막힌 철벽처럼 꾸밈으로써 권력쟁취를 위한 암투, 욕망, 의심이 새나가지 못하고 모두 무대 위에서 들끓도록 했다. 무대 중앙 위에 걸린 거대한 나무뿌리도 관심을 끌었다. 서울시극단 제공.


그밖에도 많다.

2010년 공연한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신화 속의 요정을 삼베 상복을 입은 배우들로 바꾸고, 무덤도 한국식 흙무덤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막 대신 병풍을 이용해서 장면을 전환했다. 병풍 하나를 걷으면 저 세상인 황천이 나오는 식으로.

2014년 11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사회의 기둥들’에서는 대부호의 거실을 배의 선실로 바꾸고, 실제로 기울어지도록 했다.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무대장치였다.

“LG아트센터 지하에서 연습을 했는데, 실제로 기울어진 연습장을 만들어놓고 연습했다. 배우들이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라거나 등산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29일에 관람한 ‘세일즈맨의 죽음’(한태숙 연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는 아파트를 상징하는 콘크리트 벽이 움직이도록 한 게 인상적이었다. 3면을 막고 있던 거대한 벽들이 주인공 ‘윌리 로먼’을 향해 서서히 다가온다. 아니 윌리 로먼의 소외와 단절, 불안과 고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조여오도록 만든 무대였다.

지난달에 막을 내린 ‘왕위주장자들’에서는 무대 중앙 위에 매달린 커다란 나무 뿌리가 관심을 끌었다. 작중 인물들이 그토록 원하는 ‘왕관’을 상징하는 듯도 하고, 인간으로서 어쩌지 못하는 탐욕과 고뇌의 뿌리를 의미하는 듯도 하고.

좋은 무대디자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해석이 우선이고 이것을 디자인으로 어떻게 잘 구현했는지, 디자인 외의 다른 요소, 즉 배우들의 연기에는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무대 디자이너의 개성이 얼마큼 반영되었냐이다. 고증을 토대로만 디자인한다면 무난한 공연은 될 수 있지만 훌륭한 공연이 되기는 어렵다.”(월간디자인, 2012년 8월)

그렇다면 그의 개성은 무엇인가.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개념화와 단순화다.

그는 일찌감치 이렇게 말했다.

“재료의 성질이나 입체적인 구조물에 더 매력을 느껴 공간변화에 있어 기능적이며 움직임을 강조하는 무대전환에 치중했다. 그래서인지 무대에 무언가를 채워 넣기보다는 생략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자연스레 무대에서의 단순하고 추상적인, 상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데 사실 지금도 밝고 아기자기한 무대는 구상하기 힘들다. 차라리 그로테스크하고 차가운, 비극적인 무대가 좋다.”(월간 한국연극, 2003년 6월호)

이 인터뷰를 했을 때가 그의 무대미술 인생의 딱 중간지점이다. 상반기 15년을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인데, 실은 그 이후로도 달라진 게 없다. 깊이만 깊어졌을 뿐.

본인의 성향에 대해 박동우는 “기질이자 취향일 뿐이다. 내가 본 시대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발랄, 명랑과는 거리가 멀다. 가장 많은 것을 받아들이는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사회분위기가 전제적이지 않았나.”

셋째는 ‘배경’을 ‘환경’으로 확대한다.

보통 무대미술은 무대의 ‘배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경연극(environment theatre)’이라고 해서 작품에 영향을 주는 모든 외부요인을 ‘환경’이라는 확대된 개념으로 파악하고, 무대미술을 중요한 플레이어로 간주한다.

2008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 ‘거투르드’는 배경이 술집이다. 그래서 박동우는 극장 입구부터 술집분위기로 꾸몄고, 모든 객석에 스탠드 바를 만들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극에 참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연극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

이쯤에서 나는 약간 불편한 상상을 했다. 박동우가 그리 실력이 좋고, 그리 세다면 혹시 연출가들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일이 있다면 연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치명적이다.

“대부분은 좋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주파수가 비슷한 사람끼리 일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직적 사고와 유교적 환경, 나이의 존중이라는 독특한 문화 때문에 심리적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비록 그런 게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상쇄할 만한 이점이 있으니까 나와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거북하다면 같이 일을 하자고 하겠나.”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은 2008년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됐다. 사진은 실제 모습이 아니고 모형을 촬영한 것이다. 요즘은 모형의 정밀도가 높아져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실물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많은 전쟁과 죽음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사하기 위해 200개의 관으로 무대를 꾸몄다. 박동우 홈페이지.



4. 무대 30년-길을 돌아보다

그는 올해로 무대미술가로 데뷔한지 30년이 됐다.

“원래 전시회도 생각했지만 준비가 미흡해 못할 것 같다. 전시회보다는 책을 쓰려 한다. 책에서는 무대미술의 전 과정을 다루고 싶다. 텍스트 분석, 개념도출, 커뮤니케이션, 제작, 설치까지. 그 중에서도 개념도출을 강조할 계획이다. 소극적인 무대미술가는 연출이 도출한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무대미술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받은 상은 17개나 된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골고루 받았다. 연극에서는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제,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등에서 받았고, 뮤지컬에서는 한국뮤지컬대상, 더뮤지컬어워즈, 예그린뮤지컬어워즈 등을 수상했다. 2006년에 수상한 이해랑 연극상은 각별하다. 이 상은 주로 연출가, 배우, 극단, 극작가 등이 받는데 무대쪽 디자이너로서는 그가 처음으로 수상했다(2015년에는 이병복 무대미술가가 특별상을 받았다).

후배들이 무대미술가가 되려고 한다면.

“초기에는 불안하다. 정규직도 아니다. 그러나 큰 장점 중의 하나가 학벌 안 보고, 진입장벽도 높지 않다는 것이다. 서너 작품만 잘하면 여기저기서 불러준다. 물론 서너 작품을 망치면 안 불러 주니, 바닥의 구멍도 크긴 하다.”

그는 좋은 무대미술가가 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친구들은 남들이 이미 시각적으로 정해 놓은 것을 찾는다. 특히 소설 같은 것을 많이 읽어야 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므로 시각적 창작 훈련에 도움이 된다. 시대와 사회를 읽기 위해서는 시사부터 인문학까지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시대와 사회를 읽지 못 읽으면 늘 남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그는 아직 젊다. 그러니 그가 시대와 사회를 읽고 명작을 늘릴 기회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박동우가 참여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숲속의 방’ ‘고도를 기다리며’ ‘실비명’ ‘봉숭아 꽃물’ ‘이승의 죄’ ‘뮤지컬 심수일과 이순애’ ‘뮤지컬 명성황후’ ‘뮤지컬 겨울나그네’ ‘내마’ ‘오페라 가면무도회’ ‘오페라 황진이’ ‘덫-햄릿에 대한 명상’ ‘바냐 아저씨’ ‘뮤지컬 겨울연가’ ‘시련’ ‘심판’ ‘거투르드’ ‘침향’ ‘뮤지컬 컴퍼니’ ‘뮤지컬 영웅’ ‘맹진사댁 경사’ ‘뮤지컬 퀴즈쇼’ ‘연극 내일은 챔피언’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리어왕’ ‘산불’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 서편제’ ‘고곤의 선물’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뮤지컬 그날들’ ‘줄리어스 시저’ ‘사회의 기둥들’ ‘뮤지컬 아리랑’ ‘뮤지컬 신과 함께’ ‘3월의 눈’ ‘뮤지컬 아랑가’ ‘세일즈맨의 죽음’ ‘겨울이야기’ ‘오페라 루살카’ ‘햄릿’ ‘메디아’ ‘가족’ ‘왕위주장자들’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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