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의 연극인 열전]배우 이지하 “대표작? 아직은 없다”

심규선기자

입력 2017-04-11 14:17:00 수정 2017-04-14 11: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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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지하가 사안을 보는 눈은 홑눈이 아니다. 겹눈으로 양지와 음지, 긍정과 부정, 희망과 절망을 함께 본다. 그게 체질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근사한 말만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약점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다. 다만, 그는 ‘천재보다 어려운 게 거장’이라는 말을 믿는다. 배우로 살아가려면 거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어느 인터뷰는 그를 ‘내성적’이라고 하고, 어느 인터뷰는 ‘열정적’이라고 했다. 왜 그런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 본성은 내성적이었다. 천성이 그랬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을 하다보니, 그래서는 클 수 없다, 해낼 수 없다,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래서 작게나마 내 안에 있던 외향성이 확장된 것 같다. 양쪽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작가였다면 본성을 강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광대다. 자신을 사용하지만, 자신에게 숨어있을 수 없고, 자신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다양한 감정을 함께 열어둬야 한다.”

본성은 내성적이지만 배우로는 열정적이라는 말이다. 납득한다. 본성과 프로근성은 동전의 앞뒤 같은 것이니…. 그런데 내가 그를 만나보고 더 주목한 것은 연극에 대한 그의 열정이, 배우에 대한 그의 확신이 묘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시계추처럼 좌우로, 마치 시소처럼 위아래로. 그런데 더 묘한 것은 따로 있다. 그는 그런 움직임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본인이 그걸 인식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배우 이지하(47)다. 4월 5일 동아일보에서 그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는 예상 밖의 말을 했다.

“사실은 인터뷰를 거절하고 싶었다. 지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부정적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럴 땐 두렵다. 후배들도 인터뷰를 볼 텐데, 부정적인 단어가 나오면 어떨지 하는 걱정에….”

연극판에서는 이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그가 ‘지쳐 있는’ 이유가 뭘까.

“근원적 회의가 아니라 배우를 하다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매순간 업앤다운이 있다. 심리적으로 피곤하다. 작품 탓이 아니라 개인 탓이다. 어릴 때는 잘만 하면,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여기까지밖에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다. 그래도 배우는 계속할 것이니, 현실적인 두려움과 버거움, 고단함이 더 커진다. (사추기(思秋期) 같은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이미 40대 초반에 지나갔다. 극복하려는 의지를 발휘할 때도 지나갔다. 어떻게든 나이는 먹을 것이고, 출연 편수는 늘 것이고, 그러니 자꾸 부끄러워진다.”

난 또 뭐라고. 그가 지쳤다는 것은 심신의 피로보다는 매너리즘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그것보다도 나는, 자신의 그늘을 기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리는 그의 태도가 더 신선했다.

어쩌면 그의 고민은 연극 배우가 될 때부터 싹텄는지 모른다.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 1학년 때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초대권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놨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극장의 웅장한 느낌, 극장 밖과 안의 미세한 소리와 온도의 차이, 객석에 앉았을 때의 미묘한 떨림, 갑자기 조명이 켜지며 나를 향해 달려들던 음악과 노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충격이었다.”

이게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는 결국 접수 마감 직전에 회계학도의 꿈을 접고 경성대 연극영화학과에 원서를 낸다. 그리고 합격한다. 뒤에서 이런 말이 들려왔다. “어, 저런 애도 연극영화학과에 가나?”

그러나 출발은 괜찮았다. 4학년 여름방학 때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고, 1993년 ‘바보각시’를 만나면서 2년 동안 ‘각시’로 분주하게 살았다. ‘배우 이지하’의 이름도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홀연 연극판을 떠난다. 시계추가 연극 바깥쪽으로 크게 움직인 첫 사례다.

“‘바보각시’가 없었다면 배우를 못했을 수도 있다. 이윤택 연출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거나 마찬가지다. 배우를 꿈꾸고 갈망했지만 내부에 치열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통해 나도 배우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래서 배우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연극이 버거워 그만 뒀다.”

‘버겁다’는 것은 뭔가. 그는 그만 둘 때 “저는 저를 버리고 연극을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초짜가 건방지게). 그가 “‘바보각시’에서 배우의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배역에 나 자신은 없었다. 춤추라면 춤추고, 노래하라면 노래했다”고 말한 데서 힌트를 찾을 수도 있겠다. 그는 배역에만 충실한 배우가 아니라, ‘내적 충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연극판을 떠난 그가 ‘내적 충만’을 찾았던 것 같지도 않다. 햄버거 가게와 광고, 이벤트, 제빵 회사, 공사판(노가다) 등에서 경리 등으로 4년 쯤 일하다 그만 뒀다. 1997년 연희단거리패에서 같이 공부하던 극단 청우의 김광보 연출이 ‘종로고양이’의 출연을 제안했고, 그는 받아들인다. 시계추가 연극 쪽으로 다시 크게 움직인 것이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는 또다시 직장 생활은 안 하기로 작정을 하고 사진과 웹디자인을 배우려고 할 때였다. ‘종로고양이’ 제안이 없었다면 그 후의 나는 어떻게 됐을까. 나도 모른다.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는 연극판을 떠나있을 때 결혼했다. 아이는 없다. 결혼할 때 아이는 안 갖기로 남편과 합의를 했단다. 그는 “꽤 오래전에, 어렸을 때 한 선택이라 후회한다”고 말한다.

배우 이지하는 그 후 착실하게 성장한다.

대표작을 물었다. 그러면서 “다 애착이 간다거나, 다 대표작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내 걱정은 무참히 깨졌다.

“대표작? 대표작은 없다. 아직도 못 만든 것 같다. 만들고 싶다.”

아, 이런 대답도 있을 수 있구나. 그런데 멋있지 않은가. 앞으로의 작품에 승부를 걸겠다는 뜻이니.

질문을 바꿨다. 그럼 남들이 좋았다고 말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2005년에 극단 백수광부가 공연한 ‘그린 벤치’에서 딸 요코 역(왼쪽)을 맡은 이지하. 어머니(예수정)가 화장을 해주는 장면이다. 이 작품으로 이지하는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대학로에 각인시킨다. 그는 이 작품을 시작할 때 절친을 떠나보낸다. 그 슬픔이 이 작품의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와 겹치면서 연기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는 이 작품을 하면서 “연기는 삶과 함께 간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극단 백수광부 제공
그는 ‘그린 벤치’(2005년,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 ‘과부들’(2014년), ‘억울한 여자’(2015년, 제2회 서울연극인대상 연기상)을 꼽았다. 그는 2008년에는 ‘오레스테스 시련’으로 제44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그 해에 제4회 골든티켓어워즈 연극부문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중견을 넘어 유명배우가 된 것이다.

‘그린 벤치’는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가 쓴 희곡이다. 일그러지다 못해 그로테스크해진 가족 관계의 현재를 통해 미래의 희망마저 거부당하는 고통스런 인간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극 속의 가정이 부조리한 사회를 상징한다는 해설도 가능하지만 나는 작가 유미리의 개인적 경험 자체가 매우 극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미리는 개인의 경험을 모티브로 삼는 사소설(私小說) 분야의 대표적 작가로서, ‘그린 벤치’는 사소설을 연극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린 벤치’에서 그는 딸 요코 역을 맡았다. 그에게 신인연기상을 준 심사위원들은 그가 실제로 극중에서처럼 22살인 줄 알았다는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때 그는 35살이었다(그는 그만큼 동안(童顔)이다. 몸집도 작다. 그러니 조금만 열정적으로 연기해도 인상적이다. 또한 나이보다 젊은 연기를 많이 했으나 지금은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한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이 작품으로 대학로에 이름을 알렸다.

“‘그린 벤치’를 하면서 연기는 삶과 같이 간다는 걸 느꼈다. 연습 단계에서 절친이 세상을 떠났다. 충격이 컸다. 다른 멤버들은 몰랐지만, 엄청난 고통을 안고 연기했다. 그런 감정이 ‘그린 벤치’의 상실, 소멸, 덧없음과 겹쳤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영향을 줬다. 배우는 연기가 다가 아니다. 배우는 삶을 숨길 수도 없고 넘어설 수도 없다. 그 이후 연기에 변화가 왔다.”

이지하는 2016년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에서 여자 지주인 류보비 라네프스카야 역(오른쪽)을 맡았다. 지주계급이 몰락하고 신흥계급이 들어서면서 그가 가꾸던 벚꽃동산이 농노의 자식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해 하는 장면이다. 그가 잃은 것은 단순히 땅이 아니라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상징한다. 어느 시대에다 ‘그 무엇’은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이 작품은 지금도 유효하다. 극단 백수광부 제공
‘과부들’ 대해서는 연기가 아니라 배우에 대해 얘기했다.

“‘과부들’에서의 역은 크지 않았으나 이 시대, 이 사회에서 연극은 여전히 필요하지 않나, 연극은 시대를 반영하고 면도칼로 종이 베듯 시대를 베어야 한다, 그게 연극이고 배우의 소명 아닌가 하는 것을 느끼면서 연기했다. ‘그래 내가 배우였지!’하는 마음으로 잠들어 있는 자들이 깨어나도록.”

‘과부들’은 칠레 피노체트 정권 시절 폭압과 독재로 남편을 잃어버리고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과부들’의 조용하지만 숭고한 저항을 그리고 있다. 배우 이지하는 그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와 겹치는 그 무엇을 보고, ‘과부들’과 겹치는 그 무엇을 연기한 것 같다.

그는 오래전부터 극단 백수광부(대표 이성열)의 단원이다. ‘그린 벤치’와 ‘과부들’, 이달 말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한창 연습중인 ‘벚꽃동산’도 백수광부의 작품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해 6월 S&A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주변머리가 없으니, 시스템에 기대는 것이다. 나이와 경험과 관계없이 세상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제 시작이다. 기회가 있으면 영화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싶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는 연극판에서는 알아주는 배우인데도 영화 쪽으로 가면 ‘단역’만이 기다리고 있다. 기분이 안 나쁘냐고 물어봤다.

“연극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여야 한다. 영화에서도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내가 연극에서 그랬던 것처럼…. 같은 연기지만 필요로 하는 능력이 연극과 영화는 다르다. 영화에서는 나도 신인일 뿐이다. 얄짤 없다. 다만 경험이 있으니 성장 속도와 적응력은 빠를 것으로 기대한다.”

영화판은 그렇다 치고 연극에서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시간 맞고, 대본 좋고, 현재의 나와 만날 수 있고, 같이 하는 사람이 좋으면 한다. 지쳤으면 숨도 돌리고. 작품에 대해 경계를 해본 적이 없다. 가리는 배우도 있지만 나는 참 없다. 언제까지 배우 할 것인지도 정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내 몫을 할 때까지는 할 것이다.”

이때 그의 마음이 시소처럼 살짝 아래로 내려간다.

“배우란 직업은 내 의지, 내 열망만으로는 안 된다. 누구의 선택에 의해서만 기능한다. 영원한 을(乙)이다. 밥벌이는 고단하다. 체력도 필요하다. 인생 전체를 바치고 영혼까지 바쳐가며 밥벌이는 한다는 것은 ‘잔인’하다.”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 말했다. 가끔은 갑(甲)으로 살아보라고. 그게 안 되면 갑과 을을 합친 ‘갈’처럼은 살아보라고. 그러자 그는 “가끔 그럴 때도 있다. 앞뒤전후 따지지 않고, ‘해치워버리겠다’고 할 때도 있으니…”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차마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긴 적이 있느냐”고는 물어보지 못했다.

배우에 만족하는가.

“남들은 나보고 천상배우라고 하는데 아니다. 가끔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생활에 다중적, 모순적인 지점이 있다.”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어렸을 적 꿈을 이뤘다. 갈망했던 일을 이뤘다. 지금의 열패감 또한 열망이 남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앞의 말은 ‘부정적’이고 뒤의 말은 ‘긍정적’이다. 이 두 말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간단하다. 늘 좋은 연기만 하고, 좋은 평가만 받을 수 있다면 고민은 없다.

그에게는 지금 어떤 고민이 있을까.

그는 감정 소모가 많은 소위 ‘쎈’ 역이 특기인데, 요즘은 가끔 코미디에도 출연한다.

“코미디에 나가려고 의도한 적은 없다. 코미디는 잘 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인기를 얻거나 흥행이 좋아 이름을 알린 것은 주로 코미디였다. 대중은 소통, 가벼움, 단순함을 원하는 것 같다. 물론 천박한 것과는 다르다. (천박하지 않으면서 관객을 만족시키는) 그게 고급의 경지가 아니겠나.”

외부의 평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생각을 잘 안하고 살다보니 답이 안 나온다. 매일매일 살기에 바쁘다. 고여 있지 않는 배우, 어두워지지 않는 배우, 연기에만 머물지 않고 내 현장, 내 현실, 내 사회, 내 세상, 내 사람에게도 깨어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외부의 평가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재단되는 걸 싫어한다. 연달아 출연한 작품들이 비슷한 것 같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걸 버리려 한다. 못하는 것을 개발하고, 서툴고 낯선 것에 도전한다. 배우는 그런 직업이다. ‘쪼가 붙었다’는 말을 들으면 경계심이 생긴다.”

‘쪼’라는 직업어를 처음 들었다. 아마도 ‘신파조’ ‘경멸조’처럼 습관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조(調)’라는 글자를 세게 발음한 것이리라. ‘쪼’에 빠지면 ‘망쪼’가 들게 틀림없다.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연장하려고 ‘쪼’를 피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배우의 본능이라고 했다.

이쯤에서 그가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정리된 그의 의견에 근접해 있어서다.

“늘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한 가지 잊지 않으려고 하는 건 있어요. 우리는 무한대의 일상 속에 있는 거고, 무대는 제한된 공간으로 들고 들어오는 거잖아요. 거기에는 최소한 정제된 그 무엇이 재조립돼 이루어져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 아닌 그 무엇, 많은 훈련의 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해요. 언젠가 박지일 선배가 하셨던 말씀을 많이 생각해요. ‘문학적 언어를 일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는….”(월간 ‘한국연극’, 2008년 11월호)

그가 하려는 말은 간단하다. 배우가 생활인의 연장이어서는 안 되며, 무대도 일상의 연장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뭔가 배우답고, 뭔가 무대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느 책에서 봤다는 ‘천재보다 어려운 게 거장’이라는 말과 통한다.

그럼 본인은 본인을 어떻게 평가하나.

“배우는 언제나 세상에 자신을 내놓고 평가를 받는다. 근사한 지평에 내놓고 나를 보면 부족한 게 너무 많다. 서투르고, 골치 아픈 일 많이 만들고, 좌충우돌하고. 그렇지만 내 안에서 나를 평가하자면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나 스스로는 부끄러울 게 없다.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면 언제라도 배우를 그만 둘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어떤 때는 부족하다고 느끼다가도, 어떤 때는 대견하기도 하고.

문득 1996년 7월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내내 2위를 하다 스타디움 트랙에서 3위에 따라잡혀 6초 차이로 동메달을 딴 일본 선수가 떠오른다. 그는 자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메달 색깔은 동인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내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선수의 이름은 아리모리 유코(당시 29세). 그는 그보다 4년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고 ‘허탈증후군’에 빠졌다.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3년간 허송세월을 하다 그는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딴 메달이 바로 동메달. 겸양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은 일본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의 말은 일본 국민의 가슴을 훔쳤다. 그는 TV여론조사에서 ‘1년 동안 가장 열심히 산 사람’으로 선정됐고, 그의 말은 ‘일본 신조어·유행어 대상’을 받았다. 배우 이지하의 심정과 많이 닮아있다.

그는 가끔 찾아오는 불안감의 원인을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의 그 무엇을 흡수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니, 흡수라기보다는 압박을 받는다는 말이 정확할 듯하다. 그래서 그는 “무대에서 내려온 일상에서는 정서적, 현실적으로 안정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연극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한 답변과도 통한다. 그는 말했다. “상투적인 답변이지만 인생자체다. 요즘은 그래서 오히려 연극과 거리를 두려 한다. 인생도 답이 없다. 연기도 답이 없다. 피면 떨어지는 꽃이요, 불면 꺼지는 촛불이다.”

연극과 거리를 둔다는 뜻은 무엇인가. 너무 사랑하기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연극을 잠시 잊고 일상 속에 침잠하려는 노력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피면 떨어지는 꽃이요, 불면 꺼지는 촛불’은 왠지 애잔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심정에 동의한다. 꽃이 떨어지고, 촛불이 꺼지면 아쉬워하는 것은 누구인가. 꽃도 촛불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다. 나는 배우 이지하가 주변을 의식하되, 주변에 좌우되지 않는 배우가 되길 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2014년 7월에 공연한 코미디 ‘미스 프랑스’에서 이지하는 얼굴이 닮은 1인 3역을 맡았다. 그는 보통 감정 소모가 많은 ‘쎈’ 역을 자주 하지만 코미디도 마다하지 않는다. 코미디는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인기와 흥행으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려준 작품에는 코미디가 많다. 막이 오르고 ‘미스 프랑스’인 플레르가 사무실로 들어와 기자와 통화하는 장면이다. 수현재 컴퍼니 제공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재능 있는 후배들을 점점 더 응원하고 싶어진다. 후배들이 성공할 때,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후배들이 ‘부정적인 단어’를 들을 것 같아 인터뷰를 걱정했던 그가 결국은 후배들과 함께 가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인터뷰를 마치니까 개운하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마지막 말이다.

나는 배우 이지하를 인터뷰하며,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달라져야 하고, 나아져야 하고, 위로 올라가야만 안심하는 스타일이라고 느꼈다. 마치 아날로그 시계처럼. 명품 시계는 태엽을 감는 기계식이 많다. 겉은 조용하지만, 뜯어보면 수많은 톱니들이 쉼 없이 움직인다. 그것이 시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심규선 기자
그는 앞으로도 계속 고민할 것 같다. 다만, 나는 배우 이지하가 무대에서 서서 고민하길 바랄 뿐, 객석에서 앉아 평안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

(그가 출연했던 주요 연극작품은 다음과 같다. ‘바보각시’ ‘종로고양이’ ‘그린 벤치’ ‘오레스테스 시련’ ‘억울한 여자’ ‘민들레 바람되어’ ‘왕국식당의 최후’ ‘침향’ ‘락희맨 쇼’ ‘바냐아저씨’ ‘휘가로의 결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연애희곡’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버자이너 모놀로그’ ‘과부들’ ‘숲 속의 잠자는 옥희’ ‘그 집 여자’ ‘이제는 애처가’ ‘미스 프랑스’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 ‘그 봄, 한낮의 우울’ ‘잘 자요 엄마’ ‘벚꽃 동산’ ‘인어:바다를 부른 여인’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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