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세상만車]자동차는 여전히 ‘미완의 기계’

석동빈 기자

입력 2017-03-02 03:00 수정 2017-03-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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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열린 미국 슈퍼볼 중계방송을 통해 소개된 기아자동차 광고의 한 장면. 기아차는 이 광고를 통해 ‘니로’의 친환경성을 강조했다. 기아자동차 제공
석동빈 기자
자동차 광고는 모든 광고 중 가장 화려합니다. 멋진 영상과 유명 탤런트에다 기발한 스토리를 담아서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가 빠르고, 안전하고, 편리하고, 연료소비효율이 높다고 강조합니다. 전자제품 식품 의복 등 다른 제품들은 광고에서 한정적인 기능 위주의 소비자 가치를 보여주는 반면 상당수 자동차 광고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고도 예방해주며 쾌적한 삶을 통해 결국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환상의 종합선물세트를 제공합니다.

매년 초에 미국에서 열리는 슈퍼볼에서는 이런 내용으로 만든 자동차 광고들이 전쟁을 벌입니다. 지난달 5일 열린 51회 슈퍼볼 TV 중계 때도 자동차 회사들은 1초에 2억 원이나 하는 광고비를 마다하지 않고 친환경, 가족, 여유, 안전 등 다양한 가치를 내보이며 소비자들을 유혹했습니다. 올해 슈퍼볼 광고 중에선 기아자동차의 ‘영웅의 여정’편이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학습 과정을 통해 자동차를 전원 버튼만 누를 줄 알면 누구나 10년 넘게 사고나 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는 TV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특히 부분 자율주행이 가능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볼보 ‘XC90’, 제네시스 ‘EQ900’ 등이 최근 등장하면서 자동차는 더욱 완벽한 전자제품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자동차는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한 공산품일까요. 화재와 시동 꺼짐 등 원인을 알기 힘든 고장과 사고가 매일 수백 건이 일어나고, 결함과 관리 부실로 인한 피해는 헤아리기 힘들죠.

자동차는 1000여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TV와는 달리 2만 개가 넘는 전자 기계 석유화학 부품들의 조합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아무리 완벽하게 설계를 하더라도 개별 부품의 보이지 않는 결함이나 오차 때문에 생산되는 자동차 중 단 1대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품질관리의 허용 범위 이내에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일 뿐입니다.

고장률을 크게 줄인 일본 자동차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1970년대 이전에 자동차는 본래 불완전하고 구입 후 지속적으로 보완을 하면서 운행해야 하는 ‘미완의 기계’로 봤습니다.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라지(garage) 문화’가 바로 그것이죠. 아버지가 주말이면 창고에서 뚝딱거리며 자동차를 수리하는 것을 아들이 바라보는 그런 전형적인 장면 말입니다. 과거에는 부품의 설계나 기계적인 결함과 내구성이 지금보다 훨씬 떨어졌기 때문에 쉽게 고장 나고 그것을 사용자가 수리해가며 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페라리의 부품 결함 덕분에 람보르기니가 스포츠카 회사를 만든 이야기는 유명하죠.

사실 현재의 자동차들도 신뢰성이 조금 올라가고, 각종 첨단 전자장비가 추가됐을 뿐 기본적으로는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축, 심한 진동과 마찰, 강렬한 자외선, 급격한 온도차이 등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것은 똑같습니다. 이로 인해 마모, 기계적인 피로도 누적, 부품 간 유격, 석유화학제품의 노화와 경화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동차는 숙명적으로 주기적인 점검과 유지 보수는 물론이고 운행하는 데 상당한 주의와 기술이 필요하지만, 자동차 회사들은 현란한 마케팅으로 면허증만 있으면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수준의 수고만 기울이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자동차 회사는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동차는 불완전하며 예기치 못한 고장과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기자는 10년째 레이싱 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레이싱카는 일반 자동차보다 훨씬 자주 점검하고 상당수 부품을 경기마다 교체합니다. 제가 타는 ‘제네시스 쿠페’는 겨우 200km 정도 달린 뒤 엔진과 변속기를 완전 분해해서 조금이라도 마모된 부품을 교체하고 미세 조정을 합니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를 해도 극한으로 주행하면 생각하지 못한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앞바퀴 안에 있는 허브베어링이 약해서 브레이크 디스크가 떨리면서 제동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접지력이 높은 경기용 타이어 때문에 구동 계통과 서스펜션 부품들이 쉽게 파손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레이서는 운전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차의 이상을 미리 감지해 기술팀에 피드백을 하는 보조 정비사 능력도 겸비해야 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30년 전보다 분명히 안전하고 신뢰성 높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움직이는 기계가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운전자가 레이서 수준의 지식과 운전 실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동차를 살 때 넣어주는 설명서를 2번 정도는 숙독해야 운전할 자격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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