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우리가 몰랐던 한식]행위예술 같은 비빔밥
황광해 음식평론가
입력 2017-01-11 03:00 수정 2017-01-11 03:00
황광해 음식평론가
2009년 12월, 느닷없는 ‘비빔밥, 양두구육’ 논쟁이 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비빔밥 광고가 실렸는데, 곧이어 일본 언론인 구로다 가쓰히로가 “한국 비빔밥은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음식”이라고 말한 것이다. 구로다는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30년이 넘었다. 그는 일본의 우익이자 지한파다. 1980년대 중반 이미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베스트셀러도 출간했다. 한국을 웬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한파 구로다’도 한국문화, 음식, 비빔밥은 정확히 몰랐다. 그는 비빔밥을 두고 여러 가지 나물들로 예쁜 모양새(양의 머리)를 만든 다음, 먹기 전 마구 뒤섞어, 엉망진창(개고기)으로 만든다고 했다. 왜 먹기 전 예쁜 모양새를 다 허물어뜨리고 비비는지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비빔밥을 정확하게 설명했다.
“비빔밥 정신이 바로 멀티미디어입니다. 한국인은 복잡한 상황을 적당히 말아서 잘 지탱하는 법을 알아요. 그 복잡한 상황이 비빔밥이지요. 비빔밥은 참여예술입니다. 다른 요리와 다르게 손수 섞어 먹는 것이 특색이니까요.”
백남준은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세계에서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빔밥은 밥과 여러 채소, 각종 장이 섞여 있다. 멀티미디어 음식이다. 비빔밥은 부엌에서 완성돼 나오는 음식이 아니다. 비빔밥은 먹는 이가 완성하는 음식이다. 여러 재료를 내놓으면 먹는 이가 직접 섞어서 먹는다. 먹는 이가 참여해서 완성하는 음식이다. 비빔밥이 개방, 공유, 참여의 웹 2.0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구로다는 ‘닫힌 가마메시(솥밥)의 눈’으로 ‘열린 비빔밥’을 봤다. 그가 악의적으로 비빔밥을 폄하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의 ‘비빔밥 양두구육’ 이야기는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빔밥의 밥알이 깨진다고 젓가락으로 휘적거리는 이들도 있다. 잘못이다.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쓱쓱 비벼야 제맛이 난다. 그릇 안에서 밥 알갱이, 나물, 각종 장이 뒤섞여야 한다. 여러 식재료가 마찰, 충돌하고 마침내는 융합하여 복잡한 맛을 낼 때 제대로 된 비빔밥이 된다. 섞임, 충돌, 융합이 비빔밥의 핵심이다.
백남준은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라는 수필도 남겼다. “하나의 그릇 안에서 동양과 서양이 충돌하고 융합하는 것이 백남준의 예술”이라고 했다. 이른바 비빔밥 예술이다.
비빔밥의 기원을 두고 궁중에서 시작됐다, 병영에서 시작됐다, 기방(妓房)에서 시작됐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의미 없는 말이다. 비빔밥을 언제, 누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오래전부터 있었고 우리 핏속에 DNA로 남았다. 비빔밥 비비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잘 비빈다. 우리는 자연스럽지만 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음식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일본은 가방형 문화, 한국은 보자기형 문화”라고 했다. 가방은 정해진 공간에 정해진 물건을 넣어야 한다. 보자기는 웬만한 물건은 다 받아들인다. 보자기는 어떤 모양의 물건이든 담을 수 있다. 보자기는 싸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 모양의 꾸러미를 가진다. 비빔밥도 그러하다. 열 명이 비비면 열 종류의 비빔밥이 나온다.
최근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와 인터뷰를 했다. 그가 비빔밥에 대해 “비빔밥에 관한 한 남과 북은 비슷하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비빔밥”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평양 채소비빔밥이 명품이라고 했다. 태 전 공사가 평양에서 먹었던 비빔밥이 이규경의 평양 채소비빔밥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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