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정의를 세우기 위해 法보다 義를 되찾아야

동아일보

입력 2016-11-10 03:00 수정 2016-11-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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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덕목이 있다면 바로 ‘정의(正義)’일 것이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돈도 능력이다”라는 말이 정말로 진리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엄격하고 공정한 법의 적용일 것이다. 그러나 법적 조치만으로 정의를 세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법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 마치 담장이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범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건너편에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안내판 역할도 하는 것처럼, 법 또한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가이드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의 정의 구현은 어렵다.

 여기서 유학자들이 강조해 마지않던 의(義)가 떠오른다. 의는 법이나 규율로 규정되고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즉 규범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기준으로 옳은 일은 하고 그릇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의다. 옳은 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다. 그래서 맹자는 의를 “사람의 편안한 길”이라고 했다. 의로움을 실천해 호연지기를 기르는 사람은 언제나 당당하다. 어디에 켕길 일도, 조마조마할 일도, 괴로울 일도 없다. 마음은 넓어지고 몸은 편안할 것이다. 의는 사람을 당당하게 해주는 마법이다.

 반대로 불의는 사회를 망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망가뜨린다.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과 부를 얻거나 지키려면 그것을 위해 또 다른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는 어딘가 켕기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면서 왜 그런지도 모를 것이다. 원인도 모를 이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이 가지고 누리려는 욕심을 부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불의한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불쌍한’ 사람에 더 가깝다.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 muhay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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