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패치… ××패치… 폭로의 시대를 폭로하다

김배중기자 , 정양환기자

입력 2016-07-20 03:00 수정 2016-11-2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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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악용하는 무차별 신상털이

《 (전편에서 계속) “누, 누구냐!” 책상 아래서 에이전트7(임희윤 기자)과 마주친 건 광선총을 지닌 바야바…. 아니 찬찬히 보니 그냥 털 많은 인간이었다. 총이 아닌 대포 카메라를 든. 끙 신음을 내며 일어서더니 쩝 입술을 핥았다. “젠장, 너희 요원 신상을 털려고 이틀이나 잠복했건만. 역시 만만치 않군.” “뭣? 그렇다면 디스패….” “아니, 아닌데! 우린 외계인만 뒤지는 ‘뒤져 패치’다.” “저게 뒈지려고. 하나 시간이 없다, 세븐.” 두둥. 어느새 나타난 에이전트2(정양환)와 41(김배중). “최근 창궐한 ‘패치 수족구병’을 조사해야 한다”며 지하철 막차를 놓칠세라 종종걸음. 굳이 왜. 쟤를 심문하면 될 텐데, 바보들. 에이전트7은 울분의 눈물을 삼켰다. 》
 
○ 무차별 신상털이 ‘패치: 폭로의 시대’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영향인가. 2016년 여름 한반도는 ‘패치: 폭로의 시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온갖 △△패치, ××패치들로 뒤덮였다. 출발은 지난달 말 인스타그램 계정 ‘강남패치’. SNS에서 있는 척하는 여성들이 실은 유흥업소 종사자라며 신상털이에 나섰다. 격렬한 논란에도 며칠 만에 팔로어가 1만 명을 넘어섰다.

부리나케 강남패치를 쫓던 요원들은 이후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속칭 ‘노는’ 남성을 고발한다는 ‘한남패치’와 지하철 추태남을 고발한다는 ‘오메가패치’, 심지어 강남패치 운영자 신상을 털겠다는 ‘안티 강남패치’까지 우후죽순 돋아났다.

문제는 하나같이 ‘정의구현’을 외치지만 사회 정의를 거스르는 건 정작 본인들이란 점이다. 신상털이는 사실이라도 사생활 침해, 거짓이면 사기다. 한 변호사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엄중한 명예훼손”이라고 선을 그었다. 게다가 첨엔 몇몇 인물 사진 정도 내걸고 험담하던 수준이더니 점차 실명에 직장까지 깠다. 방송사 아나운서에 유명 연예인도 대상이 됐다. 일부는 대놓고 “신상 공개 막으려면 돈을 내라”고 협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최근 몇몇 계정은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근데 진압(?)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SNS가 대부분 물 건너온 회사다 보니 해외 수사기관과 협조공문이 오가는 데만 얼마가 걸릴지 모른다. 강남패치 운영자는 이런 맹점을 파악한 듯 여러 차례 계정을 바꾸며 활개 친다. “훼손될 명예가 있으면 날 고소해 봐. 내 판에선 내 룰뿐”이란 글을 남긴 채.


○ 뻔한 자정 노력 말곤 답 없는 현실


그래? 경찰마저 어렵다면 에이전트도 이만 철수…하려던 찰나. ‘딩동’ 기다리던 메신저 답신이 도착했다.

응답은 바로 ‘안티 강남패치’의 운영자. 여러 계정에 구애를 펼쳤으나 무응답 퇴짜 며칠 만에. 한 패치는 “○○신문이 자꾸 인터뷰하자는데 확 신상을 털어버릴까”라고도 했다. 아, 이건 우리 요원들이 아니다. 딴 데다.

어쨌든 ‘안티…’와의 짤막한 대화.

―왜 패치를 운영하는가.

“지인이 피해를 입은 게 계기였다. 패치에게 무슨 명예나 권리가 있나. 지들도 당해 봐야 한다.”

―신상 털면 똑같은 위법이잖나.

“합법 아닌 거 안다. 하나 방어 차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경찰 수사한다고 피해자 억울함이 풀리나. 익명 폭로는 사람을 죽이는 거와 똑같다.”

그들도 안다. 이건 테러고, 살상이다. 한데 멈추질 않는다. 죄인 줄 알면서도….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를 ‘정서적 무감각’이라 봤다.

“폭로 연예 매체의 범람에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연예인 등 공익과 상관없는 개인 사생활까지 파헤쳐 가며 수익을 얻잖아요. 사람들이 여기에 익숙해지며 죄책감이 점점 옅어진 겁니다. ‘이런 사람은 폭로해도 돼’란 정서가 확산된 거죠. 심지어 이걸로 돈 번다는 왜곡의식까지 심어 주고 있잖습니까.”

해결책은 있다. SNS 시대에 SNS를 하지 않는 거다. 아니라면 최소한 절제의 노력이라도.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저 SNS를 유희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스스로 내 정보가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 관심을 가져라”라고 당부했다.

뾰족한 결론 없이 퇴근하는 길. 갑자기 ‘아악’ 비명을 지르는 에이전트41.

“어, 어떡하죠. 그동안 숱한 이성과 찍어 올린 사진들. 저도 이제 ‘패치’되나요?”

잠시 쳐다보던 에이전트2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포리원(41), 다들 얼굴은 본단다.”(다음 편에 계속)
 
정양환 ray@donga.com·김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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