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22>살얼음판 세상, 미끄러운 인생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입력 2016-06-07 03:00 수정 2016-11-23 17:02
프란스 하위스, ‘스케이트 타기’.
16세기 네덜란드 인쇄술은 크게 발달했습니다. 경제 호황기, 구매력을 갖춘 당대인들은 판화에 주목했지요. 특히 윤리적 교훈이 담긴 상징성 강한 판화를 좋아했습니다.프란스 하위스(1522∼1562)의 ‘스케이트 타기’는 동판화입니다. 원작은 동시대 미술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이었습니다. 당시는 인기 많은 그림을 낱개의 판화로 찍거나 책으로 묶어 판매했거든요. 이 과정에서 판화 상단에 ‘미끄러운 인생’ 같은 제목이 추가되기도 했지요. 라틴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3개 언어로 제목을 새겨 넣은 걸 보니 판화를 해외까지 수출했던 모양입니다.
판화 속 무대는 안트베르펜입니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밀집해 있던 도시 외곽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면면이 다채롭습니다. 이제 막 빙판에 들어설 채비를 하기도 하고, 남의 옷자락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기도 합니다. 뒤뚱거리기도 하고, 꽈당 넘어져 속옷이 훤히 보이기도 합니다. 얼핏 보기에 유난히 춥고, 길었던 네덜란드의 겨울 풍경 같습니다. 하지만 판화가 에둘러 말하고자 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미끄러운 빙판이 인생의 위태로움을 전합니다.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얼음판 위 상황이 재난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전쟁과 화재, 범람과 붕괴처럼 실제 재앙이 미술의 독자적 주제가 된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강풍에 허리 꺾인 나무나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과 같은 자연 재해와 사고 현장으로 인생의 역경을 경고했습니다. 16세기 판화는 재난에 대해 한결같이 낙관적이었습니다. 시련은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용기 내어 극복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고난은 존경받는 사람이든 무모한 사람이든 치밀하게 계획하여 대비할 수 있다고 충고합니다.
16세기 판화가 확신했듯이 재난은 섣부른 신뢰와 부주의만 경계한다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있는 위기일까요, 저마다의 기지와 결단으로 예비할 수 있는 문제일까요. ‘인생은 빙판보다 더 팍팍하고 덧없다’는 경구가 하단에 포함된 판화를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그러고 보니 판화 속 세상에는 누군가에게 생의 마지막 장소가 된 남녀 공용 화장실도, 끼니를 미뤄두고 고쳐야 할 안전문도 없습니다. 숨을 참아가며 보강할 다리 기둥도, 늦은 밤 서둘러 귀가할 고층 아파트도 보이지 않습니다. 살얼음판 같은 세상, 미끄러운 인생의 최후까지 최선을 다했던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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