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美로 가는 제네시스 EQ900… 글로벌 명차전쟁 예고
강유현기자
입력 2016-01-09 03:00 수정 2016-01-09 03:00
그들은 어떻게 고급차가 되었는가
누구나 명품을 꿈꾼다. 그러나 모두 명품이 될 순 없다. 명품이 되기 위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대 말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급부상한 ‘밸류 포 머니(value for money·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의 대명사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글로벌 명품으로 만들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현대차는 11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고급차 시장인 미국에 제네시스 브랜드의 출사표를 낸다.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고급차 모델 이름이었지만 앞으로는 브랜드 이름이 된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모델 ‘EQ900’(수출명 ‘G90’)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직접 공개하기로 했다.
고급차 65%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왜 첫 해외 출발지로 미국을 택했을까.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4년 미국 고급 자동차 시장 규모는 200만 대로, 세계 고급차 시장 833만 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다. 중국이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이지만 중국의 고급차 시장 규모는 아직 180만 대다. 또 제네시스처럼 대중차에서 출범한 일본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요타), 인피니티(닛산), 아큐라(혼다)는 모두 미국을 기반으로 시장을 넓혔다. 그만큼 미국은 도전자에게 ‘열린 시장’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판매 중인 ‘제네시스’ 모델이 비교적 자리를 잘 잡은 시장이기도 하다. 이미 자리 잡은 모델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장(현대차 부사장)은 “중국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미국에서 먼저 성과를 내야 한다”며 미국에서의 성공 여부가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의 성공 여부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3사가 세계 고급차 시장의 65% 이상(544만 대)을 차지하고 있다. 캐딜락과 링컨 등 태생부터 고급차인 미국 브랜드와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렉서스, 인피니티, 아큐라 등 일본 3대 고급 브랜드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론칭해 2014년 세계 고급차 시장의 11.5%(96만 대)를 차지했다. 이 중 렉서스가 57만 대다. 독일차에 도전해 성공을 거둔 일본 고급차들은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키워 왔을까.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현대차도 참고할 만한 과정들이다.
렉서스를 일으킨 하나의 광고
1989년 미국 소비자를 흔든 광고가 있었다. 그해 도요타가 미국에 렉서스의 첫 차이자 가솔린 세단 ‘LS400’을 공개하며 선보인 광고다. 자동차 실험장비 위에 LS400이 서 있고, 운전자가 보닛 위에 샴페인잔 15개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올린다. 그 다음 운전자는 시동을 걸고 시속을 220km 넘게 올린다. 그러나 샴페인잔은 흔들리지 않는다.
후발 주자인 렉서스는 브랜드 정체성을 ‘정숙성’과 ‘편안함’으로 잡았다. 독일 디젤 고급차의 전형적 특징인 진동과 소음, 딱딱한 서스펜션을 겨냥해 그들과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LS400의 공기저항계수는 0.29로 체급이 비슷한 BMW ‘735i’(0.32)와 메르세데스벤츠 ‘420SEL’(0.37)보다 현저히 낮았다. LS400 개발에는 7년간 총 20억 달러가 들었다.
렉서스는 명품 마케팅을 폈다. 렉서스 매장은 도요타와 완전히 분리했다. 자동차 수리 기간에 일반 소형차를 빌려주던 미국 관행과 달리 렉서스 차를 빌려줬고 필요하면 렌터카와 호텔, 사흘간의 식비까지 부담해주는 무상 긴급 출동 서비스를 운영했다. 매장에서 무료 커피와 세차 서비스를 제공했고, 주말 아침엔 무료 뷔페를 차렸다. 미니골프장도 운영했다. 이듬해 품질 문제가 생기자 판매한 8000대를 전량 회수해 조기 리콜했다.
가격은 경쟁자보다 현저히 낮게 잡는 ‘침투전략’을 폈다. LS400의 처음 가격은 3만5000달러.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300E’보다 1만 달러 낮았다. 크기가 비슷한 ‘420SEL’보다는 2만6000달러, BMW ‘735i’보다는 1만9000달러 쌌다. LS400은 처음엔 가격을 낮게 책정한 뒤 6년 뒤 경쟁자들과 비슷한 5만1680달러까지 인상했다.
렉서스는 진출 3년 만인 1992년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를 따돌리고 고급차 시장 판매 1위를 달성했다. 데뷔 후 10년 동안 JD파워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8차례나 1위에 올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1989년 렉서스는 미국에 마케팅 비용만 20억 달러, 광고비만 5000만 달러를 투입했고 판매망 구축에 5억7000만 달러를 들였다”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7년 이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2010년 대대적인 리콜 사태 이후 렉서스는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은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한눈에 렉서스임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정숙하지만 재미없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렉서스는 2012년 나온 스포츠 세단 ‘GS’ 풀체인지(완전 변경) 모델부터 ‘스핀들 그릴(역사다리꼴의 상단부와 사다리꼴의 하단부가 결합된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했다.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제2의 변혁기’를 맞은 것이다.
인피니티, 부활의 시작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도 렉서스와 같은 해인 1989년 대형 세단 ‘Q45’로 미국에 데뷔했다. ‘기술의 닛산’답게 Q45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96km에 도달하기까지 6.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BMW 7시리즈보다도 가속이 빨랐다. 최고출력은 278마력이었다. 이 때문에 인피니티는 스포티한 성능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쌓아 갔고 BMW와 종종 비교됐다.
그러나 초창기 인피니티의 광고는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자동차 광고는 자연 속에서 차가 달리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광고에 자동차의 견고함이나 안정성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러나 인피니티는 초기 미국 광고를 자연 속에서 차가 달리는 모습의 내용으로 꾸미면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인피니티 광고로 바위와 묘목 판매량만 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인피니티는 매출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했지만 ‘소비자층이 젊고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리먼 사태로 미국의 소비가 침체되며 위기를 맞았다. 이에 인피니티는 2010년부터 디젤 엔진을 얹어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르노닛산연합은 다임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인피니티 모터 컴퍼니’로 법인을 분사한 뒤 본사를 홍콩으로 옮겼다. 닛산과 완전히 경영을 분리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권 고급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후 세단, 쿠페, 컨버터블은 ‘Q’, 크로스오버는 ‘QX’로 명명 체계를 변경했다. 인피니티의 첫 차 Q45를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Q 명명 체계를 적용한 첫 차 ‘Q50’을 공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디젤 엔진을 탑재한 스포츠 중형 세단이었다.
인피니티는 1∼11월 세계적으로 19만2000대를 팔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2017년부터는 연간 글로벌 판매대수를 50만 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큐라, 기술→고급→다시 기술로
아큐라는 일본 자동차업체 중 가장 빠른 1986년 미국에 데뷔했다. 첫해 판매량은 5만2869대, 다음 해는 10만9470대를 기록했다. 특히 2세대 레전드는 1988∼93년 6년 연속 미국 내 최다 판매 수입 럭셔리 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큐라는 대중차와 고급차 사이의 어정쩡한 포지셔닝으로 고급차 반열에 완전히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레전드는 플래그십 모델인데도 6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6기통 중형 세단인 혼다 ‘어코드’와 뚜렷하게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관된 브랜드 철학을 내세우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아큐라는 론칭 초창기 ‘정밀성으로 빚어낸 자동차(precision crafted automobiles)’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기술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내보낸 초기 광고도 레전드를 탄 남성 운전자가 동승석에 미모의 여성을 태우고 핸들을 마구 꺾으며 슬랄럼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슬로건을 ‘럭셔리에 대한 진짜 정의, 당신의 것(the true definition of luxury yours)’으로 바꾸면서 고급 브랜드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6년부터 ‘진보(advance)’라는 슬로건으로 회귀했다.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고성능의 프리미엄 모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혼다 관계자는 “2010년 마블 엔터테인먼트사와 협업해 영화 ‘아이언맨2’에 차량을 지원하는 등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가야만 하는 길
현대차에 있어서 고급차 시장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IHS는 전 세계 고급차 시장 수요가 지난해부터 연평균 4% 늘어 2019년 10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중차 시장의 연평균 증가율(3%)보다 높다. 또 2014년 BMW와 다임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8.8%였다. 반면 대중차 위주인 완성차 업체 9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9%에 그쳤다. 전 세계적인 경기 위축에 자동차 시장도 양극화되는 가운데 수익을 늘리려면 고급차를 키워야 한다. 현대차가 내년 고성능 브랜드인 ‘N’을 내놓겠다는 계획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발표하면서 당분간 판매 채널을 현대차와 별도로 구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마케팅 비용을 절약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명품 이미지를 심기는 그만큼 어렵다. 현재 미국에서 G90의 전신인 ‘에쿠스’의 가격은 6만 달러대로 제너럴모터스(GM) 캐딜락의 동급 모델(7만 달러)보다 낮다. G90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도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 차별화를 위한 기술과 마케팅 차원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 브랜드와 별개로 제품과 서비스, 쇼룸과 테크니션 교육 등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고 장기간 공들여 브랜드 가치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렉서스=정숙성’과 같은 명확한 차별화 포인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최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에 주력하는 것처럼 제네시스도 선행 기술을 적극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누구나 명품을 꿈꾼다. 그러나 모두 명품이 될 순 없다. 명품이 되기 위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2000년대 말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급부상한 ‘밸류 포 머니(value for money·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의 대명사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를 글로벌 명품으로 만들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현대차는 11일(현지 시간) 세계 최대 고급차 시장인 미국에 제네시스 브랜드의 출사표를 낸다. 제네시스는 현대차의 고급차 모델 이름이었지만 앞으로는 브랜드 이름이 된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모델 ‘EQ900’(수출명 ‘G90’)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직접 공개하기로 했다.
고급차 65%가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왜 첫 해외 출발지로 미국을 택했을까.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4년 미국 고급 자동차 시장 규모는 200만 대로, 세계 고급차 시장 833만 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4%다. 중국이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이지만 중국의 고급차 시장 규모는 아직 180만 대다. 또 제네시스처럼 대중차에서 출범한 일본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요타), 인피니티(닛산), 아큐라(혼다)는 모두 미국을 기반으로 시장을 넓혔다. 그만큼 미국은 도전자에게 ‘열린 시장’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판매 중인 ‘제네시스’ 모델이 비교적 자리를 잘 잡은 시장이기도 하다. 이미 자리 잡은 모델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전략이다. 박홍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장(현대차 부사장)은 “중국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미국에서 먼저 성과를 내야 한다”며 미국에서의 성공 여부가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의 성공 여부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프리미엄 3사가 세계 고급차 시장의 65% 이상(544만 대)을 차지하고 있다. 캐딜락과 링컨 등 태생부터 고급차인 미국 브랜드와의 경쟁도 만만치 않다.
렉서스, 인피니티, 아큐라 등 일본 3대 고급 브랜드는 1980년대 말 미국에서 론칭해 2014년 세계 고급차 시장의 11.5%(96만 대)를 차지했다. 이 중 렉서스가 57만 대다. 독일차에 도전해 성공을 거둔 일본 고급차들은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키워 왔을까. 고급차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현대차도 참고할 만한 과정들이다.
렉서스를 일으킨 하나의 광고
1989년 미국 소비자를 흔든 광고가 있었다. 그해 도요타가 미국에 렉서스의 첫 차이자 가솔린 세단 ‘LS400’을 공개하며 선보인 광고다. 자동차 실험장비 위에 LS400이 서 있고, 운전자가 보닛 위에 샴페인잔 15개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올린다. 그 다음 운전자는 시동을 걸고 시속을 220km 넘게 올린다. 그러나 샴페인잔은 흔들리지 않는다.
후발 주자인 렉서스는 브랜드 정체성을 ‘정숙성’과 ‘편안함’으로 잡았다. 독일 디젤 고급차의 전형적 특징인 진동과 소음, 딱딱한 서스펜션을 겨냥해 그들과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LS400의 공기저항계수는 0.29로 체급이 비슷한 BMW ‘735i’(0.32)와 메르세데스벤츠 ‘420SEL’(0.37)보다 현저히 낮았다. LS400 개발에는 7년간 총 20억 달러가 들었다.
렉서스는 명품 마케팅을 폈다. 렉서스 매장은 도요타와 완전히 분리했다. 자동차 수리 기간에 일반 소형차를 빌려주던 미국 관행과 달리 렉서스 차를 빌려줬고 필요하면 렌터카와 호텔, 사흘간의 식비까지 부담해주는 무상 긴급 출동 서비스를 운영했다. 매장에서 무료 커피와 세차 서비스를 제공했고, 주말 아침엔 무료 뷔페를 차렸다. 미니골프장도 운영했다. 이듬해 품질 문제가 생기자 판매한 8000대를 전량 회수해 조기 리콜했다.
가격은 경쟁자보다 현저히 낮게 잡는 ‘침투전략’을 폈다. LS400의 처음 가격은 3만5000달러. 경쟁 모델인 메르세데스벤츠 ‘300E’보다 1만 달러 낮았다. 크기가 비슷한 ‘420SEL’보다는 2만6000달러, BMW ‘735i’보다는 1만9000달러 쌌다. LS400은 처음엔 가격을 낮게 책정한 뒤 6년 뒤 경쟁자들과 비슷한 5만1680달러까지 인상했다.
렉서스는 진출 3년 만인 1992년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를 따돌리고 고급차 시장 판매 1위를 달성했다. 데뷔 후 10년 동안 JD파워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8차례나 1위에 올랐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1989년 렉서스는 미국에 마케팅 비용만 20억 달러, 광고비만 5000만 달러를 투입했고 판매망 구축에 5억7000만 달러를 들였다”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데 7년 이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2010년 대대적인 리콜 사태 이후 렉서스는 브랜드 이미지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은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한눈에 렉서스임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정숙하지만 재미없다’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렉서스는 2012년 나온 스포츠 세단 ‘GS’ 풀체인지(완전 변경) 모델부터 ‘스핀들 그릴(역사다리꼴의 상단부와 사다리꼴의 하단부가 결합된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했다. 젊고 스포티한 이미지로 ‘제2의 변혁기’를 맞은 것이다.
인피니티, 부활의 시작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도 렉서스와 같은 해인 1989년 대형 세단 ‘Q45’로 미국에 데뷔했다. ‘기술의 닛산’답게 Q45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96km에 도달하기까지 6.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BMW 7시리즈보다도 가속이 빨랐다. 최고출력은 278마력이었다. 이 때문에 인피니티는 스포티한 성능을 중심으로 이미지를 쌓아 갔고 BMW와 종종 비교됐다.
그러나 초창기 인피니티의 광고는 크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대부분 자동차 광고는 자연 속에서 차가 달리는 모습을 주로 보여줬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광고에 자동차의 견고함이나 안정성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러나 인피니티는 초기 미국 광고를 자연 속에서 차가 달리는 모습의 내용으로 꾸미면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인피니티 광고로 바위와 묘목 판매량만 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인피니티는 매출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했지만 ‘소비자층이 젊고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8년 리먼 사태로 미국의 소비가 침체되며 위기를 맞았다. 이에 인피니티는 2010년부터 디젤 엔진을 얹어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르노닛산연합은 다임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인피니티 모터 컴퍼니’로 법인을 분사한 뒤 본사를 홍콩으로 옮겼다. 닛산과 완전히 경영을 분리하는 것과 동시에 중국권 고급 자동차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후 세단, 쿠페, 컨버터블은 ‘Q’, 크로스오버는 ‘QX’로 명명 체계를 변경했다. 인피니티의 첫 차 Q45를 계승한 것이다. 그리고 2013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Q 명명 체계를 적용한 첫 차 ‘Q50’을 공개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디젤 엔진을 탑재한 스포츠 중형 세단이었다.
인피니티는 1∼11월 세계적으로 19만2000대를 팔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2017년부터는 연간 글로벌 판매대수를 50만 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아큐라, 기술→고급→다시 기술로
아큐라는 일본 자동차업체 중 가장 빠른 1986년 미국에 데뷔했다. 첫해 판매량은 5만2869대, 다음 해는 10만9470대를 기록했다. 특히 2세대 레전드는 1988∼93년 6년 연속 미국 내 최다 판매 수입 럭셔리 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큐라는 대중차와 고급차 사이의 어정쩡한 포지셔닝으로 고급차 반열에 완전히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레전드는 플래그십 모델인데도 6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6기통 중형 세단인 혼다 ‘어코드’와 뚜렷하게 차별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관된 브랜드 철학을 내세우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아큐라는 론칭 초창기 ‘정밀성으로 빚어낸 자동차(precision crafted automobiles)’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기술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내보낸 초기 광고도 레전드를 탄 남성 운전자가 동승석에 미모의 여성을 태우고 핸들을 마구 꺾으며 슬랄럼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해 슬로건을 ‘럭셔리에 대한 진짜 정의, 당신의 것(the true definition of luxury yours)’으로 바꾸면서 고급 브랜드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2006년부터 ‘진보(advance)’라는 슬로건으로 회귀했다. 최첨단 기술을 탑재한 고성능의 프리미엄 모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혼다 관계자는 “2010년 마블 엔터테인먼트사와 협업해 영화 ‘아이언맨2’에 차량을 지원하는 등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가야만 하는 길
현대차에 있어서 고급차 시장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IHS는 전 세계 고급차 시장 수요가 지난해부터 연평균 4% 늘어 2019년 10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중차 시장의 연평균 증가율(3%)보다 높다. 또 2014년 BMW와 다임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8.8%였다. 반면 대중차 위주인 완성차 업체 9곳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9%에 그쳤다. 전 세계적인 경기 위축에 자동차 시장도 양극화되는 가운데 수익을 늘리려면 고급차를 키워야 한다. 현대차가 내년 고성능 브랜드인 ‘N’을 내놓겠다는 계획도 같은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발표하면서 당분간 판매 채널을 현대차와 별도로 구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마케팅 비용을 절약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명품 이미지를 심기는 그만큼 어렵다. 현재 미국에서 G90의 전신인 ‘에쿠스’의 가격은 6만 달러대로 제너럴모터스(GM) 캐딜락의 동급 모델(7만 달러)보다 낮다. G90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지도 변수다.
이런 상황에서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 차별화를 위한 기술과 마케팅 차원의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 브랜드와 별개로 제품과 서비스, 쇼룸과 테크니션 교육 등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접근하고 장기간 공들여 브랜드 가치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렉서스=정숙성’과 같은 명확한 차별화 포인트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최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이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에 주력하는 것처럼 제네시스도 선행 기술을 적극 개발해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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