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매출 20조’式 비전은 이제 그만

정지영기자

입력 2015-04-20 03:00:00 수정 2015-04-20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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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끌어내는 비전 제시 어떻게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 미국인들은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와 연이은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에 충격을 받고 적대국과의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생각으로 전전긍긍했다. 이때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낼 것”이라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달래고 ‘미국이 더 번영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러한 명확한 비전에 대해 많은 미국 국민은 기꺼이 지지를 보냈다. 실제로 1969년 미국은 아폴로 11호를 달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미국은 냉전시대에 소련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라는 자존심을 회복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있다.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는 빈곤이 지배하던 시대에 국민에게 꿈을 제시했고 모두가 힘을 모아 노력하자는 절절한 설득을 담았다. 우리는 결국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비전은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과 조직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문구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74호 기고문을 통해 비전의 위대함과 좋은 비전의 요건을 설명했다.

○ 적은 월급에도 밤샘근무 자처

1975년 창립한 마이크로소프트(MS)는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뉴멕시코에 자리한 종업원 30명의 작은 회사였다. 빌 게이츠는 이 작은 회사에 스탠퍼드대, 카네기멜런대 등 유명 대학을 졸업한 인재만을 채용했다. 적은 월급과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밤을 새워 가며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무엇이 똑똑한 인재들로 하여금 조그만 회사에 들어오게 하고, 그들이 이곳에서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시간을 모두 쏟아 붓도록 했을까.

답은 게이츠가 제시한 비전이다. ‘집집마다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를(A computer on every desk and in every home)’이라는 비전에 공감한 인재들이 무명의 회사에 자발적으로 합류한 것이다. 게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비전의 힘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창립 초기 폴 앨런과 내가 가졌던 생각(비전)에서 이토록 중요하고 위대한 회사가 탄생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산업의 지형을 혁신하고 자동차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포드자동차의 힘도 비전에서 나왔다. 창업자인 헨리 포드가 가졌던 비전은 ‘모든 차고에 자동차 한 대씩(A car in every garage)’이었다. 높은 생산원가와 가격으로 대중에게 ‘그림의 떡’이었던 자동차를 보통 사람을 위한 것으로 만들자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가능한 한 낮은 가격으로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자’는 포드의 신념은 유명한 ‘모델 T(T car)’를 낳았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원가 절감과 가격 인하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1900년대 초 1000달러를 훨씬 웃돌던 자동차 가격이 1920년대 중반에는 30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서 미국의 자동차 대중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포드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가격 인하와 함께 소득 및 여가 시간의 증대도 필요했다.

포드는 1913년 작업자들의 최저 임금을 한꺼번에 두 배나 인상한 하루 5달러로 책정했다. 당시 자동차 회사들이 밀집한 미시간 주에 있는 기업의 하루 임금이 최고 2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이었다. 더 나아가 1일 8시간 근로 정책을 실행했다. 구성원들에게 더 나은 임금과 여가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정책이었다. 자신의 비전을 스스로 실천하고 주위에 전달한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그의 저서 ‘세상을 위한 자동차(Wheels for the world)’에서 “포드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그가 실패나 파산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 했다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 구성원 하나로 묶고 헌신 불러일으켜

비전은 구체적인 목표나 전략적 방향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며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헌신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그렇다면 좋은 비전은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첫째, 간결하면서도 명확해야 한다. 비전이 그리는 미래상이 구성원 모두에게 동일한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동시에 한번 들으면 쉽게 이해되고 조직원과 이를 가지고 쉽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독특해야 한다. 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 조직만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제공하자’는 이케아의 비전은 회사의 정체성이자 이케아를 다른 가구업체와 구별 짓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비전이 있으므로 이케아는 소수의 부자를 위한 고가의 가구는 만들지 않는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항상 실용성과 저렴한 재료를 사용해 만들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비전이야말로 이케아 전략의 출발점이자 이케아를 일반 가구업체와 차별화하는 원동력이다.

셋째, 모름지기 꿈이란 가슴 설레는 것이어야 한다. 비전은 가슴에 불을 확 지르는 그 무엇이 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2020년 매출 10조 원’ 등은 좋은 비전이 되기 어렵다. 넷째, 매우 당연하지만 구성원이 공유해야 한다. 끝으로, 공동체 발전에 대한 열망이나 사회적 가치를 담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게이츠와 포드가 제시했던 비전은 세상의 발전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다. 자동차가 일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던 시절, 대중이 자동차를 탈 수 있도록 하자는 포드의 비전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전문가들조차도 컴퓨터는 일반 대중에게는 쓸모없으며 전문가에게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시대에,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이츠의 비전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을 의미했다. 이케아가 교통체증을 유발하면서도 휴일마다 매장에 줄을 서는 수많은 충성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도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제공하자’라는 회사의 비전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전은 장기적 목표와는 다르며, 그럴듯한 말의 나열은 더더욱 아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 조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바탕에서 구성원의 열망을 반영해 표현하는 것이 비전이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죽느냐 사느냐’ ‘경쟁은 전쟁이다’ 등과 같은 각박한 표현이나 ‘초우량 기업’ ‘세계 최고’ ‘업계 1등’ ‘인류의 번영’ 같은 거창한 구호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비전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의 공감과 열정을 이끌어 내는 리더와 그들이 제시하는 아름다운 비전을 보고 싶다.

정리=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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