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고액 세금 소송’ 왜 번번이 패소하나
이상훈기자 , 장윤정기자
입력 2015-01-16 03:00 수정 2015-01-16 03:00
정부 ‘아니면 말고’式 과세에 기업은 대형로펌 동원 총력전
국세청이 4000억 원대에 이르는 KB국민은행과의 조세소송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으면서 세무당국의 과세 행정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 활동과 그에 따른 회계처리 등은 복잡해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과세 관청의 행정수준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소송가액이 50억 원을 넘는 고액 조세소송에서 세무당국이 절반 가까이 패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과연 세금이 온당하게 책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국세청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올해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을 통해 소송 대응 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회계를 감독하는 금융당국과 세정(稅政)을 펼치는 세무당국의 행정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납세자들의 신뢰는커녕 재정 운용에 필요한 세수(稅收)도 제대로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10년 묵은 당국-기업 논쟁
이번 소송을 둘러싼 국세청과 국민은행의 악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를 토대로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손실 대비용 충당금을 1조 원 넘게 과다 적립하는 방식으로 회계기준을 위반했다”고 발표한 뒤 국세청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충당금을 합병 후 반영한 것은 납세자의 정당한 선택”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이었던 윤종규 현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증선위로부터 3개월 감봉의 중징계 조치를 받은 뒤 자진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정치적 이유로 금융당국에 미운 털이 박히면서 논란이 커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번 국세청 패소의 근본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국세청은 이 결과를 토대로 2007년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해 법인세 4420억 원을 부과했다. 국민은행은 반발해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에 이어 최종심까지 모두 승소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천억 원의 현금이 부당한 징세행정에 묶여 금전적 손실을 봤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2000억 원이 넘는 고액 세금에 환급가산금 수백억 원을 더해 돌려받긴 하지만, 활용 가능한 현금이 세무당국에 수년간 묶여 있었다는 것은 회사에 큰 손해”라고 말했다.
○ 대형 로펌으로 무장한 기업에 속수무책
일각에서는 유명 변호사와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 무장한 대형 법인에 세무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소송가액 50억 원 이상 고액 조세소송의 패소율은 45.6%(2013년 기준)로 국세청 소송 평균 패소율(13.5%)보다 훨씬 높다. 이번 소송에서 국민은행은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역임한 거물급 변호사를 내세웠지만, 국세청은 정부법무공단과 중소 규모의 로펌이 대리인 역할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송가액이 높으면 쟁점이 복잡하기 때문에 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액소송 패소 논란은 지난해에도 뜨거웠다. 2014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동부하이텍이 778억 원의 법인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세금부과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잇따른 소송 패소에 따른 세수 차질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2013년에 국세청이 과세했다가 되돌려준 세금은 8100억 원이나 됐다. 그해 상반기 과세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기업은 1376곳, 금액은 8112억 원으로 2012년 1050곳(3604억 원)과 비교해 31%(환수액은 25%) 증가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장윤정 기자
국세청이 4000억 원대에 이르는 KB국민은행과의 조세소송에서 최종 패소 판결을 받으면서 세무당국의 과세 행정이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 활동과 그에 따른 회계처리 등은 복잡해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과세 관청의 행정수준은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소송가액이 50억 원을 넘는 고액 조세소송에서 세무당국이 절반 가까이 패소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과연 세금이 온당하게 책정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국세청도 이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올해 조직개편 및 인사이동을 통해 소송 대응 조직을 대폭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회계를 감독하는 금융당국과 세정(稅政)을 펼치는 세무당국의 행정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납세자들의 신뢰는커녕 재정 운용에 필요한 세수(稅收)도 제대로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10년 묵은 당국-기업 논쟁
이번 소송을 둘러싼 국세청과 국민은행의 악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의 검사 결과를 토대로 “국민은행이 국민카드를 흡수합병하는 과정에서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손실 대비용 충당금을 1조 원 넘게 과다 적립하는 방식으로 회계기준을 위반했다”고 발표한 뒤 국세청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측은 “충당금을 합병 후 반영한 것은 납세자의 정당한 선택”이라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이었던 윤종규 현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은 증선위로부터 3개월 감봉의 중징계 조치를 받은 뒤 자진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정치적 이유로 금융당국에 미운 털이 박히면서 논란이 커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번 국세청 패소의 근본 책임이 금융당국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국세청은 이 결과를 토대로 2007년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해 법인세 4420억 원을 부과했다. 국민은행은 반발해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 2심에 이어 최종심까지 모두 승소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천억 원의 현금이 부당한 징세행정에 묶여 금전적 손실을 봤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2000억 원이 넘는 고액 세금에 환급가산금 수백억 원을 더해 돌려받긴 하지만, 활용 가능한 현금이 세무당국에 수년간 묶여 있었다는 것은 회사에 큰 손해”라고 말했다.
○ 대형 로펌으로 무장한 기업에 속수무책
일각에서는 유명 변호사와 대형 법무법인(로펌)으로 무장한 대형 법인에 세무당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세청에 따르면 소송가액 50억 원 이상 고액 조세소송의 패소율은 45.6%(2013년 기준)로 국세청 소송 평균 패소율(13.5%)보다 훨씬 높다. 이번 소송에서 국민은행은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역임한 거물급 변호사를 내세웠지만, 국세청은 정부법무공단과 중소 규모의 로펌이 대리인 역할을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송가액이 높으면 쟁점이 복잡하기 때문에 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액소송 패소 논란은 지난해에도 뜨거웠다. 2014년 7월 서울행정법원은 동부하이텍이 778억 원의 법인세 부과가 부당하다며 국세청을 상대로 낸 세금부과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잇따른 소송 패소에 따른 세수 차질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2013년에 국세청이 과세했다가 되돌려준 세금은 8100억 원이나 됐다. 그해 상반기 과세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기업은 1376곳, 금액은 8112억 원으로 2012년 1050곳(3604억 원)과 비교해 31%(환수액은 25%) 증가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장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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