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취업문 돌파기] 격투기 선수서 ‘맥주 판매 선수’로

충칭=윤양섭 전문기자

입력 2014-10-01 15:04:00 수정 2014-10-01 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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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환 사원. 사진=윤양섭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격투기 선수에서 참이슬 영업맨으로

하이트진로 특판남부지점 영업3파트의 새내기 이수환 사원(31)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K-1 격투기 선수 출신이다. K-1격투기는 서서 글러브를 끼고 발과 무릎을 사용해서 하는 경기. 미들급 국내 챔피언까지 지냈다.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영등포 일대 음식점을 다니다 보면 "안면이 있는데…"라며 물어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금도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치면 격투기 사진과 동영상이 나온다. 격투기 선수 출신이면서도 얼굴에 큰 상처가 없어 차도남 이미지를 풍긴다.


그가 격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 1때. 격투기가 좋아 보여 체육관을 찾았다. 운동을 계속하며 연세대 체육교육학과로 진학했다. 3학년 때 공익근무를 하면서 휴학을 하고는 열심히 격투기에 매달렸다. 그의 꿈은 교수였다. 선수출신의 교수, 씨름판의 황제 이만기 교수가 그의 롤모델이었다.

그는 남자의 힘과 싸움 본능을 일깨우는 격투기가 좋았다. 2005년 마침내 K-1 격투기 선수로 공식 데뷔했다. 2009년 대학 졸업 뒤 진로 문제로 고민을 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세계챔피언 벨트를 차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K-1 미들급 국내챔피언에도 올랐다.

그러나 세계챔피언의 길은 쉽지 않았다. 한계를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5월 세계챔피언은 힘들 것이라고 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체육 교사가 되는 길과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 그리고 취업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체육교사로 가는 경우는 적었다. 근데 요즘은 체육교사를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는 것.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오래 전에 졸업한데다 이렇다할 스펙이 없었기 때문.

그래도 일본어는 꾸준히 해와 JLPT 2급을 따놓은 게 있었다. 영어도 기초적인 회화는 가능했다. 몇 군데 서류를 넣어보았지만 서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보안업체에도 지원했지만 인성적성검사에서 떨어졌다. 아차 싶어 그해 11월부터 토익 공부에 매진했다. 855점을 따냈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능력 자격증인 MOS(Microsoft Office Specialist)도 따두었다.

첫 번째로 하이트진로에 서류를 넣었고, 2013년 3월 서류를 통과했다. 이어 본격적인 실무자면접에 단체면접, 음주면접까지 있었다. 임원면접도 통과해 지난해 4월 8일 하이트진로에 당당히 입사했다. 동기 합격생은 모두 42명. 대학을 졸업한 지 4년 만에 합격한 그는 "K-1격투기 선수에서 진로를 수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취업에 도전해 합격한 게 너무 기쁘다. 또 다른 스텝을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취업에 성공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어학실력과 관련분야의 지식이나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면접이라고 생각한다. 면접에서는 삶의 태도나 기본 성향이 드러나게 돼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온 것도 합격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직을 위해 하기 싫은 것도 꾸역꾸역 했다면 아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은 네가 스스로 결정하라'는 부모의 교육방식 덕에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 왔다. 격투기를 배운 것도, 대학갈 생각이 없다가 대학에 가게된 것도, 또 취업준비도 자기가 좋아서 결정한 것이라 어려움이 없었다.

그는 2주간의 사내 연수를 마치고 서울 강서구 등촌로에 있는 특판남부지원 영업3파트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영업. 자동차, 제약, 보험업종과는 약간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등포 지역 업소 150곳을 관리하는 게 그의 일이다. "사장님과 이모, 점장님을 상대로 맥주를 많이 파는 게 나의 업무"라며 웃었다.

영업이 적성에 맞느냐고 물었다. "적성도 맞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성이 맞느니, 안 맞느니 하고 따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기운이 떨어진다. 그런 생각조차 않는다"는 게 그의 소신.

그는 영업직이면서도 의외로 술은 잘 못한다. 소주는 잘해야 한 병, 맥주는 좋아한다. 업무적으로도 술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예상 밖이다. 저녁이면 음식점 사장님들이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 술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 타고난 붙임성으로 그는 사장님들에게 인기다. 지난달에는 맥주 1700짝을 팔아 지점장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작년에 같은 지역에서 800짝 정도를 판매했는데 배 정도의 매출을 올린 것.

그는 남들이 오른손을 들 때 똑같이 오른손을 들기보다는 왼손 들기를 좋아해 왔다. 하지만 요즘은 자신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하고 반성하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공감하면서 조직생활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장인이지만 아등바등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재미있게 즐겁게' 일을 하며 생활하고 싶다는 새내기였다.

윤양섭 콘텐츠기획본부 전문기자 (동아일보 대학세상 www.daese.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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