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10년 관시… 공장앞 도로 ‘하이닉스길’ 이름붙여

김호경 기자

입력 2014-08-20 03:00 수정 2014-08-20 08:12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한국기업 글로벌 戰場을 가다]<2>中진출 10년 SK하이닉스

“함께 일하고 함께 마시자” 직원단합 다짐하는 현수막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 공장의 D램 생산라인 전경(위 사진). 공장 건물 로비에는 ‘一起工作 一起吃飯 一起喝酒(함께 일하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술 마시자)’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아래 사진).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은 직원 내부 단합을 위해 이 현수막을 공장 곳곳에 걸어두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11일 중국 장쑤(江蘇) 성 우시(無錫) 시에 자리 잡은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 전시관. 이곳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등 중국 고위급 인사들이 공장을 방문한 사진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이근육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 대외협력팀장은 “그동안 중국 상무위원 9명 중 5명이 공장을 직접 다녀갔다”며 “중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자 유치 기업으로 꼽히는 우시 공장은 우시를 찾은 중국 고위급 인사들의 필수 방문 코스”라고 말했다.


○ 장쑤 성을 대표하는 한국 기업

상하이(上海)에서 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져 있는 우시는 ‘작은 상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1인당 소득이 높은 도시다. 지난해 우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154달러로 중국 1인당 GDP(6569달러)의 3배 이상이다.

올해로 중국 진출 10주년을 맞이한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은 우시와 함께 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SK하이닉스가 우시 생산법인 설립 후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은 85억 달러. 장쑤 성에 진출한 외국 기업 중 투자 규모가 최대다. 2016년이면 누적 투자액이 10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은 중국 최대 반도체 생산 기업이다. 매출 기준으로 세계 D램의 약 13%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이재우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장은 “8년 전 중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공장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며 “이제는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원이 많아 주차장의 3분의 2 정도가 찬다”고 말했다.

하이닉스의 중국어 표기인 ‘海力士意法’이 새겨진 우시 공장 정문 앞 도로 표지판.
○ 10년간 다진 탄탄한 ‘관시(關係)’가 성장 비결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이 처음부터 사정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2004년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는 중국 진출을 추진할 당시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어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때 첨단 산업 유치에 적극적이던 우시 시 정부가 SK하이닉스에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우선 7억5000만 달러를 융자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공장 부지도 무상으로 임대했다. 5년간 법인세 면제도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한 우시 시 정부와의 ‘관시’는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의 꾸준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이 됐다. 지난해 9월 공장 화재 피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었던 것도 우시 시 정부가 화재 진압부터 복구에 이르기까지 전격적인 지원을 해준 덕분이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는 공장을 정상 가동시키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76일 만에 정상화시켰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화재 당일 시 서기와 시장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현장을 방문해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며 “회사에서는 이때를 가리켜 ‘76일의 기적’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우시 시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노사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됐다. 2009년 글로벌 경기 침체로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이 임금을 처음으로 동결하겠다고 밝혔을 때 우시 시 정부가 노동조합에 해당하는 ‘공회(工會)’ 소속 직원들을 설득해 마찰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법인장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에 이르는 중국에서 임금 동결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평소 회사에 우호적이었던 우시 시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공장 앞 도로 이름에 과거 SK하이닉스의 명칭(海力士意法)이 들어간 것도 시 정부의 남다른 배려가 돋보이는 사례다.

이 법인장은 “시 서기를 만나 ‘인근 군용 비행장에서 생긴 진동이 반도체 공정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농담을 건네자 ‘활주로 방향을 바꿔주겠다’고 진지하게 답했을 정도로 중국 중앙 정부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 시장에 주력

중국 반도체 시장은 2005년 이후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으로 성장했다. 10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21%에 불과하던 중국 시장이 올해에는 4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3월 한 달 동안 중국에서 생산된 반도체의 11.8%는 SK하이닉스 제품이다. 생산량 기준으로 중국 1위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장 1위를 지키기 위해 지난 10년간 우시 생산법인이 구축한 관시와 브랜드 경쟁력을 활용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화웨이, ZTE, 쿨패드,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제조업체들과 납품 계약을 맺을 때도 우시 생산법인의 탄탄한 입지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은 반도체 제조와 물류 체계를 효율화하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10년 중국 국영기업인 우시산업발전집단과 합작해 설립한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 ‘하이테크(Hitech)’가 신호탄이었다. 반도체 테스트와 패키징(포장) 등 후공정을 맡는 하이테크는 우시 생산법인 인근에 위치해 물류비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중국 충칭(重慶)에 추가로 후공정 법인을 설립했다.

SK하이닉스는 현지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우시 생산법인 직원 3700여 명 가운데 3300여 명인 중국인 직원 비중을 장기적으로 3600여 명까지 높일 계획이다. 대신 한국인 직원은 400여 명에서 100여 명으로 줄일 예정이다. 김광욱 SK하이닉스 우시 생산법인 기업문화그룹장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숙련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비해 한국인 직원 비중이 높았다”며 “점진적으로 한국인 직원을 중국 인력으로 대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K 날개 단 하이닉스 D램시장 ‘투톱’ 우뚝 ▼


2013년 1조1445억원 R&D 투자… 마이크론 제치고 세계 2위 탈환

현재 세계 반도체 D램 시장은 한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39.1%와 27.5%로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점유율이 25.2%.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2위 자리를 미국 마이크론에 내줬다가 올해 초 역전에 성공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선전에 힘입어 올 2분기 한국의 D램 시장 점유율은 66.6%로 역대 최고였다.

실속 면에서도 한국 기업은 해외 업체를 압도했다. 2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39%와 38%로 마이크론(25.5%)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부침이 많았던 SK하이닉스가 세계 D램 시장의 강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된 배경에는 SK그룹으로 편입된 뒤 진행된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2006∼2011년 SK하이닉스의 연평균 연구개발(R&D) 투자액은 6500억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2년과 지난해에는 투자액이 각각 9383억 원과 1조1445억 원으로 늘었다. 또 랜드플래시 관련 기업인 LAMD와 아이디어플래시, 소프텍 벨라루스의 펌웨어 사업부 등을 인수하면서 기술 경쟁력을 키운 것도 그룹 편입 뒤 나타난 변화다.

SK하이닉스의 달라진 위상은 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와 2분기 연속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기 영업이익 2조 원을 넘어선 것이다.

향후 전망도 밝다. 세계 D램 시장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 업체 주도로 재편되면서 안정적인 흐름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 모바일 기기와 초고화질(UHD) TV의 생산이 늘면서 D램 수요가 꾸준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시=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