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 지혜]나폴레옹의 몰락은 창의적 인재를 멀리하면서 시작

동아일보

입력 2014-05-15 03:00 수정 2014-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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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는 전쟁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전투다. 그만큼 나폴레옹 패전의 결정적 원인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나폴레옹도 자신이 분명히 이긴 전투였는데 패전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를 가서도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를 복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투의 패인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큰 전투일수록 변수도 많고 우연도 많다. 그런 하나하나가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면 사실상 정답이 없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근원적인 한계는 지적할 수 있다. 워털루는 그 상처가 곪아터진 하나의 증세였을 뿐이다.

나폴레옹은 천재였다. 역사에서 증명된 천재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다. 자기 업적에 대한 불만족,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 항상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이 주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이겨내야 한다. 천재들은 보통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으로 이 불안을 이겨내곤 한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은 간혹 이런 명제로 발전하곤 한다. “나 자신을 뛰어넘을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이런 자부심도 자신을 다그치기 위한 것이라면 괜찮다.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낭중지추)이라고, 탁월한 사람은 아무리 겸손하고 조심해도 평범한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폴레옹에게 이것은 독이었다.

1805년 아우스터리츠의 승리 이후 나폴레옹은 잘난 부하, 창의적인 부하를 싫어하기 시작한다. 특히 참모들 중에서도 선견지명이 있고 예리한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용맹한 장군, 뛰어난 장군들이 먼저 전사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을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고 유럽을 제패하면서 그의 군대는 거대해졌지만 주변의 인재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상황 판단 능력은 정확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그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사방에서 붕괴하는 둑을 홀로 막을 수는 없었다. 세기의 천재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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