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마켓 뷰]英 교육수출로 年30조원 수입… “이것이 창조경제”

동아일보

입력 2013-11-12 03:00 수정 2013-11-12 03: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옆집에 사는 중학생 이야기다. 얼마 전 학교 숙제로 헨리 8세와 연관이 많은 동네 궁전에 대해 1년간 조사해 학우들 앞에서 발표했다고 한다. 컴퓨터, 인터넷 사용이 금지돼 있어 직접 해당 궁전을 찾아가 안내원의 설명을 듣거나 기념품 가게에 비치된 설명 자료를 참고하기도 했다. 아마 그 학생은 영국 역사의 한 시대를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충분히 키울 수 있었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 어머니의 지극한 교육열을 뜻하는 이 말이 한국 사회에서는 ‘치맛바람’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그런데 교육 사업이 세계적 경쟁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영국에도 이런 용어가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한국은 유명 대학이나 중고교가 서울에 집중돼 있는 반면, 영국은 세계적인 명문대가 런던 시외에 있고 명문 중고교도 지방에 흩어져 있다. 따라서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가고 싶은 학교가 있을 땐 가족이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학생만 이동한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다. 자립심을 키워주는 영국 교육의 특성이 드러난 사례다.

부유한 집 자녀라도 대학 학비는 학생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졸업 후 갚는 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인다. 물론 은행도 미래 고객 확보 차원에서 초저금리로 대출해 준다. 최근 영국 집권여당이 대학 학비를 세 배로 올리는 바람에 학생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본인들이 졸업 후 직장생활 하면서 원금,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한 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갑론을박이었다.

영국 초중고교 과정엔 ‘독립학교(Independent School)’로 불리며 ‘공립학교’와 비교되는 개념이 있다. 교육 행정기관의 감독과 지시를 받지 않고 독자적인 재정과 교과과정으로 우수 학생을 유혹한다. 부모 입장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운영되는 이런 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좀 더 잘 가르쳐 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졸업자를 받아들이는 기업들의 발상도 창조적이다. 명문대 경제, 경영학과 출신이 런던 금융 중심지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계공학도는 수학 과목으로 논리력과 관찰력을 쌓았다고 보고 금융 분석가로 채용한다. 내가 만난 펀드매니저 상당수는 역사학과 전공이었다. 주식, 채권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가장 바람직한 공부를 했다고 인정하는 것 같다. 주식 중개인 중엔 군인 출신, 미술 전공자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팀워크, 상상력으로 무장해 회사 매출, 수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창조경제’라는 저서가 영국 학자에 의해 처음 발간된 이유가 분명한 듯하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노동 집약적 산업에서 탈출해 ‘창조산업’을 제1과제로 중점 육성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재임 기간에 영국의 금융업, 서비스업, 문화사업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현지법인장
총리 직속 부서인 ‘산업혁신국’의 통계자료가 있다. 영국 교육산업 수출이 2011년 영국 경제에 175억 파운드(약 30조 원)를 기여했다고 한다. 높은 물가만큼 학비도 비싼 영국이지만 매년 이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학생들을 보면 영국의 창조 교육은 고부가가치 사업으로도 성공을 거둔 듯하다. 영국처럼 우리도 경제 발전에 맞게 교육의 제도적 장치가 변해야 교육 방식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최요순 우리투자증권 런던현지법인장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