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Dream]한옥, 근엄함을 벗다

동아일보

입력 2012-06-29 03:00 수정 2012-06-2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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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건축대학 학장 김경수 교수의 ‘생활 속 한옥’
“박물관에서나 찾을 텐가… 가볍고 경쾌한 집 짓자”



“한옥은 현재보다 경쾌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한옥의 지붕을 기와가 아닌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기둥을 국내산 소나무나 전나무가 아닌 반짝이는 티타늄으로 만드는 식입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한옥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한옥의 대중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이자 손수(DIY) 한옥학교인 다물장원의 총괄교수인 김경수 교수(61·사진)의 한옥론(韓屋論)은 파격적이다. 그가 총괄교수를 맡은 다물장원은 현재 국토해양부가 지원하는 한옥 전문인력 양성사업의 실습기관이고, 다음 달부터는 전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 한옥 짓기 직무연수 실습장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그의 한옥론이 지니는 무게감은 크다.

20일 경기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한옥학교 ‘다물장원’에서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그는 아침부터 주머니가 잔뜩 달린 재킷을 입고 한옥 짓기에 열중이었다. 초여름 태양 아래서 공구를 들고 나무 자재와 씨름하고 있는 그의 이마에서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다물장원 안에 마련된 작은 연못가에 앉자 김 교수가 수박을 썰어 내왔다. 김 교수는 과일 한쪽을 건네며 “한옥에 앉아 제철과일을 먹으면 몸이 다 건강해지는 느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수입 나무 자재와 알루미늄 섀시를 사용해도 일정 양식만 갖추면 한옥이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며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을 만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는 “한옥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물이 아닌 한국의 건축물일 뿐”이라며 “한옥이 과거 건축 양식에 머물며 근엄함을 떨치지 못한다면 결코 대중화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통 한옥 양식을 옹호하는 건축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김 교수의 주장에 반기를 들기도 하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한옥에 대한 정의를 유연하게 해놓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박물관에서나 한옥을 볼 수 있게 된다”는 우려도 그가 파격적 한옥론을 고집하게 된 이유가 됐다.

현대건축을 전공한 김 교수가 한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7년. 한국이 아닌 덴마크 땅에서다. 김 교수는 당시 덴마크 오후스 건축대학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3개월간 머물렀다. 그 기간 덴마크 교수에게 한국의 현대건축가와 현대식 건축물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왜 서양의 건축양식을 본뜬 건축물을 보여주며 한국의 건축물인 것처럼 소개하느냐는 지적이었는데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건축의 뿌리이면서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한옥을 현대로 끌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김 교수는 동서고금의 모든 건축 클래식을 바탕으로 현대건축을 빚어 올린 이탈리아 건축 시장을 살펴본 후 옛것으로부터의 건축철학을 현대에 접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김 교수는 귀국 후 본격적으로 한옥에 매달렸다. 1984년부터 건축비평가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던 그에게 당시 한옥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옥 전통 목수들이 m²당 500만 원이 넘는 건축비를 들여 지어놓은 집은 웅장하지만 지나치게 비쌌다. 전통적인 공법으로 지어진 한옥 외엔 한옥이라 부르지도 않는 보수성도 눈에 띄었다. 김 교수는 한옥이 무거운 전통적인 건축양식의 틀을 벗고 보다 가볍고 경쾌해져야 영속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후 그는 1993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한옥 ‘다물원’을 시작으로 ‘다물마루’ ‘다물서당’ 등을 직접 지으며 21세기형 한옥의 틀을 닦았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목수가 아닌 일반인이 한옥 공정을 배워 직접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손수 한옥학교인 다물장원을 열었다.

그의 한옥 짓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김 교수는 그의 네 번째 한옥 집인 ‘다물암’을 손수 제작하고 있다. 재료 선택부터 시공까지 오롯이 혼자 힘으로 진행하고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누구나, 어디에서나 한옥을 짓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김 교수는 “현대적 감각에 맞춘 한옥이 많아지고 한옥이 대중화될 때 우리나라 건축사는 다시 한 번 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한옥들이 우리나라 건축사의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며 웃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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