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65명 어린이집에 대기순번 2416번

동아일보

입력 2012-01-04 03:00 수정 2012-01-0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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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무상보육 2조 배정… 정작 아이 맡길곳은 태부족

“대기순번이 2416번이라고요? 보육비는 받으나 마나네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주부 황수미 씨(33)는 3일 인근 한 어린이집에 14개월 된 아이를 등록하려다 깜짝 놀랐다. 정원 65명인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아동이 무려 2415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마포구의 다른 어린이집 역시 국공립은 최소 수백 명, 사립은 수십 명씩 대기아동이 있었다. 황 씨는 “정부에서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좋아했는데, 정작 보육을 맡길 어린이집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와 국회가 올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를 맡길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보육료 예산만 늘려 대기 인원만 늘어나게 됐다”면서 현실을 도외시한 졸속정책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외벌이 엄마는 “맞벌이 엄마가 애 맡기면 공짜고, 직업 없이 집에서 애 키우면 혜택이 한 푼도 없다”고 반발하고, 당장 무상보육 사각지대가 된 3, 4세 부모들은 “3, 4세는 집에서 레고나 맞추라는 것이냐”며 인터넷에 항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 “사실상 맞벌이만 보육 혜택” 논란도 ▼

통계상으로 어린이집은 남아돈다. 보건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전국 어린이집 3만8021개의 정원은 155만6808명인데, 실제로 다니는 어린이는 127만9910명이다. 27만6898명의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최성락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은 “저출산으로 매년 어린이가 줄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지금도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일부 지방이나 시설이 열악한 곳은 자리가 남긴 하지만 서울 수도권과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과포화 상태다. 서울 국공립 어린이집은 많게는 2000명 이상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들은 비용이 저렴하고 안심할 수 있는 국공립을 선호하지만 국공립 비중은 5.3%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2030세대의 표를 노리고 무상보육 예산에 총 2조3913억 원을 배정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어린이집 시설 증개축에 고작 119억 원만을 편성했다. 그나마 리모델링 비용을 제외하면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19억8000만 원에 그친다. 중앙정부 지원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은 700개, 현 정원의 0.04% 수준이다. 성문주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상보육도 좋지만 대도시의 국공립 시설을 대폭 늘리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게시판에는 전 계층 무상보육 혜택에서 빠진 3, 4세 부모들의 항의 글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황금돼지해인 2007년생과 2008년생이 대상으로, 가뜩이나 태어난 아이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데 보육비마저 못 받게 돼 불만이 터진 것이다. 항의 글을 올린 이미숙 씨는 “엄마 손길이 많이 가야 하는 0∼2세 보육은 지원하면서, 정작 보육이 필요하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3, 4세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 비중은 0세가 27.9%, 1세가 51.7%인 반면 4세는 80.8%, 3세는 71.9%에 이른다. 갓난아기는 출산휴가나 휴직을 해서라도 키우지만 3세가 넘어가면 외벌이 가정조차도 교육을 위해 아이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육비 지원에 맞춰 양육수당이 늘어나지 않은 점도 문제다. 0∼2세의 경우 시설에 다니면 무조건 보육비를 지원받지만 부모가 집에서 키우면 차상위계층과 장애아동에 한해 월 10만∼20만 원의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보육시설에 맡기는 집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은 외벌이가 대부분인 만큼 올해의 무상보육 혜택은 맞벌이 가정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맞벌이와 외벌이 간에 신경전마저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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