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약 ‘그림의 떡’

강성휘 기자

입력 2018-02-26 03:00 수정 2018-02-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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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무주택자, 가점제서 소외되고 대출도 막혀 ‘한숨’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상진 씨(42)의 청약 가점은 64점이다. 무주택 기간이 10년이 넘는 데다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에 부모님까지 모시고 있어 가점이 높다. 서울 강남 아파트 청약에도 당첨될 수 있는 점수지만 김 씨에게 서울 청약은 ‘그림의 떡’이다. 분양가 때문이다. 김 씨는 “웬만한 서울 집들은 모두 중도금 대출이 안 돼 당첨돼도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다”며 “누구를 위한 청약 가점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도금 대출이 막힌 상황에서 청약가점제가 확대 시행됐지만 3040세대(30, 40대) 무주택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16년 6월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며 분양가 9억 원 이상 아파트 중도금 대출을 금지했다. 청약에 당첨되면 개인이 여윳돈이나 신용대출로 집값을 내야 한다. 여기에 지난해에는 10년 이상 무주택자의 청약 당첨 기회를 늘리겠다며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청약가점제를 확대 시행(전용면적 85m² 이하 100%, 전용 85m² 초과 50%)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서울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전용면적이 85m²를 넘지 않으면서도 분양가가 9억 원을 넘는 단지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대우건설이 경기 과천시에 분양한 ‘과천 센트럴 푸르지오 써밋’ 청약 당시 전용 84m² 평형의 분양가는 10억6700만 원 안팎이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부동산 시장 열기가 뜨거웠던 과천에서 올해 처음 분양된 단지인 데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해 ‘로또 청약’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9개 평형 중 1순위가 미달된 2개 타입은 모두 중산층이 선호하는 전용 84m²였다. 한 대형 건설사 마케팅 담당 관계자는 “전용 84m²의 경우 주요 수요층이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3040세대인데, 이들이 중도금 조달 부담에 청약을 포기해 미분양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수요자의 불만은 3월 시작되는 본격적인 분양시즌을 앞두고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김남준 씨(32)는 “무주택자 중 대출 없이 서울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대출 규제가 강화돼 지금 제도대로라면 무주택 ‘금수저’들 아니면 서울에 살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주력 상품인 전용 84m² 수요층이 점차 청약을 포기하고 돌아서자 건설사들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대건설은 다음 달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자이 개포’(개포주공8단지 재건축) 분양을 앞두고 건설사 자체 보증을 통해 중도금을 대출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단지는 평균 분양가가 3.3m²당 4300만 원 선으로 예상돼 모든 평형이 9억 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 자체 보증으로 중도금을 대출받을 경우 개인 신용에 따라 대출 한도는 다르지만 같은 이자를 적용받기 때문에 사실상 중도금 집단대출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의 대출 규제를 무력화하는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정부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과천 사례와 같이 청약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고 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성급하게 규제를 쏟아내면서 규제 간 아귀가 맞지 않는 충돌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출규제와 가점제 기준을 모두 평형에 맞추거나 좀 더 세분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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