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없는 불화 ‘신중도’…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자산”

유원모 기자

입력 2018-03-14 03:00:00 수정 2018-03-14 03:00:0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 싸이월드
  • 구글
‘불화 박사’ 보림사 현주 스님

현직 스님 중 처음으로 불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현주 스님은 “기존에 없던 신들을 창의적으로 그려 넣은 보문사 신중도(1867년)와 104위 신들이 한 그림 안에 표현된 해인사 신중도(1862년) 등 재밌는 신중도가 많다”며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신중도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현재 전해져 내려오는 신중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운사 신중도(1740년). 그림 가운데 용왕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중이 표현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오랜 고민 끝에 2002년 출가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사미(예비 스님)로 매일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다. 예불을 드리기 전, 법당 안 한쪽 벽면에 있는 그림이 항상 눈에 들어왔다. 스님이 밧줄로 용을 낚시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2007년 정식 스님이 되고 나서 결심했다. 불화(佛畵)를 공부하기로.

11년이 지났다. 불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스님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주인공은 경기 화성시 보림사 주지인 현주 스님(42)이다. 지난달 동국대 미술사학과에서 ‘조선시대 신중도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가 됐다. 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스님은 “현직 승려로서 신중의례를 집전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 그림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불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스님이 주목한 불화는 신중도(神衆圖)다. 여러 등장인물을 빽빽하게 그린 그림으로, 불화이면서도 부처나 보살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인 신중은 부처나 보살처럼 깨달음을 얻은 존재는 아니지만 신묘(神妙)한 능력이 있어 중생들이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현주 스님은 “불교의 신을 그린 신중도는 신자들에겐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가장 서민적이고 개방적인 불화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중도가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조선 후기인 17∼18세기다. 당시 조선은 세계적으로 이상저온 현상이 나타난 ‘소빙기(小氷期)’로 인해 ‘경신대기근’(1670∼1671년) 등 극심한 자연재해에 시달렸다. 그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조선 민초들이 선택한 종교가 불교의 신중이란 분석이다.

때마침 조선 불교는 이론적으로 체계를 갖춘 시기이기도 했다. 백암 성총 스님(1631∼1700)이 중국에서 전래한 가흥대장경을 집대성한 ‘화엄경소초’와 신중신앙을 강조한 ‘정토보서’를 간행했다. 18세기에는 신중의례의 절차와 의식을 담은 의식집에서 “불전에 신중도를 모시고, 매일 기도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신중도가 전국 사찰로 퍼져 나갔다. 불교를 수용한 인도와 중국, 일본 등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다.

현주 스님은 “억불숭유 정책을 펼쳤던 조선이지만 대다수 민중은 유교보다 내세의 행복을 꿈꿀 수 있던 불교를 믿는 이가 많았다”며 “다양한 역사적 환경과 결합해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신중도가 뿌리내릴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중도는 기복(祈福)적인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친숙한 등장인물이 주로 나온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에 등장한 염라대왕과 재판관인 시왕을 포함해 뒷간신, 우물신, 디딜방아신 등 100여 종의 신중이 표현된다. 현주 스님은 “불교 어느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토속적인 신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중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한 신중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면모”라고 말했다.

지역별 특징을 분석한 점도 흥미롭다. 경상도에선 팔이 여러 개 달린 모습으로 인도 시바신에서 유래한 ‘대자제천’이 등장하고, 서울과 경기 지역 사찰에선 관우를 신격화한 관성제군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주 스님은 “신중도는 한국만의 고유한 색채를 가지고 있는 전통문화 콘텐츠”라며 “이번 연구를 계기로 학계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중도가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