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Case Study]최저가 업체 상단 배치… 경쟁 유도해 고깃값 거품 빼

이미영 기자

입력 2018-04-16 03:00 수정 2018-04-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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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 B2B 육류 도매 플랫폼 ‘미트박스’의 성공비결

“사장님, 지금 쓰는 그 고기 30% 더 싸게 드릴게요.”

2014년 사업을 시작한 온라인 육류 도매 플랫폼 서비스 ‘미트박스’의 이 같은 제안에 음식점이나 정육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귀가 솔깃했다. 임차료, 인건비, 식재료 등 각종 비용 상승으로 가게 운영이 점점 힘들어져 가는 상황에서 들린 희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속는 셈 치고 미트박스 웹사이트를 이용하거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로드해 주문을 넣어봤다. 다음 날 사업장에는 질 좋은 고기가 훨씬 저렴한 가격에 배달됐다.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주로 파는 음식점에선 곧바로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났다. 서울 이태원에서 무한리필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의 경우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이런 혜택 덕분에 미트박스는 빠르게 성장했다. 2014년 4000만 원에 불과했던 거래액은 2015년 89억 원, 2016년 352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2017년에는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875억 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2018년 1월 기준 약 1만8000여 곳의 음식점, 정육점 등이 미트박스를 통해 고기를 구입했다.

미트박스 서비스는 글로벌네트웍스의 김기봉 대표와 서영직 사장의 과감한 도전 덕분에 빛을 볼 수 있었다.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46호(4월 1호)에 실린 미트박스 사례 연구 기사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유통마진 줄인 직거래 플랫폼에 도전

온라인 육류 직거래 플랫폼 ‘미트박스’를 운영하는 김기봉 글로벌네트웍스 대표(왼쪽)와 서영직 글로벌네트웍스 사장. 미트박스 제공
미트박스 아이디어는 김 대표가 서 사장에게 선물한 삼겹살에서 비롯됐다. 보쌈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김 대표는 대학교 동기이자 오랜 친구인 서 사장에게 약 4Kg짜리 삼겹살 덩어리를 선물했다. 서 사장은 그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며 김 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서 사장은 김 대표가 비싼 가격의 고급 삼겹살을 선물했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가격이 고작 2만 원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서 사장은 김 대표로부터 축산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듣게 됐다. 육류제품 가격은 중간 상인을 거칠 때마다 유통마진이 붙어서 자영업자들은 평균 약 30% 정도 비싼 가격에 구매해야 했다. 부위별 육류 공급 가격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게임업체 웹젠에서 일했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서 사장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김 대표에게 중간상인 유통 과정을 제거한 온라인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육류 판매자들이 한 플랫폼 안에서 경쟁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는데다 가격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육류를 취급하는 음식점이 해마다 늘고 육류 시장 규모가 성장하고 있어 사업 전망도 밝다고 판단했다. 서 사장은 “미트박스는 육류 판매자와 중소 자영업자 간 온라인 B2B(기업 간 거래) 플랫폼으로 시장 지위를 확보하면서 유통 구조를 혁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호가 경쟁 시스템 통해 윈윈 플랫폼 완성

미트박스는 사업 초기 크게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다. 첫 번째 문제는 ‘어떻게 판매자들을 끌어들여 플랫폼을 활성화할 것인가’였다. 이를 위해서는 육류 판매자들이 미트박스를 이용할 때 생기는 이익을 확실하게 규명해야 했다. 사실 판매자들 입장에서는 이전에 하던 대로 중간상인에게 고기를 맡기는 게 더 편한 선택일 수 있다. 중간상인들이 알아서 제품을 운송하고 대신 팔아주기 때문이다. 두 창업자는 육류 판매자들을 만나 미트박스 플랫폼을 이용하면 중간상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하는 중간상인과 달리 미트박스는 전국 배송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잠재 고객 규모도 훨씬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로 미트박스를 이용하고 나서 과거보다 더 큰 매출을 올리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자 미트박스에 가입하려는 판매자들이 늘어났다. 현재 하림 계열사인 ‘팜스코’ 등 국내 대형 축산업체와 대형 수입업체 등을 포함해 약 200여 개 업체가 미트박스에 육류를 판매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가격경쟁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미트박스는 ‘호가 경쟁 시스템’을 온라인 플랫폼에 도입했다. 각 판매자는 미트박스 플랫폼에 육류 제품별 가격 정보를 올린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가 이 가격을 미트박스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트박스는 최저가격을 제시한 업체의 제품을 항상 상단에 배치했다. 판매자들은 경쟁사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수시로 조정할 수 있다. 결국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졌다. 김 대표는 “공정한 가격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독점 판매를 금지하고 업체의 규모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하는 등 엄격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며 “가격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고객의 재구매율이 85%에 이른다”고 말했다.


○ 오뚜기OLS와의 협업으로 물류서비스 해결

스타트업 기업인 미트박스는 물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엄청난 투자금이 소요되는 전국 배송망을 독자적인 역량만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트박스는 다른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물류 문제를 풀기로 했다. 오뚜기 자회사이자 물류 전문 회사인 오뚜기OLS의 ‘유휴 인프라’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오뚜기OLS는 전국에 16개 센터와 냉장차량 500여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오뚜기OLS는 주로 오뚜기가 생산하는 식품을 배송했는데 서비스 가동률은 약 70% 정도였다. 이 회사의 남는 자원을 활용하면 충분히 미트박스의 물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오뚜기OLS 창고의 빈 공간에 고기를 보관했다가 미트박스를 통해 주문이 이뤄지면 냉장차량의 남는 공간에 제품을 실어 배달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추가 매출을 내기 위해 외부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찾던 오뚜기OLS 입장에서도 좋은 사업 기회였다. 미트박스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오뚜기OLS는 적극적으로 미트박스를 지원했다. 배송 한 건당 3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을 책정했다. 초기에는 배송 물량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미트박스 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오뚜기OLS의 매출도 크게 늘어났다.

이창길 오뚜기OLS 물류영업 본부장은 “두 창업자가 축산, IT 등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서비스의 특성상 성장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해 협업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미영 기자 mylee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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