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전문기자의 人]파킨슨병 진단후 17년을 버텼다… 자존감을 지키려고

손진호 전문기자

입력 2017-08-12 03:00 수정 2017-08-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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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중인 베스트셀러 저자’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김혜남 씨는 앞으로 병이 악화돼 책을 쓸 수 없게 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손진호 전문기자
‘스리 아워 우먼(3 hour woman).’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약을 먹으면 그저 세 시간 정도 괜찮았다. 하루에 약을 세 번 먹으니 하루 통틀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9시간 남짓이었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10여 년이 지난 중증의 시기….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졌다. 곧 ‘투 아워(2 hour) 우먼’이 돼 버렸다. 발병 15∼17년 정도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는 무서운 병.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처절히 예감하는 나날이었다.

깨어있을 때 무엇이든 해야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운동하고, 친구와 수다도 떨었다. 물방울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에도 아름다움이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감성을 바탕삼아 사력을 다해 책을 썼다. 젊은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책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베스트셀러가 됐고 저자는 20, 30대의 멘토로 떠올랐다. 하지만 저자가 파킨슨병으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글을 썼다는 걸 아는 독자는 드물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등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김혜남(59) 씨.

김 씨는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12년간 일하고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으로 환자를 돌보던 정신분석 전문의다. 그런 그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것은 개인병원을 차린 지 1년이 채 안된 2001년 2월이었다. 나이 불과 마흔세 살. 아내로, 어머니로, 며느리로, 정신분석 전문의로 충실히 살아온 삶이 한순간에 마비되는 듯한 충격이었다.

의사가 자기 몸에 이상이 온 걸 왜 몰랐을까. 기자의 질문에 김 씨는 “의사들은 수동적인 상태를 싫어해 병원에 안 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사와 그 가족들이 큰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씁쓸히 웃었다.

사실 진단을 받기 2년 전쯤부터 병의 증세가 있었다. 원래 식성이 좋았는데 차츰 조금밖에 못 먹고, 글을 쓰다 보면 글씨가 자꾸만 작아졌다. 저녁이면 오른쪽 다리를 끌게 되고…. 그래도 좀 쉬고 운동하면 괜찮아질 거라며 병원에 가지 않았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 손상에 따른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보통 65세 이후 발병한다.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행동이 느려지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희귀성 질환이다.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2016년 9만6499명으로 집계된다(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통계자료).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후 절망감에 빠져 더는 환자를 볼 수 없었다. 의사다 보니 누구보다 그 병을 잘 알았다. 무엇보다 파킨슨병 환자들이 겪게 된다는 끔찍한 고통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기를 한 달,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 세상일이란 게 다 버티는 게 아닌가. 버텨보자.” 마음을 다잡고 병원에 나가 환자를 돌보고 강의도 했다. 그렇게 17년을 살아오며 두 아이를 키우고 다섯 권의 책도 썼다.

지난해 9월엔 ‘뇌심부 자극술’ 수술을 받았다. 뇌에 전극을 삽입하고 전기자극을 줘 비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뇌신경세포의 기능을 조절하는 수술이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대개 치료제인 레보도파 전(前) 단계 약을 3년쯤 쓰는데 그는 12년을 악착같이 그 약으로 버텼고, 그 덕분에 좀더 발달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어렴풋한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대 위에 묶여 있고, 머리 위에선 수술 도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 뼈 뚫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그래도 그 끔찍한 시간을 견뎌냈기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부작용이 없어 살 것 같다.”

 
수술 후 한 발짝을 떼는 것도 힘든 ‘오프(off)’ 상태가 오지 않고, 약 복용도 줄어들었다. 게다가 수면제를 먹으면 잠자는 시간이 예전의 2시간에서 6, 7시간으로 늘었다. 물론 여전히 하루하루가 힘겨운 투병의 시간이다. 매일 레보도파 세 알을 여섯 번에 나눠 먹고, 보조약까지 하루 아홉 번 먹어야 한다. 잠잘 땐 수면제를 꼭 챙긴다. 아직은 바깥 활동도 할 수 없다. 수술은 잘됐지만 전류 조절을 해야 하는 등 불안정한 상태다. 이 때문에 수술한 뒤 4번이나 입원해야 했다.

그래도 그 정도의 증상완화나마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김 씨는 서울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팀에 연구비로 1억 원을 기증했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해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치료해 달라는 뜻으로.

기자는 인터뷰를 위해 김 씨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자택을 두 번 찾았다. 5월 첫 방문 때 “다리 힘이 없다보니 자주 넘어진다”고 했던 그의 오른쪽 다리는 지난주 만났을 때는 훨씬 안정감이 있는 모습이었다.

“큰 병을 앓으면서도 5권의 책을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하자 김 씨는 “부끄럽기 그지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반드시 덜 아픈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지 상상하며 고통을 견뎌낸다”고 했다.

김 씨는 2002년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를 시작으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2006년), 심리학의 관점에서 서른 살의 삶을 조명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2008년)를 냈다. 그는 ‘서른 살이…’에서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면 우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그런 다음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그 조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행동하라고 말한다. 특히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방황은 당신이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당신은 언제나 옳다. 그러니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아가라”며 격려한다. 이 책은 60만 부 이상 팔렸다.

2009년 5월 출간된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2015년)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투병하며 쓴 책 다섯 권이 무려 120만 부 가까이 팔린 것. 하지만 청춘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던 작가가 투병 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김 씨는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에서 비로소 자신이 투병 중임을 밝혔다.

김 씨는 요즘 ‘그림편지’라는 책의 출판을 준비 중이다. 심하게 떨리는 손 때문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과 감각을 디지털의 도움을 받아 전달한 작품들을 모은 책이다. 친구 생일 등 뭔가 의미 있는 날의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그려 따뜻한 글과 함께 친구들에게 보내주곤 했는데 그렇게 7년간 그린 그림과 글을 묶어 책을 내는 것.

가편집된 원고 중 ‘행복’과 ‘불행’에 눈길이 머물렀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모래사장에서 막 모래성을 쌓은 어린아이라 하죠(행복). 그러나 그 아이가 옆의 큰 모래성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는 순간 그 아이는 매우 불행해집니다(불행).’

“그럼, 선생님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언제였나요?” 불쑥 물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요.”

여고 3학년 때 한 살 위 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언니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충격과 혼란 그 자체였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난 언니를 시샘했던 그는 한때 ‘언니가 없어져 버렸으면…’하는 상상까지 하곤 했다.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가 고려대 의대에 진학한 것도, 정신분석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 영향이 컸다.

대학 시절 연애 한번 못해본 김 씨는 본과 4학년 때 짝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선배였다. 2년 동안 가슴앓이하다 과 동기 남학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그 동기가 어느 순간부터 사랑으로 다가왔고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그 과 동기가 남편인 나누리병원 장일태 이사장(60)이다. 그러고 보니 김 씨가 ‘운명의 짝은 불현듯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며, 나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온 사람을 껴안는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한 까닭을 알 성싶다.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 병이 악화된다고 하더라도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자 한다.” 대문까지 굳이 배웅을 나선 김 씨는 몸은 다소 불편할지언정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병 걱정으로 시간 보내기엔 인생 너무 아깝잖아요”▼

‘열가지 버킷리스트’ 만들어 도전
“인생을 숙제하듯 살아온것 후회… 파킨슨병, 버티다보면 앞으로 가”


“웃어요, 웃어.” 김혜남 씨와 남편 장일태 이사장은 오랜만에 사진을 찍는다며 멋쩍어하면서도 활짝 웃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병마를 손님처럼 받아들이자 나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좌절에서 희망을 찾고, 불완전함 속에서 감사와 용서를 배웠다.”

김혜남 씨는 병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덕분에 사는 게 더 재미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그는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2015년)’에서 열 가지 버킷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 해보고 싶은 걸 적은 목록)를 밝혔다. 그림 그리기, 우리나라 바다 한 바퀴 돌기, 다른 나라 언어 배우기,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 나에게 상처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기, 세상의 모든 책 읽어 보기, 책 한 권 쓰기, 남편과 무인도에 들어가 일주일 지내기,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기, ‘조용히 온 데로 다시 가기’….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기 어려운 건 없느냐”고 하자, “당분간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아들(33)은 여자 친구와 함께할 테고, 지난해 결혼한 딸(28)은 시댁에 가야 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김 씨는 살아오면서 후회하는 게 한 가지 있다. 인생을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그 모든 역할을 잘하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을 놓쳐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닦달하며 살았다고 했다.

중·고등학생 때 방황했던 아들에게 도움을 못 준 게 마음에 걸린다고도 했다. 자식 문제 앞에선 정신분석가도 그저 엄마일 뿐이었다고. 그래서 요즘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가족에게 유쾌한 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비로소 이루어질 것만 같단다.

파킨슨병 환자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아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다. 이 뿌리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 삶에 대한 신념이다. 버티는 것이 답답하고 힘들겠지만 버티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손진호 전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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