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밖에 기억 못해도… 지금 행복해요”
강승현기자
입력 2017-03-20 03:00 수정 2017-03-20 03:00
뇌종양 12세 한울이 첫 서울나들이
열두 살 박한울 군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며 성대모사에 모창까지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한울이 덕에 집안은 늘 떠들썩했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한울이는 불평 대신 엄마 아빠의 건강을 걱정했다. 부부는 너무 일찍 철이 든 아들에게 ‘애어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애어른 한울이가 세 살배기 아이처럼 돼 버린 건 2년 전이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쓰러진 한울이는 뇌종양 중에서도 가장 악성으로 꼽히는 교모세포종 판정을 받았다. 종양은 순식간에 혈관을 타고 척추, 방광 등 온몸으로 퍼졌다. 이제는 거동을 하기는커녕 고통 때문에 앉아서 잠을 자야 할 만큼 상태가 악화됐다. 암세포가 시신경에까지 전이되면서 시력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16일 서울 코엑스아쿠아리움에서 만난 한울이는 대형 수족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경북 구미에 사는 한울이의 생애 첫 ‘서울 구경’은 “가족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사연을 전해 들은 사회복지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의료진도 집중 항암치료를 하루 앞둔 한울이의 바깥나들이를 허락했다. 아이의 시선은 시종일관 물고기를 좇았다. 맘에 드는 물고기가 보일 때면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인사를 건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부는 아들의 웃음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부부는 최근 일을 모두 그만두고 24시간 아들 곁을 지키고 있다. 엄마 김주향 씨(37)는 “종양이 한울이의 기억까지 손을 댔다”며 “오직 오늘만 기억하는 아이에게 매일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을 담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뇌가 손상됐지만 한울이는 이날 이따금 “엄마 기억나? 나 아홉 살 때 말이야…”라며 오래전 일을 끄집어냈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좋은 풍경을 볼 때마다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말했다. 한울이가 옛 기억을 꺼낼 때마다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서울의 낮 기온은 영상 15도를 웃돌았다. 그러나 유람선을 타려고 여의도 선착장에 도착한 한울이는 온몸을 떨었다. 담요 여러 장과 점퍼를 두르고 겨우 유람선에 올랐지만 객실 바깥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를 움직인 건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강바람이 제법 찼지만 한울이는 갈매기에게 멸치를 던져주는 아빠를 가만히 지켜보다 천천히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한울이가 던진 먹이를 갈매기가 낚아챘다. 한울이 얼굴에 또 한번 미소가 번졌다.
한강 구경에 빠져 있는 한울이에게 특별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한울이가 닮고 싶다던 개그맨 유재석 씨였다. 재단 쪽에서 ‘깜짝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유 씨의 등장에 긴장한 듯 한참 말을 못 잇던 한울이는 “건강해져서 꼭 만나자”는 유 씨의 말에 “네, 사랑해요. 건강하세요”라며 두 팔로 하트를 그렸다.
온종일 이어진 강행군 탓인지 고통을 호소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한울이가 손사래를 쳤다.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하는 지금 저는 누구보다 행복해요.”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악성 뇌종양을 앓고 있는 박한울 군(가운데)이 16일 한강 유람선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강바람을 쐬고 있다. 이날 박 군 가족의 서울 나들이는 사회복지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후원으로 성사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기억이 채 이틀을 못 가요. 종양이 한울이의 기억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거죠. 그래도 괜찮아요. 매일매일 행복한 순간들로 다시 채워주면 되니까….”열두 살 박한울 군의 꿈은 개그맨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다며 성대모사에 모창까지 한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하는 한울이 덕에 집안은 늘 떠들썩했다.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보다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한울이는 불평 대신 엄마 아빠의 건강을 걱정했다. 부부는 너무 일찍 철이 든 아들에게 ‘애어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애어른 한울이가 세 살배기 아이처럼 돼 버린 건 2년 전이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쓰러진 한울이는 뇌종양 중에서도 가장 악성으로 꼽히는 교모세포종 판정을 받았다. 종양은 순식간에 혈관을 타고 척추, 방광 등 온몸으로 퍼졌다. 이제는 거동을 하기는커녕 고통 때문에 앉아서 잠을 자야 할 만큼 상태가 악화됐다. 암세포가 시신경에까지 전이되면서 시력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16일 서울 코엑스아쿠아리움에서 만난 한울이는 대형 수족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경북 구미에 사는 한울이의 생애 첫 ‘서울 구경’은 “가족과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아이의 사연을 전해 들은 사회복지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의료진도 집중 항암치료를 하루 앞둔 한울이의 바깥나들이를 허락했다. 아이의 시선은 시종일관 물고기를 좇았다. 맘에 드는 물고기가 보일 때면 아주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인사를 건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부는 아들의 웃음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부부는 최근 일을 모두 그만두고 24시간 아들 곁을 지키고 있다. 엄마 김주향 씨(37)는 “종양이 한울이의 기억까지 손을 댔다”며 “오직 오늘만 기억하는 아이에게 매일 행복하고 좋은 기억들을 담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불과 며칠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뇌가 손상됐지만 한울이는 이날 이따금 “엄마 기억나? 나 아홉 살 때 말이야…”라며 오래전 일을 끄집어냈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좋은 풍경을 볼 때마다 가족과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을 말했다. 한울이가 옛 기억을 꺼낼 때마다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서울의 낮 기온은 영상 15도를 웃돌았다. 그러나 유람선을 타려고 여의도 선착장에 도착한 한울이는 온몸을 떨었다. 담요 여러 장과 점퍼를 두르고 겨우 유람선에 올랐지만 객실 바깥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이를 움직인 건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였다. 강바람이 제법 찼지만 한울이는 갈매기에게 멸치를 던져주는 아빠를 가만히 지켜보다 천천히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한울이가 던진 먹이를 갈매기가 낚아챘다. 한울이 얼굴에 또 한번 미소가 번졌다.
한강 구경에 빠져 있는 한울이에게 특별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한울이가 닮고 싶다던 개그맨 유재석 씨였다. 재단 쪽에서 ‘깜짝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유 씨의 등장에 긴장한 듯 한참 말을 못 잇던 한울이는 “건강해져서 꼭 만나자”는 유 씨의 말에 “네, 사랑해요. 건강하세요”라며 두 팔로 하트를 그렸다.
온종일 이어진 강행군 탓인지 고통을 호소하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힘들지 않느냐는 기자의 말에 한울이가 손사래를 쳤다. “엄마 아빠 할머니와 함께하는 지금 저는 누구보다 행복해요.”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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